두부 한 숟갈, 아버지와 기억 속 아침

일상 속 작은 회복과 기억의 온기

by 최순옥


프롤로그 1 — 돌아온 아침

아버지는 요양원 침대에서 천천히 눈을 뜨셨다. 콧줄과 소변줄은 여전히 연결되어 있지만, 그날 아침 얼굴에는 이상하게도 따뜻한 기운이 감돌았다.

짧은 숨, 느린 시선 속에 견뎌온 시간과 다시 버텨보려는 마음이 조용히 겹쳐 있다.


프롤로그 2 — 어머니의 부엌

문득 떠오른 기억 하나. 어머니가 해주시던 두부 음식들, 순두부와 모두부.

어머니는 두부를 참 잘 다루셨다. 눈대중으로 썰고 손끝으로 간을 맞추며, 말없이 뚝배기를 불 위에 올리셨다.


특히 모두부를 썰어 새우젓을 풀어 끓이던 날이 있다. 뚝배기에서 김이 오르고 국물에 향이 스며들면 아버지는 밥 한 그릇을 금세 비우셨다.

그리고는 그릇을 내밀며 짧게 웃으셨다.


그때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다시 뚝배기를 올리셨다. 젓가락으로 두부를 가만히 눌러보고 국물을 한 숟가락 떠 조용히 맛보시던 손길.

그 말없는 부엌의 풍경이 오늘 하루를 시작하는 내 마음에 작은 온기로 남아 있다.

나는 원래 비린 것을 잘 먹지 못했다. 새우젓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니가 떠나신 뒤 생긴 변화가 아니라, 처음부터 그랬다.

그런데도 어느 날, 아버지를 위해 기억에 의지해 두부를 썰고 새우젓을 풀어 뚝배기를 올린 적이 있다.


맛을 장담할 수는 없었다. 어머니처럼 할 수 있을 리도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날 아무 말 없이 잘 드셨다.

그 모습 하나로 그날의 뚝배기는 이미 충분했다.

그 기억이 오늘 아침, 아버지의 숨결과 함께 조용히 다시 살아난다.


본문 — 일상 속 회복과 기억의 힘

빛과 함께 맞이하는 아침

아버지는 천천히 눈을 뜨며 중얼거린다. “오늘은… 괜찮네요.”

짧은 말이지만 그 안에는 버텨온 시간과 다시 하루를 살아보려는 마음이 담겨 있다.

나는 그 숨결 옆에서 하루를 시작한다. 아침 햇살이 창을 스치며 아버지의 얼굴을 감싸고, 그 빛 속에서 오늘을 견딜 힘이 조금씩 깨어난다.


손끝에서 느끼는 하루

손끝 운동은 여전히 하루의 중심이다. 작은 움직임 하나에도 아버지는 몸과 마음이 아직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한다.

“오늘은 조금 더 나은 느낌이네요.”

그 말 한마디가 오늘 하루의 방향을 정해준다.

손가락을 펼치고 힘을 조절하며 작은 물건을 만져보는 순간, 아버지는 아직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낀다.


기억 속 두부, 오늘의 온기

아버지는 이제 입으로 식사를 하지 못한다. 뉴케어는 콧줄을 통해서만 천천히 내려간다.

그럼에도 기억은 여전히 살아 있다.


모두부를 썰어 새우젓을 풀어 끓이던 날, 밥 한 그릇을 비우고도 웃으시던 얼굴.

순두부를 숟가락으로 떠먹던 소리, 뚝배기를 살짝 흔들며 맛을 보던 어머니의 표정.

먹지 못해도 그 기억은 아버지 곁에서 오늘의 온기로 머문다.


복도 산책과 숨 고르기

짧은 복도 산책. 뒤에서 아버지를 잡아드리면 가녀린 몸이 믿기지 않을 만큼 또박또박 걸음을 옮긴다.

지금은 38킬로. 등은 많이 작아졌지만 중심은 아직 분명하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나는 그 속도를 맞추며 함께 숨을 고른다.

걷기 연습이 끝난 뒤 장난처럼 팔씨름을 해본다. 아버지는 여전히 이기신다.

그 웃음 속에 아직 꺼지지 않은 삶의 힘이 있다.


마음의 나침반

어머니의 기억, 아버지의 작은 미소, 손끝 운동과 콧줄을 통해 내려가는 뉴케어 한 컵.

이 모든 것이 하루를 살아내는 나침반이 된다.

작은 순간들이 모여 오늘을 견디게 하고, 내일을 향해 조심스레 나아가게 한다.


에필로그 — 다시 숨 쉬는 하루

아버지와 가족과 나는 서로의 삶 속에서 힘을 얻는다.

작은 발걸음, 손끝의 움직임, 콧줄을 타고 흐르는 영양 한 컵.

모두가 삶을 지탱하는 작고 조용한 기적이다.


오늘도 나는 아버지 곁에서 숨을 고르고, 기억과 회복을 마음에 담아 하루를 살아간다.


작가의 말

회복은 거창한 사건에서 오지 않는다. 두부 한 끼의 기억, 짧은 산책, 손끝의 움직임 하나가 삶을 다시 붙잡는다.

이 기록은 아버지를 위한 시간이자 나 자신을 다독이는 일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소원한다.

아버디와 어머니가 나란히 손잡고 걷는 그 순간을 그린다.

그리고,

언젠가 어머니가 하셨던 것처럼 두부를 손수 만들어 뚝배기에 새우젓을 풀어 끓여 아버지께 드리는 날이 오기를.

아버지가 그 두부를 입으로 드시며, 그저 고개를 끄덕여 주시기를.

목,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