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작, 그리고 아버지

다시 출발선에서

by 최순옥


프롤로그

이동은 자리를 옮기는 일이지만, 마음은 늘 시간을 데리고 움직인다.

한 해의 끝과 시작이 겹친 며칠 동안, 나는 아버지를 만나고 새로운 직장에 첫발을 디뎠으며, 오래된 관계가 여전히 나를 따라오고 있음을 확인했다.

조용하지만 많은 것이 겹쳐진 시간이었다. 하루하루가 서로 다른 색으로 쌓여 마음을 채우는 나날이었다.

짧지만 마음 깊은 곳까지 스며드는 순간들이었다.



1월 1일, 아버지와의 만남


아버지의 새해

새해 첫날, 요양원에 계신 아버지를 뵈었다. 이발을 하셔서 얼굴이 말끔했고, 눈빛은 여전히 다정했다.

손과 몸, 마음을 담은 시간

아버지는 내 손과 얼굴, 목과 귀를 하나하나 닦아 달라 하셨다.

로션을 바르고, 다리를 천천히 주무르며 함께 운동도 했다.

그 시간만큼은 말보다 손이 더 많은 이야기를 대신했다.

아버지는 주소를 묻고, 주민등록번호를 확인하셨다.

내 휴대전화 번호, 군번, 통장 비밀번호까지 하나하나 되짚듯 물으셨다.

그러다 갑자기 웃으며 말씀하셨다.

책 나오면 몇 권 사줄까?

만 권 사줄게. 아주 많이 유명해지게.”

웃음 뒤로 마음이 조용히 내려앉았다.

아버지는 여전히, 아무 조건 없이 나를 세상으로 밀어주는 사람이었다.


나래 선생님 – 결혼과 부조금

요양원에서 밝은 나래 선생님이 단발머리로 나타났다.

“어서 오셨어요.”

미소로 손을 잡아주며 아버지를 향해 겨울 결혼과 부조금 이야기를 전했다.

“결혼 부조금은 얼마로 하실 건가요?”

아버지는 삼십만 원이라며 같이 가서 축하해 주겠다고 말했다.

나는 “너무 많이 하시는 거 아니냐”라고 걱정했지만, 아버지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잘하는 사람이니까, 나한테도 잘한다.”

짧은 시간에도 마음과 웃음이 오갔다.


팀장 수양딸 이야기

아버지는 내 방문에 눈이 밝아지며 화색이 돌았다.

“팀장님이 오셔서 기쁘다. 수양딸이라 하신다.”

나는 웃으며 “언제 수양딸을 했어요?”라고 물었다.

아버지는 장난스레 미소를 지으셨다.

“딸은 내가 있는데, 너 잘하니까 늘 고맙다. 좋은 분이야.”

짧은 대화였지만, 마음속에서 온기가 퍼졌다.

손을 잡고, 눈빛을 마주하며, 나는 마음속으로 고마움을 반복했다.

“앞으로도 건강하게 지켜드릴게요. 늘 곁에 있을게요.”

그 말에 아버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으셨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온전히 마음을 주고받는 순간이었다.



1월 2일, 첫 출근


발령선물ㅡ반짝이는 풍뎅이

나는 네이비 재킷에 인사이동 선물로 받은 풍뎅이 브로치를 걸었다.

작고 예쁜 브로치는 은은하게 반짝이며, 새해 첫 출근을 축하해 주는 작은 길을 열어주는 듯했다.

그 브로치를 바라보는 순간, 마음 한편에 설렘과 기대가 함께 스며들었다.


샤인머스캣 – 관리자님의 환영

설렘 때문이었을까. 삼십 분 일찍 도착했다.

낯선 건물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들어섰다.

첫인사는 관리자님을 통해 건네졌다.

“출근 환영합니다.”

말과 함께 샤인머스캣 한 박스가 놓였다.

과분하지 않게, 그러나 따뜻하게 맞아주는 방식이었다.


전 직원 인사 및 추첨

오후 두 시 반, 전 직원 인사가 있었다.

부장님이 직접 나를 소개해 주셨고, 덕분에 자연스럽게 인사가 이어졌다.


향기 가득한 핑크색 장미 꽃다발과 스타벅스 머그컵 잔이 놓였다.

작고 소중한 마음이 담긴 선물이었지만, 그 정성만으로 충분히 느껴졌다.

꽃잎 사이사이 은은하게 퍼지는 향기가 마음까지 감싸고, 머그컵의 따스함이 새해 첫 출근의 설렘을 한껏 북돋았다.

그 작은 배려 하나가 마음 깊숙이 스며들어, 하루를 시작하는 내 마음을 온전히 따뜻하게 채워주었다.


서로 눈인사를 나누며 짧은 대화, 웃음과 격려가 오갔다.

상품 추첨도 부장님과 함께 진행됐다.

나는 60번 추첨번호를 받아 잠시 사무실을 이동했지만,

추첨 끝에 당첨된 선물은 부장님이 직접 전달해 주셨다.

직원들은

“첫날부터 행운이 가득하네요. 좋은 일이 생길 거예요.”

라며 기대와 웃음을 나누었다.

아버지의 새해는 밝게 빛날거에요


와플ㅡ발령선물


추첨과 인사가 끝난 뒤, 내 이름으로 와플과 과일케이크가 도착했다.

과일이 다양하게 올려진 와플들이 가지런히 담겨 있었다.

누가 보냈는지 몰랐지만 연락이 와 확인하고, 영수증을 보니 13년 전 함께 근무했던, 아주 예쁜 아기 같은 주무관이었다.

다들 모여 와플을 나누며 웃음과 행복을 나누었다.

그 와플을 나누던 자리에서 실장님은 웃으며 물으셨다.

“함께 일하려면 성향을 알아야 해요. 팀장님은 어떤 타입인가요?”

나는 스무 개가 넘는 질문에 답했고, 결과는 F 성향, ENTJ가 나왔다.

같이 근무했던 동그라미는 장난스레 웃으며

“음… t라고 나왔지만, 잘 모르겠네요.”분명 f성향이세요.


사무실에 웃음이 퍼지고, 와플의 달콤함과 함께 이야기의 따뜻함이 이어졌다.

첫 출근이 시작되면서 따뜻함이 연속으로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귤 이야기ㅡ소중한 첫 만남

전 근무지 부장님과 친분이 돈독한 현재 근무 중인 분이

귤 를 들고 오셨다.

“전 근무지 부장님께서 많이 칭찬하시더라고요.

무조건 좋은 분이니 잘 부탁한다고 꼭 전해 달라고 하셨어요.”

“환영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인상이 아주 좋고, 말이 단정한 분이었다.

다음에 부장님과 차 한 잔 하자는 말까지 남기고 돌아가셨다.


전 근무지 정년 선배와 같이 근무

그날, 나와 같이 근무하게 된 분도 오셨다.

2023년에 발령받은 곳에서, 2024년 정년을 맞으신 후 내가 맡은 곳으로 함께 오신 분이었다.

그분은 나를 보며 이렇게 표현했다.

“최 팀장님, 샬랑 살량 나풀나풀거린다.”

다시 같은 공간에서 근무하게 된 든든함과 행복, 떨림과 걱정이 한꺼번에 줄어드는 순간이었다.

12월 통화와 발령 응원, 격려, 사무실 정리 후 9시 퇴근

선거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몇 해 전, 전 근무지에서 위원회 인원 초과로 선거를 치렀던 날이다.


2023년 1월 발령 직후, 업무는 쏟아졌고 새로 맡은 일들로 매일 야근을 했다.

투표와 개표를 맡으며 걱정이 되었지만, 그분이 말했다.

“팀장님, 나 상고 나왔어요. 개표는 내가 잘 봅니다. 걱정하지 말아요.”

선거는 무사히 마무리되었고, 관리자님에게서 “대단하다”는 칭찬을 들었다.

야근 무렵이면 저녁을 챙겨주시기도 하고, 늘 든든했던 주무관님과 다시 근무하는 지금도 마음이 단단하다.


첫 출근의 하루가 끝나고, 나는 사무실을 차분히 정리하며 서류와 메모를 정돈했다.

마감 후 시계를 보니 9시가 되었다.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오늘의 시작을 마음에 새겼다.

새로운 업무, 새로운 동료와 공간 속에서도 희망과 따뜻함이 함께 할 거라는 믿음이 마음을 채웠다.


고향집

며칠 뒤, 고향집에 들렀다.

조용한 집 안에는 익숙한 냄새와 온기가 남아 있었다.

짧은 시간 머물렀지만, 숨을 고르듯 마음이 가라앉았다.

책장, 창가, 오래된 사진과 기억들이 머무는 공간에서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았다.

부엌 창가에 놓인 작은 화분과 오래된 찻잔들이 하루의 잔향처럼 다가왔다.

부조금과 아버지의 배려, 오래된 관계에서 느껴지는 온기까지 마음속으로 담았다.

온전히 쉬며 고향집의 온기와 추억이 마음을 가득 채웠다.

조용하지만 마음 깊이 스며드는 시간, 삶이 다시 나를 어디로 이끌지 생각하게 하는 공간이었다.



에필로그

자리를 옮겼지만, 사람을 떠난 건 아니었다.

샤인머스캣, 전 직원 인사와 추첨, 와플과 과일케이크, 귤 한 봉지, 아버지와 나눈 온기까지 마음은 계속 이어졌다.

관계는 그렇게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남는다.


나는 메모장에 적었다.

"모든 게 사랑이다".

그 말이면 충분했다.


작가의 말

이 글은 이동과 시작에 대한 기록이지만, 결국 사람과 관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함께했던 시간, 스쳐간 마음, 작은 배려가 어떤 모습으로 남는지 오래 바라보고 싶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기억과 감정은 숫자나 물건이 아닌 마음에 쌓이는 것임을 다시 느낍니다.

짧지만 의미 있는 순간들이 쌓여 삶의 결을 만들어갑니다.

이번 편을 쓰며, 이동은 장소가 바뀌는 일이지만, 관계와 사랑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는 걸 다시금 확인했습니다.


다음 편 예고

첫 출근 이후 하루가 지나갔다.

아직 익숙하지 않은 이름들과 동선, 반복되는 인사 속에서 나는 천천히 자리를 익혀간다.

새로운 공간에서도 이어지는 아버지의 시간, 책임과 돌봄의 무게, 그리고 다시 마주하는 관계의 거리.

다음 편에서는 이동 이후의 일상과 감정, 그리고 관계가 만들어지는 속도를 기록하며, 삶의 다음 장을 천천히 써 내려갈 예정이다.

목,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