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구정, 고향집으로 가시길 희망하신다

고향집 마당, 그리고 희망

by 최순옥

프로로그ㅡ 구정을 앞두고, 쓸고 닦는 마음들

구정을 앞두고 집을 한 번 더 쓸고 닦았다.


아버지가 잠시 들러가실 거라는 말 한마디에, 괜히 바닥을 더 닦고 창문을 오래 열어두었다. 오래된 사진과 앨범이 담긴 박스도 꺼내 정리했다. 낡은 추억은 그대로 두되, 흩어지지 않게 다시 담아두는 일. 그 일은 생각보다 많은 숨을 필요로 했다.

화분도 새로 들였다. 아버지가 예쁘다고 했던 옅은 핑크, 은은한 노란 기가 도는 꽃이었다. 향이 세지 않은 걸로 골랐다. 머무는 시간이 짧더라도, 집 안에 봄이 먼저 와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본문ㅡ 아버지의 희망, 꿈

아버지는 요양원에서 운동도, 그림 그리기도 열심히 하신다.

구정에 고향집에 가기 위해서이신지 모른다. 몸이 깨어 있는 날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활동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신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놓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애틋해진다.

아버지는 자주 물으신다.

“소여물은 주었냐.”

또 어떤 날은 “소 밥 주러 가야지”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를 키우기 위해, 학비를 보태기 위해 소를 기르던 시절로 마음이 돌아가신 모양이다.



가장 책임이 컸고, 가장 애썼던 시간으로. 기억은 과거로 흐르지만, 마음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그 말이 반복될수록 나는 가끔 걱정이 된다.

이러다 정말로 나를 몰라보시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 문득 스친다. 그 걱정은 소리 내지 못한 채, 조용히 가슴 한쪽에 눌러 담아둔다.


아버지 생신을 맞아 브런치에 쓴 글을 큰 글씨로 열 장 출력해 드렸다. 한 장 한 장 넘기시며 천천히 읽으신다. 앞장으로 다시 돌아가기도 하고, 중간에서 멈췄다 이어 읽기도 하신다. 그리고는 고맙다고 말씀하신다. 그 한마디에 나는 오늘을 조금 더 단단히 붙잡게 된다. 설명하지 않아도 닿는 마음이 있다는 걸, 그 순간 다시 믿게 된다.


딸의 시간, 다른 방향의 봄

딸아이는 생일을 기념해 친구와 강릉 여행을 떠난다.


다음 주 월요일이다. 설렘으로 들뜬 얼굴을 보며 카키색 롱 야상을 사주고, 십만 원을 건넸다.


여행 일정과 숙소 이야기를 하는 딸의 목소리는 가볍고 빠르다. 그 속도는, 지금의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리듬이다.

작은 메모지에 말 대신 마음을 적어 넣었다.

몸 조심하라는 말, 너무 무리하지 말라는 말, 그리고 네가 즐거우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마음까지. 직접 말로 하면 괜히 무거워질 것 같아, 종이에 맡겼다.

딸의 봄은 붙잡기보다는 믿어주는 쪽이 맞다고, 나는 스스로를 설득한다.


아버지의 시간은 자꾸 과거로 돌아가고, 딸의 시간은 거침없이 앞으로 간다. 그 사이에서 나는 두 방향을 동시에 바라본다.

한쪽은 손을 놓지 않기 위해 애쓰는 마음이고, 다른 한쪽은 손을 떼는 법을 배우는 마음이다. 그 둘이 하루 안에서 함께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요즘에서야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다.



에필로그

아버지의 손에서, 딸아이의 여행 가방까지.

돌봄은 그렇게 이어지고, 흩어진다. 붙잡는 마음과 보내는 마음이 하루 안에서 동시에 오간다. 한쪽은 잃지 않기 위해 애쓰고, 다른 한쪽은 잘 떠나보내기 위해 숨을 고른다.


구정의 바람은 아직 차지만, 집 안에는 분명 봄이 들어와 있다.

쓸고 닦은 자리마다 말하지 못한 마음들이 조용히 앉아 있다. 꽃은 말없이 자리를 지키고, 사진 속 얼굴들은 시간을 건너 나를 바라본다. 그 모든 것들이 오늘을 붙들어 준다.


나는 이제 안다.

삶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는 걸. 누군가는 기억 속으로 돌아가고, 누군가는 처음 가보는 길로 나아간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나는 오늘의 숨을 고르며, 두 시간을 함께 안고 산다. 완벽하게 해내지 못해도, 이 자리에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한 날이 있다고, 스스로에게 말해본다.


작가의 말

아버지의 기억은 과거로 흐르고, 딸의 시간은 앞으로 나아간다.

그 사이에서 나는 오늘을 산다.



요양원이라는 공간 안에서도 계절은 흐르고, 꽃 한 화분과 글 한 편, 옷 한 벌이 하루의 기분을 바꾼다.

돌봄은 여전히 무겁고 때로는 숨이 차지만, 그 무게 덕분에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도 분명해진다.


사랑은 대단한 결심이 아니라, 매일의 선택에 더 가깝다는 걸 요즘 들어 자주 느낀다.

기억이 흐려지는 사람 곁에 머무는 일, 떠나는 사람을 웃으며 보내주는 일, 그 둘 사이에서 나 자신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일까지. 이 글은 그 모든 선택을 기록한 하루의 메모이자, 나 스스로에게 건네는 확인이다. 나는 오늘도 숨을 고르고, 내 몫의 하루를 받아들인다.


다음 편 예고

다음 편에서는 구정 연휴 동안의 짧은 만남을 준비하며 이후, 다시 요양원으로 돌아간 아버지의 하루를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보려 한다.


집에 남겨진 물건들, 돌아오는 차 안에서의 침묵, 그리고 그 뒤에 남은 나의 피로와 안도까지. 돌봄과 거리 두기 사이에서 어디까지가 책임이고, 어디부터가 나 자신인지 스스로에게 묻는 시간이 될 것이다.


익숙해졌다고 생각한 마음이 다시 흔들리는 순간들, 그럼에도 일상으로 복귀해야 하는 나의 자리까지 솔직하게 기록해보려 한다. 숨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고, 그 숨 위에서 나는 또 한 편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목,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