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3년을, 아니 5년을 더 살고 싶어하신다.

아버지의 손가락은 세 개였다가, 다섯 개를 가리킨다

by 최순옥


돌아온 밤, 그리고 잘 적응하고 있다는 증거들

아버지의 생신 다음 날 밤은 이상하게도 늦게 찾아왔다.

집에 도착했을 때 시계는 분명 저녁을 가리키고 있었는데, 몸은 아직도 어제에 머물러 있는 느낌이었다.

차에서 내린 뒤에도 손바닥에는 아버지의 체온이 남아 있었고, 옷 안쪽에는 고향집 마당의 햇살이 접힌 채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어도 하루는 쉽게 끝나지 않았다.

허기는 늦게 왔고, 피로는 더 늦게 도착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돌봄이 끝난 자리에 남는 감정은 늘 그렇듯, 이름을 붙이기 어려웠다.

그 밤에 나는 문득 깨달았다.

나는 아버지를 붙잡고만 사는 사람이 아니라,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줄도 아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발령 후 스물 일곱째 날,

잘 적응하고 있다는 조용한 증거

발령을 받고 새로운 자리로 온 지 스물 일곱째 날이다.

처음의 긴장은 많이 가라앉았고, 출근길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건물의 공기, 엘리베이터의 속도, 사무실 문을 여는 손의 힘까지

몸이 먼저 기억한다.

‘잘 적응하고 있다’는 말은 늘 뒤늦게 실감된다.

어느 날 갑자기 확신이 드는 게 아니라,

사소한 장면들이 쌓여서 비로소 알게 된다.

아침에 먼저 인사를 건네는 얼굴들,

자리에 없는 날을 서로가 알아차리는 감각,

바쁘다는 말 대신

“밥은 먹었어요?”가 먼저 나오는 질문들.

누군가는 떡을 나눴고,

누군가는 케이크와 빵으로 마음을 되돌려 주었다.

환영회 자리에서는 웃음이 오갔고,

그 웃음에는 억지가 없었다.

사랑은 이렇게 소란스럽지 않게 오간다.

대단한 말 없이,

‘챙김’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죄인이 아닌 나

아버지 앞에서 나는 종종 스스로를 죄인처럼 세워두었다.

붙잡았다는 이유로,

보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런데 회사에서는 다르다.

나는 그저 함께 일하는 사람이고,

조금 서툴지만 성실한 사람이며,

서로에게 부담이 아니라 도움이 되려 애쓰는 사람이다.

이 차이가 나를 살렸다.

어느 한쪽에서는 여전히 흔들리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분명히 서 있다는 사실이.

돌봄만으로는 사람이 버텨지지 않는다.


사람은 누군가를 돌보면서도,

다른 자리에서는 평범하게 웃고 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걸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고친다는 마음의 방향

집을 고친다는 것은

금이 간 벽을 메우는 일만은 아니다.

사람을 고친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고친다는 마음이란,

무너진 자리를 애써 원래대로 돌려놓는 게 아니라

지금의 상태를 인정한 채

더 버틸 수 있게 하는 방향을 찾는 일에 가깝다.

아버지에게는 손을 내미는 방식으로,

일터에서는 인사를 건네는 방식으로,

나는 조금씩 다른 방법으로 같은 일을 하고 있다.

곁에 머무는 일.

서두르지 않는 일.

잘하지 않아도 계속해보는 일.


에필로그처럼 남는 생각

아버지의 생신 다음 날 밤,

그리고 발령 후 스물 일곱째 날의 아침은

전혀 다른 시간처럼 보이지만

내 안에서는 같은 선 위에 놓여 있다.


한쪽에는 여전히 죄책감이 남아 있고,

다른 한쪽에는 분명한 환대가 있다.

그 사이에서 나는 오늘도 살아간다.

울음을 밀어내지 않으면서,

웃음을 외면하지도 않으면서.

‘잘 적응하고 있다’는 말은

아마 이런 상태를 가리키는 것일지도 모른다.

완벽하지 않지만,

사람들 사이에 계속 머물 수 있는 마음.


작가의 말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직장에서 비교적 편한 미소를 짓고 있다.

처음의 긴장과 조심스러움은 조금씩 옅어지고, 새로운 업무는 손에 익어가며 어느새 몸이 먼저 반응하는 단계로 들어섰다. 매뉴얼을 확인하기 전에 손이 움직이고, 망설이기보다 한 박자 빠르게 말을 건네는 나를 발견한다.


‘잘 적응하고 있다’는 말은 대단한 성취를 의미하지 않는다.

실수해도 다시 고칠 수 있다는 믿음,

모르는 것은 물어봐도 괜찮다는 공기,

그리고 하루를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 같은 것들이

쌓여 만들어지는 상태에 가깝다.

나는 지금 그 상태 안에 있다.

아버지를 돌보는 시간과 일터에서의 하루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지만, 나에게는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어느 자리에서도 나는 완벽해지기보다,

계속 머무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손에 익어간다는 것은 능숙해진다는 뜻이 아니라,

그 자리에 나를 조금 더 맡길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이 글을 쓰며 나는 확신한다.

나는 무너지지 않고 있고, 도망치지도 않았다.

편한 미소로 사람들 사이에 서서,

새로운 일을 배우며, 오늘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다음 편 예고

다음 편에서는

일터에서의 하루가 끝난 뒤,

집으로 돌아오는 저녁의 얼굴을 기록하려 한다.

아버지의 방을 떠올리며 켜는 불,

혼자 먹는 식사 속에서 불쑥 찾아오는

안도감과 미안함,

그리고 “오늘도 무사했다”는 생각이

어떤 표정으로 하루를 닫아주는지.

돌봄과 노동,

집과 일터 사이에서

내 마음은 어떻게 균형을 찾아가고 있는지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볼 예정이다.

목,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