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과 사람의 온기, 고친다는 마음

아버지의 희망, 고향집에 가고 싶다

by 최순옥


프롤로그

한겨울의 고향집은 사람이 없어도 지나치게 차갑지는 않았다.

보일러를 바꾼 지 며칠, 집은 비어 있었지만 공기는 이전과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오래 닫혀 있던 집 특유의 냉기가 조금 걷힌 느낌이었다.


아버지는 지금 이 집에 계시지 않는다. 요양원에 계신다.

그 사실이 집 안을 더 조심스럽게 바라보게 만든다. 사람이 없어진 집을 들여다보는 일은, 남겨진 시간을 하나씩 확인하는 일과 닮아 있었다.



겨울에는 크게 고치지 않는다

한겨울에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벽을 뜯거나 마당을 손보는 일은 애초에 생각하지 않는다. 추운 계절에는 집도 괜히 건드리지 않는 편이 낫다.

그날 내가 한 일은 아주 사소했다. 헐거워진 방문 문짝을 다시 맞추고, 깜빡거리던 주방 조명을 교체했다. 불이 환하게 켜지자 집은 잠시 숨을 고르는 것처럼 보였다. 대단한 수리가 아니라도 집은 이렇게 작은 손길에 반응한다. 아직 괜찮다는 신호처럼.


사람 없는 집을 돌본다는 것

아버지는 요양원에 계신다. 이 집은 지금 비어 있지만 완전히 비어 있지는 않다.

아버지가 쓰던 컵, 벽에 걸린 달력, 창가에 놓인 오래된 의자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책을 읽거나 눈을 감고 있는다.

페이지를 넘기다 멈추기도 하고, 글자가 흐려질 때면 그대로 눈을 감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처럼 보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아버지가 잠시 곁에 앉아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조용해진다.


나는 그 물건들 사이를 천천히 걸으며 생각했다. 집을 고친다는 건 지금 여기 없는 사람을 위해,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자리를 남겨두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집은 사람이 없을 때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지도 모른다.


요양원으로 이어지는 보고

집을 정리한 뒤 요양원으로 향했다.

아버지는 늘 그렇듯 창가 쪽에 누워 계셨다. 내가 들어서자 먼저 나를 알아보고 손을 흔들어 주셨다.

“보일러 고쳤어요. 이제 집이 전보다 훨씬 덜 춥습니다.”

아버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셨다.

“주방 조명도 하나 갈아뒀어요. 불 켜니까 집이 좀 환해졌어요.”

길지 않은 말이었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아버지는 집에 계시지 않아도, 집 이야기는 여전히 우리 사이를 이어준다. 온기는 이렇게 거리 너머에서도 조용히 오간다.


아버지의 근황

주방 등 교체 사진을 보여드리자 아버지는 한참을 들여다보셨다.

“아주 예쁘구나.”

그리고 덧붙이셨다.

“봄에… 아버지 집에 가요. 집으로요.”

요즘 아버지는 요양원 생활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계신다. 소변줄과 콧줄을 하고 계신 모습은 여전히 마음을 무겁게 하지만, 하루의 리듬은 유지되고 있다. 식사는 정해진 시간에 하시고, 컨디션이 괜찮은 날에는 족욕 시간에 발을 담그고 오래 앉아 계신다.

“물이 따뜻하다”는 말만은 또렷하다.

그리기 활동에도 가끔 참석하신다. 끝까지 하지는 못해도 색연필을 쥐고 종이를 바라보는 시간만으로 충분해 보인다. 복도 걷기 활동도 가능한 날에만 조금씩 하신다. 길지 않은 몇 걸음이 하루를 건너는 힘이 된다.


아버지는 오늘도 주민등록번호, 주소, 군번, 통장 비밀번호를 정확히 말씀하신다. 그리고 유일하게, 내 휴대전화 번호를 잊지 않으신다.

형이 보고 싶다고 하신다. 큰아버지가 많이 보고 싶다고도 하신다.

아버지는 형님을 아주 좋아하셨다. 그리고 큰아버지의 말씀은 법처럼 여기셨다. 할아버지의 말씀을 따르듯, 큰아버지의 말이라면 이유를 묻지 않고 따르셨다고 했다. 그 질서 속에서 아버지는 평생을 살아오셨다.

“누가 제일 보고 싶어요?” 하고 묻자, 어머니 이름을 부르신다.

“옥님이 가 제일 보고 싶어.”


가끔은 나이를 혼란스러워하신다. 89세를 조금 더 살고 싶다고 하시다가, 이내 92세라고도 말씀하신다. 나는 그 숫자를 바로잡지 않는다. 그저 얼굴과 손, 팔과 목, 귀를 닦아드리고 마사지를 하고 다리 운동을 시켜드린다. 지금의 아버지에게 필요한 건 정확한 숫자보다, 손길이다.


“아버지 소원이 뭐예요?”

아버지는 고개를 저으신다. 없다고 하신다.

하지만 그 말속에 분명 하나는 있다.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다.

나는 울지 않았다. 다만 가슴이 잠시 막혀왔다.



내 자리의 근황

아버지께는 집 이야기 다음으로 내 이야기를 전했다. 직장에서는 잘 지내고 있고, 새로운 자리에서도 좋은 분들을 만나 흔들리지 않고 제 몫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계장 님이 늘 괜찮다고 살펴봐 주신다는 말에 아버지의 표정이 조금 느슨해졌다. 괜히 더 잘 지내는 척할 필요는 없었다. 지금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전하는 것, 그것이 나의 보고였다.


딸의 생일

그리고 생일 이야기도 덧붙였다.

조용히 지나갈 수도 있었지만, 생각보다 따뜻한 하루였다고 말했다. 전시를 보고,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며 여기까지 잘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생일날 직장에서 직원분이 가래떡 한말을 해 오셨다.

가래떡 한 말이 안겨준 행복. 김에 싸서 꿀에 찍어 하나씩, 멈추지 않고 계속 먹었다. 엄마의 가래떡이 지나간 자리에 이제는 아버지의 가래떡이 남아 있다. 씹을수록 그 맛이 또렷해져서, 오래된 기억과 지금의 온기가 함께 어우러진다. 그 맛을 느끼는 순간, 나는 분명히 행복하다.

아버지께 직원들과 나누었다고, 사진도 보여드렸다.

떡을 나누는 장면을 한참 바라보시던 아버지는 잠시 후 이렇게 말씀하셨다.

“감사하는구나.

너도 떡 한 말해서 나눠라. 아버지가 보낸 걸로.”

그 말에 생일이 또렷해졌다.

크게 축하받지 않아도, 케이크가 없어도 괜찮았다. 나누라는 말 하나로 하루가 충분히 따뜻해졌다.

아버지는 말없이 다시 화면을 바라보셨다. 그 침묵이 괜찮다는 뜻이라는 걸 나는 안다.


고친다는 말의 다른 의미

예전에는 ‘고친다’는 말이 원래대로 되돌리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지금의 상태에서 덜 불편하게 만드는 일. 그게 고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의 하루도, 이 집의 겨울도, 그리고 나의 마음도 지금은 그렇게 조심스럽게 유지되고 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은 상태를 지켜내는 것, 그것이 지금의 목표다.


에필로그

사람은 집을 떠나도 집은 사람을 기다린다. 완벽하게 준비하지 않아도, 불 하나 켜두고 문 하나 바로잡는 것만으로도 기다림은 계속된다.

아버지는 요양원에 계시고 집은 비어 있으며 겨울은 깊다. 그럼에도 하루는 이렇게 이어진다. 누군가는 창가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누군가는 집의 온도를 확인하고, 누군가는 떡을 나누라는 말을 마음에 담고 돌아온다.

나는 오늘도 집을 살피고, 아버지께 보고하고, 내 자리로 돌아온다. 그 반복이 지금의 우리를 이어준다. 그것이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돌봄이다.


작가의 말

이 글은 집수리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관계를 유지하는 방식에 대한 기록이다. 완전한 회복이 아니라 지금의 조건 안에서 덜 아프게, 덜 차갑게 살아가는 방법을 적어두고 싶었다.

요양원과 고향집, 직장과 집 사이를 오가며 나는 알게 되었다.

돌봄은 반드시 곁에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 한마디, 보고 하나, 사진 한 장, 그리고 나누라는 마음 하나로도 관계는 이어진다는 것을.

잘하지 못해도, 멈추지 않고 살피고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다음 편 예고

다음 편에서는 요양원과 고향집 사이를 오가며 생기는 시간의 간극을 조금 더 들여다보려 한다. 비워진 집을 바라볼 때마다 마음에 남는 감정들, 함께 살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도 이어지는 돌봄의 형태를 기록하고자 한다.

또한 ‘보고한다’는 말이 단순한 전달을 넘어 책임과 신뢰, 사랑으로 이어지는 과정이라는 점도 더 깊이 써보려 한다.

목,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