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생신날, 아버지와 7시간 손을 잡고 고향집 땅을

아버지와 나의 눈물

by 최순옥


프롤로그

2026.2.24.생신날의 아침은 생각보다 고요했다.

크게 준비한 것도, 미리 정해둔 말도 없었다. 오늘은 축하를 잘 해내는 날이 아니라 아버지 곁에 오래 머무는 날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요란함보다 다정함이 어울리는 하루, 말보다 손이 먼저 가는 하루가 되기를 바랐다.

차를 몰고 요양원으로 향하며 마음속으로 같은 말을 여러 번 되뇌었다. 오늘은 잘하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떠나지 말고, 서두르지 말고, 곁에만 있자고. 생신이라는 이름보다 ‘함께 있는 시간’이라는 실체를 더 믿어보기로 했다.

요양원에서의 준비 ① 몸을 정리하는 시간

요양원에 도착해 가장 먼저 한 일은 아버지의 얼굴을 닦는 일이었다. 세수를 시켜드리고 손과 발을 천천히 닦았다. 코털을 정리하고 눈썹을 다듬고 귀를 조심스럽게 닦아드렸다. 로션을 손바닥에 덜어 얼굴과 손, 팔을 마사지하자 아버지는 말없이 몸을 맡기셨다.

이런 시간에는 말이 줄어든다. 대신 숨소리와 손의 리듬이 대화를 대신한다. 아버지의 피부는 예전보다 얇아졌고 뼈의 윤곽은 더 또렷해졌지만 체온은 여전했다. 그 온기가 손끝에 오래 남았다. 오늘 하루를 버티게 해 줄 중심 같은 온기였다.

요양원에서의 준비 ② 생신선물을 고르는 방식

“아버지, 생신선물 뭐가 좋으세요?”

잠시 생각하시던 아버지는 주저 없이 “고향집”이라고 하셨다.

그 한마디로 오늘의 방향은 정해졌다.

선물을 고르는 일이 아니라, 어디로 갈지를 결정하는 일이 되었다.

초겨울에 사드린 모달 잠옷을 안에 이중으로 입혀드리고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닥스 모달 경량 점퍼에 목도리와 모자까지 단단히 챙겼다. 물건을 더하는 대신 체온을 겹쳐 입히는 방식이었다. 휠체어로 모셔 차에 태우는 순간, 오늘은 아버지와의 데이트라는 생각이 분명해졌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하루가 아니라, 우리 둘만의 약속 같은 하루였다.


아버지 생신 선물

아버지께 드린 선물은 단순하지만 마음을 담은 것들이었다.


네이비 체크 닥스 셔츠 – 부드러운 촉감에 아버지는 미소

지으셨다.

ㆍ양말 다크 체크 블랙·그레이 – 발끝까지 따뜻하게.

향기 좋은 로션 – 손과 팔을 마사지하며 온기를 더했다.

아버지는 하나하나 손으로 만져보며, 천천히 향과 감촉을 느끼셨다. 모든 것이 마음에 드신 듯, 얼굴에 만족스러운 표정이 번졌다. 물건 자체보다, 딸이 준비한 마음과 체온을 함께 받으신 느낌이었다.


고향집으로 가는 길

차를 바꾼 지 다섯 달 만에 처음으로 아버지를 모시고 고향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나는 자꾸 백미러를 확인했다. 혹시 눈을 감으신 건 아닌지, 숨은 잘 쉬고 계신지, 앙상한 나뭇가지처럼 더 여위어 보이지는 않는지. 애정과 불안은 늘 한 묶음으로 따라왔다.

“아버지 힘드시면 되돌아갈까요?”

조심스럽게 묻자 아버지는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아니다. 고향집으로 가자.”

그 짧은 문장에 고집과 그리움, 그리고 여전히 살아 있는 선택의지가 함께 담겨 있었다.


고향집 마당에는 햇살이 가득했다.

차 창을 여니 공기가 먼저 들어왔다. 큰집, 작은오빠, 큰오빠, 옆집 아저씨와 인사를 나눴다. 오는 길에 큰집 장손 기섭이를 봤다며 아버지는 “봐서 좋다”라고 하셨다. 집은 비어 있었지만 차갑지 않았다. 사람은 없어도 온기는 남아 있었다.


다시 요양원, 생신의 장면

요양원으로 돌아와 나는 갑자기 막춤을 췄다. 어색함을 이기려는 몸의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큰 소리로 노래했다. “생신 축하합니다.” 요양보호사님도 박수를 치셨다. 그 박수 소리가 방 안의 공기를 한층 부드럽게 만들었다.


“아버지 닮아서 얼굴도 작고 미녀세요.”

벽에 붙은 아버지의 카츄사 시절 사진을 보며 “꽃미남이셨네요”라는 말이 이어졌다.

“저도 최 씨예요. 전주 최 씨예요.”

내 말에 아버지는 요양보호사님의 손을 잡고 “몇 대손이냐”라고 물으셨고, 방 안에는 웃음이 번졌다.

“집안이네요. 그럼 더 잘하겠습니다.”

그 말에 아버지는 박수를 치셨다. 생신의 형식은 그렇게 완성되었다.


아버지와 나의 눈물

“쓰담쓰담해야지.”

아버지는 내 머리를 계속 쓰다듬으셨다.

머리가 뻣뻣하다고, 짧아서 춥지 않겠냐고 같은 말을 여러 번 하셨다. 그리고 내 목을 살짝 간지럽히며 장난스럽게 웃으셨다. 그 반복 속에는 걱정과 사랑이 섞여 있었다.


나는 그 손길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아버지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참으려 했지만 울음은 생각보다 빨리 나왔다. 애증처럼 쌓여 있던 서러움이 복받치듯 터졌다. 잘해온 딸이고 싶었던 마음, 놓치지 않으려 애쓴 시간들, 그럼에도 다 붙잡을 수는 없었던 현실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아버지는 잠시 놀라더니 웃으며 말했다.

“일어나. 하하하, 웃자.”

장난기 섞인 미소였다.

나는 울다 웃었고, 아버지도 따라 웃으셨다. 울음과 웃음이 같은 자리에 머물렀다. 그 순간만큼은 병도, 시간도 잠시 비켜난 듯했다.


에필로그

아버지의 여든아홉 번째 생신은 화려하지 않았다.

케이크도 잔치도 없었다. 대신 손이 있었고, 같은 말을 여러 번 건네는 시간이 있었다.


백미러로 확인하던 불안, 고향집으로 향하던 결심, 막춤과 박수, 가슴에 묻힌 울음이 남았다.


오늘은 아버지와의 7시간 데이트였다. 오래 있었고, 많이 만졌고, 충분히 울었다. 돌봄은 거창하지 않았다. 곁에 머무는 일, 손을 내미는 일, 울음을 밀어내지 않는 일. 그것으로 충분한 하루였다. 오늘의 다정함은 오래 남을 것이다.


고백처럼 남는 생각

하루가 끝나갈 무렵, 오래 묻어두었던 장면이 다시 떠올랐다.


2025년 3월, 아버지가 심정지로 쓰러졌던 날.

그때 나는 아버지를 붙잡았다. 보내지 않았다. 살려야 한다는 마음 하나로 모든 선택을 밀어붙였다. 그 이후로 오래도록 생각했다.

내가 아버지를 살린 것이 아니라, 어쩌면 고통을 더 길게 만든 것은 아닐까. 딸이라는 이름으로 한 선택이, 아버지에게는 짐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 속에서 나는 스스로를 죄인처럼 세워두었다.


오늘, 아버지의 생신날에도 그 생각은 불쑥 고개를 들었다.

내가 잘 돌보고 있는 걸까. 아니면 여전히 붙잡고 있는 걸까.

곁에 있는 일이 사랑인지, 미련인지 헷갈리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으셨다.

“웃자.”

그 말 앞에서 나는 처음으로 생각을 내려놓았다.

붙잡았다는 죄책감도, 놓아야 했다는 가정도 잠시 옆으로 밀어두었다.

오늘의 아버지는 고통받는 사람이 아니라 웃고 손을 내미는 사람이었고,

오늘의 나는 죄인이 아니라 그 손을 받는 딸이었다.


작가의 말

이 글은 잘 해낸 생신을 기록하려는 글이 아니다. 말보다 손이 많아진 하루, 설명보다 몸이 먼저 반응한 시간을 남기고 싶었다.


돌봄은 언제나 언어보다 감각으로 먼저 다가온다. 따뜻함, 무게, 반복되는 손길 같은 것들이다.


오늘 나는 아버지를 돌봤다기보다 아버지와 함께 있었다. 애증과 사랑을 굳이 구분하지 않은 채 하루를 보냈고, 눈물과 웃음을 같은 자리에 두었다. 잘하지 못해도 괜찮은 날이 있다는 것, 충분히 애썼다면 그걸로 족한 날도 있다는 것을 이 생신에 배웠다.


이 기록은 용서를 구하기 위한 글도, 결론을 내리기 위한 글도 아니다.

다만 죄인이라고 스스로를 부르던 날들 사이에서도

아버지는 여전히 나를 쓰다듬고 있었다는 사실,

그 사실 하나만은 정확히 남기고 싶었다

다음 편 예고

다음 편에서는 고향집에서 돌아온 뒤의 밤을 기록하려 한다. 차에서 내린 뒤에도 몸에 남아 있던 체온, 집에 도착해 혼자 앉아 느껴진 허기, 하루가 끝났다는 사실이 조금 늦게 찾아온 순간들에 대해 쓰려한다.


아버지와의 7시간 데이트가 지나간 뒤, 돌봄이 끝난 자리에 남는 감정은 무엇이었는지, 떠났기 때문에 더 또렷해진 집과 사람의 온기는 어떤 얼굴로 남았는지 조용히 돌아볼 생각이다. 크게 특별하지 않지만 오래 남을 밤의 기록으로 다음 이야기를 이어가려 한다.


목,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