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심스러운 하루, 그리고 덜 참는 쪽으로
프롤로그
새로운 곳에 서면, 사람도 말도, 그리고 나 자신도 한 걸음씩 살피게 된다.
그날, 1월 8일은 직장 행사로 내 차를 넓은 운동장에 세워야 했다. 내리막길, 조수석 쪽에서 갑작스러운 소리.
쿵쾅.
순간 심장이 먼저 내려앉았다. 타이어 휠이 파였다. 앞뒤로 선명한 흠집.
출고한 지 다섯 달 된 새 차였다. 교체 비용도 비싸, 휠 복원으로 두 짝에 30만 원 정도 들어갈 상황이었다.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마음 한쪽이 오래 서걱거렸다.
야근의 연속, 그리고 몸의 신호
서류 마감으로 야근이 이어졌다.
출근하자마자 하품이 연신 나왔다. 피로는 쌓였고, 집중력은 쉽게 흩어졌다.
그럼에도 하루가 무너지지 않은 건, 여전히 사람이었다.
직원들과 나눈 짧은 대화, 웃음 섞인 한마디가 생각보다 큰 힘이 됐다.
피곤한 하루 속에서도 마음속에는 “그래도 오늘은 괜찮았다”는 말이 남았다.
작은 배려의 방향
커피와 웃음
천정형 냉난방기 바람이 얼굴을 정면으로 맞췄다. 며칠 사이 얼굴에 붉은 반점이 올라왔다. 따갑고 괴로웠다.
차에서도 에어컨 알레르기, 난방 열기로 잘 틀지 못한다.
1월 8일 늦은 야근 중, 주무관님께서 가림막 “제가 해드릴까요?” 하셨다. 나는 “그럼 내일 부탁드릴게요.” 하고 다음 날로 미뤘다.
그런데 1월 9일 아침, 출근하니 이미 환경 주무관님이 출근 전에 다 해놓으신 상태였다.
나는 깜짝 놀랐고, 종이컵에 노란 맥심 커피를 타서 감사 인사를 전했다.
주무관님은 향을 맡으며 웃으며 말했다.
“향기롭네요. 맛도 참 좋습니다.”
환경 주무관님은 내 얼굴을 보며 다정하게 말씀하셨다.
“계장님, 고운 피부 망가지면 안 되죠.”
주무관님은 한발 늦었다고 장난스럽게 하셨고, 모두 웃었다.
작은 배려와 웃음, 커피 향과 피부 걱정이 함께 어우러져 피곤한 하루가 훨씬 따뜻하게 느껴졌다.
덜 참는 선택
새로운 직장에서는 작은 행동 하나에도 조심스러웠다.
난방용 가리개를 설치해도 되는지, 혹시 불편하지 않을지 말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그러자 환경 주무관님은 아무렇지 않게 손봐 주셨고, 말없이 가리개가 제자리에 있었다.
작은 배려와 배려를 주고받는 마음이 하루를 견디게 하는 힘이 되었다.
아버지의 소식과 안도
아버지를 바로 뵙지 못한 날, 나래 선생님께서 사진을 보내주셨다.
걷기 연습, 1월 달력 색칠, 족욕 시간.
사진 속 아버지는 팔자걸음으로 느리게 걷지만, 한 걸음 한 걸음에 의지가 느껴졌다.
달력에 색을 칠할 때는 집중하며 손가락을 꼼꼼히 움직이셨고, 족욕하며 잠시 눈을 감는 모습에서 편안함이 묻어났다.
“오늘도 잘 지내셨구나.”
그 모습만으로 마음이 놓였다.
곁에 있지 않아도 안부와 작은 순간들이 전달되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었다.
빠른 봄이 오면 새싹이 돋고, 꽃이 피고, 감자도 심어질 고향집이 떠올라 잠시 마음이 행복으로 물들었다.
아버지 뵙고
주말, 아버지를 요양원에서 뵈었다.
아버지는 블루그레이 색의 BYC 수면잠옷을 입고 계셨다. 얼굴이 화사하게 빛났다.
짧게 인사를 나누고, 새 직장 이야기와 발령 후 일상을 말씀드렸다.
아버지, 저 최계장이에요.
그러자 아버지는 나를 ‘계장님’이라고 부르며 웃으신다.
“최계장, 잘해 하하하.”
마음이 조금 더 따뜻해졌다.
아버지는 빵빵이 사진, 특히 이발한 모습도 보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에 나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잠시 웃음이 번졌다.
브런치에 올린 글을 크게 출력한 여러 장을 드렸고, 아버지는
“고맙다. 잘 볼게. 우리 딸 최작가 수고했다.”
고향집 그리고 만권의 책
요양원에서 아버지를 뵌 뒤, 고향집으로 향했다.
겨울의 차가움이 아직 남아 있었지만, 집에 들어서니 익숙한 온기가 나를 맞았다.
나는 글쓰기 일부를 크게 출력해 아버지께 가져다 드릴 예정이다.
글씨를 키우고 여백을 넉넉히 두어, 아버지가 천천히, 끊기지 않고 읽을 수 있게 해 드릴 예정이다.
책 제목은 아버지가 정해주시면 좋을 거 같다.
아버지는 늘 조용히 나를 바라보시지만, 마음속 깊은 응원을 느낄 수 있다.
나는 속으로 다짐했다. 언젠가 나의 첫 책이 세상에 나올 때, 아버지가 꼭, 열 권이 아니라 만 권이라도 기꺼이 사주실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그 약속을 마음속으로 시켜드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책 한 권 한 권이 아버지와 나의 이야기를 담고, 세상에 닿는 순간, 그 모든 노력이 결실로 이어질 거라는 믿음이 내 안을 따뜻하게 채웠다.
화단과 마당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빠른 봄이 오면 새싹이 돋고, 꽃이 피고, 감자도 심어질 것이다.
작은 자연의 변화가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잠시나마 행복으로 마음을 채워주었다.
심야 전기는 밤 10시부터 다음 날 새벽 6시까지 풀가동된다.
겨울철 전기 사용이 늘어나면 전기세 폭탄이 이어질까 걱정되었다.
월 전기세가 백만 원은 족히 나올 듯하다는 계산이 머리를 스쳤다.
하지만 타이머를 설치해 효율적으로 조정하면, 예상 전기세는 삼십만 원 정도로 줄일 수 있다고 했다.
그 말에 마음 한편이 한결 가벼워졌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욕실 변기와 수도가 얼지 않고, 거실과 방 안이 포근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값진 선택일 거 같다.
참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조금 덜 참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차갑던 공간을 따뜻한 온기로 바꾸어 주었다.
이제 고향집은 전기세 걱정보다는, 마음껏 편히 머물 수 있는 안전하고 포근한 안식처로 느껴졌다.
참는 것 말고, 조금 덜 견디는 방법을 선택해도 괜찮다는 걸 이제야 배운다.2
귀가 후 행복
집에 11시쯤 귀가하면 빵빵이는 막 달려들어 점프를 하고,
“엄마 사랑해, 잉잉.”
엄마 방을 열어달라고 하거나 꼭 안고 자기도 한다. 포근하게 안아주면 둘 다 행복하다.
출근 때면
“빵아, 네가 가서 일하고 와.”
라고 하면 빤히 쳐다본다.
빵빵이는 나의 진심 어린 사랑과 행복, 웃음을 그대로 돌려준다. 피곤함도 사라진다.
정말 행복하다. 너는 나의 진심 사랑이다.
에필로그
차의 흠집은 여전히 남아 있고, 피로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하루를 통과하게 하는 것들은 분명하다.
작은 배려, 멀리서 온 안부, 따뜻해질 고향집, 읽어주는 아버지의 시간, 빵빵이의 사랑.
나는 여전히 이동 중이지만, 예전보다 덜 참는 쪽으로 걷고 있다.
이 변화만으로도 충분하다.
작가의 말
이 글은 ‘견딘다’는 의미를 다시 생각하며 쓴 기록이다.
하루하루 바쁘고 지쳐도, 우리를 지탱하는 힘은 결국 사람과 마음이다.
작은 배려, 멀리서 오는 안부, 따뜻해질 고향집, 사랑스러운 존재가 주는 웃음과 위로가 하루를 통과하게 한다.
누군가 이 글을 읽으며 “지금도 잘 버티고 있다”는 작은 확인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덜 참고, 조금 더 따뜻하게 살아가는 방법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다.
다음 편 예고
다음 편에서는 차의 흠집을 수리할지, 그냥 두기로 할지 고민하는 일부터 시작한다.
또한 일과 마음 사이의 균형을 다시 조정하며, ‘아끼는 것’과 ‘내려놓는 것’ 사이에서의 선택을 기록하려 한다.
빵빵이와 함께하는 일상의 소소한 행복, 고향집에서의 작은 변화, 따뜻한 봄을 기다리며 새싹이 돋고 꽃이 피는 풍경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로, 아버지의 손을 잡은 막내딸의 따스한 시간들을 독자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작은 깨달음을 전하고 싶다.
고향집 장남교의 하트선물
장남교를 건널 때면 늘 하늘을 올려다보며 구름을 담곤 했다.
오늘은 2026년 1월 11일, 오후 두 시.
잠깐 고개를 들었을 뿐인데 하트 모양의 구름이 눈앞에 떠 있었다.
마치 일부러 보여주러 온 것처럼 선명했다가,
붙잡을 틈도 없이 순식간에 흩어져 사라졌다.
그래서 더 좋았다. 오래 남지 않아도 괜찮은 순간.
사진도 남기지 못했지만, 그 잠깐의 하늘이 마음에 오래 남는다.
지나가며 마주친 작은 신호 같아서,
지금 이 순간이 괜찮다고, 충분히 잘 살고 있다고
조용히 말해주는 것 같았다.
이런 찰나를 알아보는 마음,
그걸로 오늘은 이미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