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담아 온 아이, 고향을 꿈꾸는 아버지
프롤로그
강릉에서 돌아온 딸아이는 작은 가방 하나를 더 들고 들어왔다. 짐보다 표정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바다를 보고 온 사람의 얼굴이었다.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마음만은 환하게 데워진 듯한 눈빛.
“엄마, 이거.”
딸은 책 한 권과 귤 한 봉지를 내밀었다. 많이 고민하고 골랐을 선물이라는 걸,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무심한 듯 건네지만 가장 다정한 방식으로.
본문
딸아이는 조용히 말했다. 강릉 세인트호텔 앞바다가 참 좋았다고. 길게 설명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 풍경을 가만히 그려본다. 겨울빛 바다, 낮게 깔린 하늘, 그리고 파도 소리. 아이는 그 앞에 서서 어떤 마음을 담아왔을까.
책은 내 취향을 닮아 있었고, 귤은 딸아이의 마음을 닮아 있었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강릉… 나의 로망인데.”
그리고 속으로 덧붙였다. 곧 가자. 빵빵이는 바다를 좋아하니까.
구정은 이제 다음 주로 다가와 있다. 달력 속 날짜가 자꾸 눈에 밟힌다. 아버지는 여전히 고향집 이야기를 하신다.
“올해는… 춥지 않겠지?”
그 말속에는 날씨보다 더 깊은 바람이 담겨 있다. 가고 싶은 마음, 돌아가고 싶은 마음.
요양원에서 아버지는 걷기 운동을 빠지지 않으시고, 그림과 색칠도 여전히 꼼꼼하시다. 선을 넘지 않게, 색이 밖으로 나가지 않게, 한 칸 한 칸 정성스럽게 채워 넣으신다. 깔끔하고 반듯한 성정. 시간이 흘러도 쉽게 변하지 않는 아버지의 방식.
딸은 바다를 보고 돌아오고, 아버지는 고향집을 기다리신다. 한 사람은 앞으로의 풍경을 품고, 한 사람은 지나온 풍경을 그리워한다. 나는 그 사이에 서 있다. 미래와 과거가 같은 하루 안에서 함께 숨 쉬는 자리.
에필로그
귤을 하나 까서 접시에 올려둔다. 강릉 바다와 고향집 마당이 이 작은 겨울 식탁 위에서 조용히 만난다.
삶은 늘 이렇게 이어진다. 돌아오는 마음과 기다리는 마음 사이에서. 그리고 문득 요즘의 나를 떠올린다.
브런치에 글을 올린 지 5개월. 팔로워 500명. 작품 3편, 64편 연재. 숫자는 짧지만 그 안에 담긴 시간과 마음은 결코 가볍지 않다. 케이크 선물처럼 달콤한 순간도 있었고, 브런치 두 개에 남겨진 흔적들, 꽃 선물처럼 조용히 건네받은 위로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 조용히 웃는다.
행복하다고.
작가의 말
로망은 나이를 가리지 않고, 희망은 계절을 가리지 않는다. 딸의 설렘도 아버지의 기다림도 모두 오늘을 살아내는 서로 다른 방식. 그리고 나 역시 글을 쓰며 오늘을 건너고 있다.
5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500명의 마음이 곁에 머물렀고, 세 편의 이야기와 예순네 편의 기록이 쌓였다.
돌봄의 시간도, 흔들리는 마음도 결국 문장이 되어 나를 붙든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위로. 계속 써도 된다는 조용한 허락.
나는 오늘도 그렇게 나의 하루를 적는다.
다음 편 예고
다음 편에서는 다음 주 구정, 아버지의 바람 앞에서 내가 어떤 마음으로 서 있게 될지 기록해 보려 한다.
기대와 걱정, 그리고 그 사이의 조용한 숨까지. 짧은 만남이 남기는 온기와 피로, 설렘과 불안이 교차하는 시간.
고향집이라는 희망과 현실 사이에서, 나는 어떤 표정으로 아버지 앞에 서게 될까. 돌아오는 길 위에서 마주하게 될 마음의 결까지 조용히 담아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