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쓰담쓰담에 마음이 놓인다
2026.1.31, 저녁 – 고향집에 도착하다
연천의 온도는 추우면 영하 22도를 찍지만, 오늘은 추위가 좀 풀려 영하 7도를 가리킨다.
고향집에 도착하자마자 온도를 올렸다. 목욕탕 물은 얼어 있었고, 구정이면 농협에서 보내주는 가래떡과 인절미 택배도 현관에 도착해 있었다.
오랜만에 오삼겹에 버섯, 가래떡, 깻잎을 넣고 계란찜과 호박전을 만들어 먹었다.
꼬마전구를 켜니 캠핑 분위기가 났고, 겨울밤의 차가움 속에서 집 안 작은 불빛이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오늘 고향집에는 큰 고양이 세 마리가 기거하고 있었다.
그들이 낮게 울며 바닥을 살피는 모습에서, 집 안에 은근한 생기가 도는 걸 느꼈다.
아버지를 모실 구정 준비를 미리 점검하며, 손으로 난로를 만지고, 창밖을 바라보며 온기를 느꼈다.
잠시 숨을 고르며, 이 집과 내가 함께 살아온 시간들을 떠올렸다.
새벽 별축제
연천의 별은 그림처럼 빛났다. 샛별, 금성, 목성, 그리고 작은 별무리까지 선명하게 떠 있었다.
바람은 차가웠지만, 별빛이 마치 집 안으로 스며드는 듯한 기분이었다.
나는 잠시 고개를 들어 별을 바라보며, 아버지와 고양이, 그리고 조용한 집을 떠올렸다.
세상의 온기가 여기, 내 손끝에 닿아 있는 느낌이었다.
별빛 아래, 겨울밤의 냉기와 집 안의 온기가 서로를 감싸는 순간을 마음에 담았다.
아버지와의 시간
아버지는 여전히 2인실 병실에 홀로 누워계셨다.
“활기차게, 아버지 잘 계셨어요. 막내 왔어요.”
세수, 목, 팔, 손을 닦여드리고, 로션으로 얼굴과 손을 마사지해 드렸다.
손에는 아버지가 직접 바르신 로션도 함께 발랐다.
아버지께서는 손을 마사지하시며 얼굴도 문지르시고, 머리도 쓰담쓰담해주셨다.
“고생했다, 수고했다. 아르바이트하지 말고 공부해라. 학비는 할아버지가 다 해주마.”
그리고 덧붙이셨다.
“딸아이는 꼭 엄마에게 잘해야 한다. 효도해야 한다.”
말씀을 잘 듣고 무엇이든 열심히 하라는 아버지의 당부가 마음 깊이 남았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온기와 함께, 아버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오늘 하루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지난주 24일 다녀온 고향집 이야기를 꺼냈다.
“집안이 추워서 안 좋아.”
구정 때는 미리 난방해서 따뜻하게 모실 거라는 약속에, 아버지는 그제야 웃음을 지으셨다.
옆집 아저씨, 큰집 큰오빠, 작은오빠 중 누가 반가웠냐 물으니 “다 반갑지. 안 반가운 사람이 어디 있겠니.”
그리고 딸아이 대학 이야기를 물으시며 기도도 하셨다.
“하나님, 소연이가 서울대 합격하게 해 주시고 건강하게 해 주세요.”
아버지 가슴에 얼굴을 묻자, 머리가 뻣뻣하다며 “뭐 좀 발라라, 쓰담쓰담해주신다.”
하하하 웃자, 아버지도 크게 웃으셨다.
그 순간, 웃음과 온기가 서로 스며드는 느낌이 마음을 채웠다.
꽃을 고르던 시간
어제, 십오만 원의 행복을 샀다.
단골 꽃집에 들러 여인초와 호접란, 올리브, 괴마옥을 골랐다.
꽃을 고르는 시간만큼은 마음이 조용해졌다.
무엇을 더 잘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었다.
집에 와서 하나씩 정리해 놓으니,
실내에 봄이 먼저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발령 때 받았던 화분에는 새순이 올라와 있었고,
그 작은 초록이 하루의 무게를 조금 덜어주었다.
아버지께 베이지 호접란과 핑크 페라고늄 사진을 보여드렸다.
“어느 게 예쁘냐” 묻자,
아버지는 잠시 보시더니 베이지 호접란을 집으셨다.
조용하고 담백한 색을 고르는 그 손길이,
요즘의 아버지 마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봄에 시골집에 꽃 많이 심을게요.”
그 말에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지금 당장은 병실이지만,
아버지의 시선은 이미 봄으로 가 있었다.
꽃은 말을 하지 않지만,
기다리는 법을 알고 있었다.
지금은 여기에서,
때가 오면 다시 흙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며.
그날 내가 산 꽃들은
위로라기보다는 약속 같았다.
아버지에게, 나 자신에게,
그리고 다시 올 계절에게 건네는.
침대 옆 올리브나무 사진 속을 한참 들여다보시던 아버지는 빵빵이를 보자마자 웃으신다.
“빵빵이는 잘 있냐?”
그 한마디에 마음이 풀어진다. 아버지는 늘 빵빵이를 먼저 찾으신다.
복고픈 표정으로 사진을 다시 쥐어 보시며, 예전처럼 곁에 두고 쓰다듬고 싶은 마음이 그대로 전해진다.
말은 짧았지만, 그 안에는 그리움과 안부, 살아 있는 온기가 함께 담겨 있었다.
사람과 돌봄 사이
아버지를 뵙고 나서 고향집으로 돌아오는 길, 8여 년 전 단골 식당에서 부대찌개와 오삼겹 포장을 부탁했다.
사장님은 중학생이던 딸아이 안부를 물으시며, “그 예쁜 딸은 몇 살이냐?”
“스물두 살 벌써요?”
김지원 사진과 함께, “따님과 꼭 닮았다”며 다정하게 손도 잡아주셨다.
돌봄을 끝낸 자리에는 늘 감정이 남는다.
그날은 특히 이름 붙이기 어려운 감정이었지만, 동시에 숨이 트이는 느낌도 있었다.
돌봄만으로는 버티기 어렵지만, 다른 자리에서 평범하게 웃고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살렸다.
아버지의 온기, 고향집의 냄새, 사람들과의 짧은 교감이 이어지며, 하루가 조금씩 안정되는 느낌이었다.
꿈과 마음의 신호
새벽에 꾼 꿈이 마음을 뒤숭숭하게 했다.
엄마는 2010년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요양원에 계신 상태에서, 직장에서 부모님을 괴롭히는 장면이 등장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마무리’의 상징이었다.
오래 끌어안고 있던 죄책감, 책임감, 두려움이 이제 정리될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였다.
현실에서의 부담이 정점에 달했음을 의미하지만, 정점 뒤에는 내려오는 길이 있다.
부모님이 꿈에 등장한 것은 보호받고 싶은 마음과 부모님의 기운이 내 안에서 작용하는 것이었다.
이런 꿈 뒤에는 실제로 도움과 말 한마디, 상황 완화가 따라오는 경우가 많다.
에필로그처럼 남는 생각
아버지와 고향집, 새벽의 별, 그리고 나를 둘러싼 돌봄과 일상의 연결.
나는 여전히 울음과 웃음 사이를 살아가며, 숨이 트이는 순간을 조금씩 맞이하고 있다.
사람과 공간,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것이
지금 내 마음의 과제이자, 작은 안도감이다.
돌봄과 책임, 일과 일상 사이에서 나 자신을 놓아줄 수 있는 힘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그리고 아버지가 강조한 효도와 마음씀씀이를 기억하며,
엄마와 할아버지께 잘하고자 하는 마음이 내 하루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든다.
작가의 말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고향집에서의 시간과 새벽의 별을 떠올리며 조용히 미소 짓고 있다.
돌봄과 일상, 책임과 자유가 섞인 하루는 여전히 쉽지 않지만,
숨이 트이고 작은 안도감을 느끼는 순간들이 쌓여 내 마음을 조금씩 안정시킨다.
아버지와 함께한 시간, 고향집의 온기, 별빛 아래 혼자 잠든 새벽까지,
이 모든 순간이 나를 조금 더 깊이 숨 쉬게 한다.
아버지의 당부, 엄마에게 잘하라는 말과 효도의 마음이 나를 붙잡아주는 힘이 된다.
다음 편 예고
다음 편에서는,
고향집에서 맞이한 아침과 새벽의 별빛 속 작은 일상,
그리고 다시 일터로 돌아와 마주하는 사람들과 웃음,
돌봄과 노동 사이에서 내 마음이 어떻게 숨통을 찾아가는지를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볼 예정이다.
작고 사소한 순간들이 쌓여 마음이 숨을 쉬는 과정을 기록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