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작으로
아픈시간이 있어서 연재가 하루 늦어졌어요.
감사합니다.
프롤로그 — 작장 발령 이동과 고민
여행을 다녀온 뒤, 발령 이야기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이동’이라는 단어는 늘 그렇듯 마음을 무겁게 누른다.
잔류할 수도 있다는 소식까지 겹치자, 고민은 자연스레 깊어졌다.
결정을 미루고 미루는 사이, 입안이 먼저 헐기 시작했다.
몸은 늘 마음보다 솔직했다.
말로는 괜찮다고 했지만, 몸은 이미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숨이 가볍지 않았고, 잠들기 전 머릿속에는 계속 ‘결정’이라는 단어가 맴돌았다.
고향집에 도착하자 현실적인 문제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냈다.
심야전기보일러 작동법은 아버지가 계시지 않으니 쉽지 않았다.
예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따뜻했던 집이,
이제는 하나하나 손을 대야 하는 공간이 되어 있었다.
전기 코드, 수도 잠금장치, 난방 스위치까지
모든 것이 내 손을 기다리고 있었다.
수확하지 못한 다래 위로
12월 13일에 내린 눈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낮이 되자 눈은 물이 되어 천천히 떨어졌다.
그 장면을 한참 바라보았다.
녹는 것은 늘 조용했다.
소리 없이 사라지는 것들이
마음속에도 꽤 쌓여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문 — 고향집과 아버지의 손길
집 안의 겨울
집 안은 냉골이었다.
사랑초는 추위를 이기지 못한 채
무성한 잎을 달고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네 시간 넘게 정리를 하고 나서야 집을 나섰다.
몸은 피곤했고, 마음은 그보다 더 무거웠다.
집으로 돌아오니 으슬으슬 추위가 올라왔다.
그날 이후 몸이 붓기 시작했고, 식은땀이 났다.
발령에 대한 압박, 고향집, 아버지의 부재, 그리고 감기.
모두 따로인 것 같았지만
결국 한 줄로 이어진 하루였다.
고민의 무게
일주일째, 고민 덩어리가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답을 내리지 못한 채 시간을 흘려보내는 일이
결정보다 더 힘들게 느껴졌다.
아버지께 보일러 작동법을 다시 물었다.
“기억이 안 난다. 맞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다 문득,
“옆집 아저씨가 잘 안다” 하신다.
잠시 통화를 했다.
아버지 차고 벽에 붙은 스위치 두 개를 올리고,
주방 쪽 보일러 버튼을 누른 뒤
외출 버튼을 누르라는 설명이었다.
전화를 끊고 다시 확인하니
“응, 응, 그러네. 맞아.” 하신다.
작은 일상조차
아버지의 존재로 지탱되고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마음을 놓이게 했다.
아버지의 존재
통화를 마치기 전, 문득 물었다.
“나 안 보고 싶어?”
잠시 뜸을 들이더니
“보고 싶다.” 하신다.
아버지는 늘
내가 큰 곳에서 근무하는 걸 좋아하셨다.
청사 근무, 사람이 많은 곳,
높은 분을 모시는 자리도
자랑처럼 말씀하시곤 했다.
“300명 근무하는 데야. 아주 크다.”
그 말에 흐뭇해하시던 얼굴이 떠오른다.
“지금은 1200명이다” 하면 웃으셨고,
“1300명인데, 발령 나면 좋겠다” 하시던 말도
이상하게 마음에 오래 남는다.
단순한 기대가 아니라,
내 마음을 조용히 지탱해 주던 말이었다.
선택과 무거움
아버지의 기대와 내가 감당해야 할 현실 사이에서
오늘도 나는 쉽게 선택하지 못한 채 하루를 넘긴다.
아버지를 자주 뵙지 못해도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내 곁에 계셔 묵묵히 손을 잡아 주신다.
그 손길을 느끼며 나는 오늘 하루도 살아낸다.
에필로그 — 내일의 약속
몸이 조금 나아지면
내일은 고향집을 다시 살필 예정이다.
보일러와 마당, 집 안 구석구석을 점검하고
화초를 손질하며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킬 생각이다.
작은 일상의 움직임 속에서 마음도 조금씩 정리되고,
발령 이후의 새로운 학교 생활을 준비할 힘을 얻게 되리라 믿는다.
작가의 말
이번 글에서는
발령과 이동이라는 현실적인 문제 속에서
아버지와의 작은 소통이 주는 위로를 담았습니다.
결정의 무게와 현실의 부담 속에서도 일상의 작은
순간과 기억이 마음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는 것을
다시 느끼게 됩니다.
아버지의 말 한마디, 손끝으로 느끼는 공간과 사물,
겨울을 견디는 화초들. 이 모든 것이
오늘 하루를 살아내게 하는 조용한 기적입니다.
독자분들 역시 작은 순간 속에서
자신만의 위로와 힘을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예고편
다음 편에서는
내일 고향집을 직접 살피러 가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보일러와 마당, 집 안 곳곳의 관리,
화초 손질과 환기까지.
작은 일상의 움직임 속에서 마음을 정리하고
발령 이후의 새로운 직장 생활을 준비하는 과정을
담아보려 합니다.
아픈 몸이 조금 나아지면 고향집을 오가며
새로운 일상이 시작됩니다.
작은 손길과 발걸음이 만들어내는 회복과 준비의
순간들을 다음 글에서 다시 함께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