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디는 하루의 중심에서
프롤로그
발령 이후의 시간은 빠르게 흐르지 않았다. 매일 야근을 하고, 눈은 쉽게 침침해지고, 머릿속은 정리해야 할 일들로 가득 찼다. 업무를 파악하고, 사람을 기억하고, 공간에 익숙해지느라 하루가 끝날 즈음이면 마음까지 지쳐 있었다.
그럼에도 하루를 버티게 하는 건, 일보다 사람이었다. 말없이 건네지는 배려와 오래 남는 마음 덕분에 오늘도 나는 출근한다.
전근무지를 그리워할 시간조차 없다. 전근무지 부장님들과 5일에 보기로 했던 약속은 연이은 야근으로 미뤄졌고, 결국 12일, 서울 공연을 본 뒤늦은 식사로 다시 약속을 잡았다. 사람은 여전히 이어져 있지만 시간은 예전처럼 머물러 주지 않는다.
야근의 시간, 그리고 버팀
발령 후 매일 야근이 이어지고 있다. 서류는 쌓이고, 일정은 겹치고, 눈은 쉽게 피로해진다.
정신을 차릴 새 없이 하루가 지나가지만 그 틈마다 직원분들의 배려가 손처럼 내 어깨를 받쳐준다.
“천천히 하셔도 됩니다.”
그 한마디에 숨을 고르고 다시 자리에 앉는다. 고단하지만, 외롭지는 않다.
마음으로 도착한 선물들
와플은 십여 년 전 함께 근무했던, 여전히 사랑스러운 주무관에게서 왔다. 시간이 흘러도 마음은 늦지 않는다는 걸 그 와플이 알려주었다.
떡보의 하루는 깊은 인연으로 만난 실장님에게서였다. 그것도 두 박스나 되는, 쉽게 고를 수 없는 고가의 떡이었다. 말보다 오래 남는 신뢰가 어떤 것인지 그 떡 한 상자, 아니 두 상자에 담겨 있었다.
백년화편은 안 박사 주무관과 윤 주무관의 마음이었다. 정성은 늘 조용히 오고, 그래서 더 오래 남는다.
귤과 한라봉은 늘 아낌없이 배려해 주시는 부교육감님께서 보내주셨다. 신맛을 좋아하는 나를 기억해 집으로까지 닿게 한 깊은 배려였다.
도서는 늘 큰 도움을 주시는 국장님께서 택배로 보내주셨다. 말없이 도착한 그 책은 앞으로도 흔들리지 말라는 응원처럼 느껴졌다.
이 모든 마음 앞에서 나는 조금 단단해진다. 감사함은 든든함으로 바뀐다.
고향집의 겨울
시골집 욕실 변기는 얼어버렸다. 샤워부스는 이불로 둘둘 싸매 두었고, 주방에서는 찬물 쪽이 나오지 않는다. 전기세가 걱정되어 거실 쪽만 보일러를 켰다.
전기세를 아끼는 일은 생활의 요령이라기보다 지금의 삶을 통과하기 위한 하나의 참 고비처럼 느껴졌다.
연천 고향집의 온도는 영하 17도. 춥고 불편했지만, 그 집은 여전히 나를 쉬게 한다. 불편함보다 익숙함이 먼저 말을 거는 곳이었다.
1월 4일, 아버지를 만나 뵌 날
아버지를 뵈러 갔다. 고향집 이야기를 전하고, 발령받은 근무지 이야기도 함께 나누었다. 아버지는 내 말을 조용히 들으셨다. 새로운 자리, 낯선 사람들, 늦어지는 퇴근 이야기까지 하나도 끊지 않고 들으셨다.
그리고 짧게 말씀하셨다.
“잘 지내고, 모든 분들께 친절해라.”
“네, 전 늘 친절합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웃으며 말했다.
“안다.”
그 말에는 믿음도, 걱정도, 기도도 함께 들어 있었다. 고생한다는 말이 그 한마디에 다 담겨 있었다.
아버지의 확인
다리 운동도 하고 계신지, 그림도 그리고 계신지
내가 여쭈었다.
아버지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씀하셨다.
“잘했다.”
나는 웃으며 다시 여쭈었다.
“거짓말이죠?”
그러자 아버지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말씀하셨다.
“진실이다.”
그 말은 칭찬이라기보다
내 질문에 대한 아버지의 대답이었다.
아버지가 스스로를 괜찮다 말해 주신 순간이었고,
나는 그 말을 그대로 받아 두었다.
책 이야기
아버지는 또 물으셨다.
“책은 언제 나오냐.”
그 질문에는 재촉보다 기다림이 먼저 있었다. 언제가 되든 결국은 나오리라는 믿음처럼 들렸다.
“한참 걸려요.” 하고 대답하자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다시 말했다.
“쓴 거, 나도 보게 해 주렴.”
완성된 책이 아니라 지금 쓰고 있는 글이라도 괜찮다는 뜻처럼 들렸다. 과정도 책의 일부라는 말 같아서 마음이 조용해졌다.
나는 큰 글씨로 열 장 정도를 뽑아 다음에 가져다 드리기로 했다. 읽기 편하게 줄 간격을 넓히고, 페이지 번호도 매겼다. 아버지가 천천히, 끊기지 않고 읽을 수 있도록.
아버지에게 보여주기 위해 쓰는 글이 있다는 사실이 나를 다시 책상 앞에 앉게 한다. 누군가에게 건네질 글이라는 생각이 문장을 다르게 만든다.
에필로그
일은 많고, 몸은 피곤하지만 나는 오늘도 사람 덕분에 견딘다. 와플과 떡, 귤과 책, 그리고 아버지의 말까지. 하루를 지탱하는 중심은 늘 관계였다.
나는 여전히 이동 중이지만 마음은 흔들리지 않는다. 이만하면, 잘 버티고 있다.
작가의 말
이 글은 ‘견딘다’는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며 쓴 기록입니다. 야근과 피로 속에서도 하루를 통과하게 하는 건 결국 사람의 마음이었습니다.
조용한 배려, 기억해 주는 마음, 아버지의 짧은 말 한마디가 나를 다시 중심으로 돌아오게 했습니다.
이 글이 누군가에게 “지금도 잘 버티고 있다”는 작은 확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다음 편 예고
춥고 불편한 고향집에서 나는 ‘참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전기세를 아끼는 문제부터 생활의 불편을 줄이기 위한 업체 요청과 현실적인 방법들까지. 다음 편에서는 견디는 삶에서 조금 덜 참는 쪽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를 천천히 써 내려가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