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과 사람의 온기, 버틴다는 말 대신

새 출발 자리에서 좋은 분들을 만나며, 나는 흔들리지 않고 잘해 나가고

by 최순옥
프롤로그

겨울 꿈, 오래된 집이 먼저 떠오르다

며칠째 잠을 설친다. 이유를 정확히 붙이기엔, 마음이 먼저 지쳐 있다. 몸은 잠을 원하지만 생각은 자꾸 다른 곳으로 새어 나간다. 그럴 때면, 오래된 기억이 먼저 꿈으로 찾아온다.

어젯밤 꿈에는 연천의 겨울이 나왔다. 매서운 바람과 함께 쉰 해를 훌쩍 넘긴 우리 집. 벽돌 사이로 스며드는 찬 기운, 수없이 고쳐도 남아 있던 외풍까지 그대로였다. 꿈속의 집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고, 나는 그 집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오래된 집, 그리고 70만 원의 선택

현실의 고향집도 크게 다르지 않다. 보일러를 바꾸는 데 70만 원이 들었다. 적지 않은 금액이었고, 잠시 망설임도 있었다. 하지만 더 미루면 집도, 사람도 더 추워질 것 같았다.

기사님은 타이머 설정을 천천히 설명해 주셨다. 나는 기계에 약해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였고,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헷갈리시면 언제든 영상통화 주세요.”

그 한마디에 마음이 먼저 데워졌다. 난방보다 먼저 들어온 건, 사람의 온기였다. 집은 여전히 낡았지만, 오늘은 조금 덜 춥게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박공집을 꿈꾸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고향집을 박공집으로 다시 짓는다면 어떨까. 아늑하고, 볕이 잘 들고, 겨울에도 덜 춥게.

마당에는 작은 화단을 두고, 아버지가 천천히 걸을 수 있는 평평한 길을 내고 싶다. 계절마다 꽃이 바뀌고, 감자를 심고, 그 변화를 함께 바라보는 집. 언젠가는 그 집으로 아버지를 모시고 살고 싶다.

아직은 꿈에 가깝지만, 이런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잠시 편안해진다.


사무실, 가래떡 한 말의 행복

사무실에서는 가래떡 한 말이 들어왔다. 특별한 날도 아니었지만, 떡을 나누며 웃음이 오갔다. 소소한 간식 하나에도 하루의 공기가 달라진다.

사람들 사이에서 오가는 말, 손길, 웃음이 생각보다 큰 힘이 된다. 버틴다는 말 대신, 이렇게 나눈 온기가 하루를 지탱한다.


생일, 예술 앞에서 울컥해지다

장 미셸 바스키아, 삶의 균열을 그리다

어제는 내 생일이었다. 조용히 지나갈 수도 있었지만,

전 학교 부장님들과 함께 동대문 DDP에서 전시를 보았다. 장 미셸 바스키아.


바스키아의 그림은 단정하거나 친절하지 않다. 거친 선, 낙서 같은 문자, 해부학적 인체, 반복되는 왕관은 그의 분노와 불안, 흑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사회에 대한 저항을 그대로 드러낸다. 아이의 그림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날카로운 시대 인식과 깊은 고독이 숨어 있다. 그는 상처를 숨기지 않고 화면 위에 그대로 올려놓는 화가였다.


내레이션으로 흐르던 박보검의 목소리, ‘삶의 찬란함’이라는 문장이 유독 오래 남았다. 화려한 색감 뒤에 감춰진 우울과 고통을 끌어안고도 끝내 붓을 놓지 않았던 한 예술가의 생이, 내 지난 시간들과 겹쳐 보였다. 작품 앞에서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울컥함은 그림 때문이기도 했고, 여기까지 버텨온 나 자신 때문이기도 했다.

이어진 밤, 빛과 사람들

전시 이후에는 식사를 하고, 청계천 빛축제를 천천히 걸었다. 겨울밤의 불빛은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묘하게 따뜻했다. 사람들 사이로 흐르는 불빛을 바라보며, 하루가 이렇게 마무리되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로의 작은 와인바에 들러 조용히 잔을 기울였다.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과의 대화는 특별한 주제가 없어도 충분했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웃고, 잠시 침묵해도 어색하지 않은 시간. 집에 도착하니 밤 11시를 넘겼다. 몸은 분명 피곤했지만, 마음 한편은 이상하게 가벼웠다.


다시 아버지에게로

그제는 악몽을 꾸었다.

이유를 설명하기도 전에, 마음이 먼저 잠을 거부한 밤이었다.


집에 돌아오면 늘 같은 걱정이 고개를 든다.

‘아버지는 괜찮으실까.’

내일은 조퇴를 하고 아버지를 뵈러 갈 예정이다. 얼굴을 보고, 손을 잡고, 짧은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훨씬 단단해진다. 말이 길지 않아도 괜찮다. 함께 있는 시간 자체가 이미 충분한 위로이니까.


에필로그

덜 춥게, 덜 외롭게 살아가는 법

집도 사람도 그렇게 조금씩 살아간다. 완벽해지지 않아도, 덜 춥게, 덜 외롭게.

난방은 여전히 필요하고, 걱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지만, 오늘은 사람의 말 한마디와 빛, 예술, 작은 음식이 하루를 통과하게 했다.

작가의 말

‘버틴다’ 대신 ‘함께 견딘다’는 기록

이 글은 ‘버틴다’는 말 대신, ‘함께 견딘다’는 감각을 기록한 이야기다. 집의 온기, 사람의 말 한마디, 예술이 건네는 질문은 모두 우리를 조금 더 살게 만든다.


우리는 종종 혼자서 다 견뎌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돌아보면, 버텨낸 하루의 대부분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만들어진다. 기사님의 한마디, 사무실에서 나눈 웃음, 예술 앞에서의 울컥함, 그리고 아버지를 향한 마음까지. 이 작은 연결들이 하루를 무너지지 않게 붙잡아준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완벽하지 않은 하루를 지나고 있을 것이다.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덜 참아도 괜찮다고,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다음 편 예고

집을 고친다는 것, 사람을 돌본다는 것

다음 편에서는 아버지를 직접 뵌 날의 기록과, 고향집에서 다시 마주한 시간의 흔적을 담으려 한다. 집을 고친다는 것과 사람을 돌본다는 것의 의미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는 이야기가 이어질 예정이다.

목,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