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내가 사랑한 모든_말들 [I would like to-]
I would like to have everything that is good, genuine and beautiful!
이 말은 모차르트가 생전에 했던 말이라고 한다.
나는 오스트리아의 한 구석, 모차르트 하우스의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오디오 가이드가 해주는 말을 듣고 있었다. 유럽 여행 당시, 나의 여행 서브 주제는 뮤지컬이었다. 파리에서는 오페라의 유령 발상지라는 오페라 가르니에를, 체코에서는 뮤지컬 ‘호프’에서 중요한 작품이 되는 카프카 박물관을, 오스트리아에서는 엘리자벳이 살았던 쇤부른 궁전을 다녀온 후 마지막으로 들린 곳이 바로 모차르트 하우스였다.
삐걱거리는 계단을 올라 오디오 가이드에서 흘러나오는 친절한 성우의 설명을 따라 걷고 있자니, 모차르트의 생애를 다 알 수는 없어도 먼 유리창 너머로 흘려보는 것 정도의 구경은 할 수 있었다. 자유롭고, 재능 있고, 그래서 더 (여러모로) 힘들었을 그때의 그 집.
우리가 흔히 아는 재능이 흘러넘치는 모차르트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도박, 빚, 후원 등 조금 뒷 이야기들까지 많은 것들 것 귀로 들어왔지만 지금까지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바로 성우의 낮지만 연극적인 목소리로 들려왔던 저 말이다. “나는, 세상의 모든, 좋고, 진실되고, 아름다운 걸 가질 거예요!”
아름다움, 그게 내가 유럽 여행 전반을 관통하며 느낀 가치였다.
친구들을 따라갔던 미술관에서는 나로서는 상상도 못 했던 미적 감각들이 온몸으로 들어왔다. 각각의 건물들은 고풍스러웠고, 잠시 들렸던 성당에서는 위압감에 가까운 성스러움마저도 감돌았다. 지나친 재능으로 유독 자유분방했던 모차르트의 삶을 완전히 이해할 수도, 이해하기도 힘들지만 그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만큼은 그럴 수밖에 없었으리라, 생각할 만큼. 그곳은 아름다운 곳이었다.
모든 오디오 가이드를 듣고 내려온 출구의 마지막에는 어디든 그러하듯 기념품샵이 있었다. 기념, 이 또한 나의 중요한 가치이기도 한 만큼 나는 모차르트 하우스를 추억할 무언가를 열심히 찾아다녔지만 여의치 않았다.
오르골이라도 사…? 망설이다 결국 뒤를 돌아 나오던 내가 마지막 아쉬움에 집어든 것이 바로 흰 종이에 파란색과 분홍색이 섞인 글씨가 적힌 책갈피였다. 달랑달랑- 종이봉투에 담아준 그것을 들고 나올 때만 해도 내게 그것은 그저 그 종이 한 장짜리의 질량에 불과했는데, 한국에 돌아와 짐을 풀고 여행을 추억하는 순간 그것은 모차르트 하우스 그 자체가 되었다. 그 흰 종이 위에 적힌, 좋고, 진실되고, 아름다운 걸 갖고야 말겠다는 모차르트의 각오가 나에게 전이된 것처럼.
지금도 내 인스타의 설명란에는 저 말이 쓰여 있다. 모차르트만큼은 아닐지라도, 좋고 아름다운 걸 보며 살아가고야 말겠다는 나의 각오가. 슬프게도, 이제는 인스타 설명란에만 남아 있을 뿐이 되어버렸지만.
올해 초 나는, 갑자기 무슨 바람이 들어 읽지 않은 책을 일 년에 한 번씩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곳저곳을 떠돌아야 하는 월세로의 설움과 원룸의 공간적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읽지 않을 책들을 한 곳에 모아 박스에 넣고, 알라딘 중고 서점에 팔기 위해 인터넷으로 신청을 하고, 출근하기 전 박스를 내놓아 일말의 공간과 약간의 금전을 얻었다.
하지만, 그렇게, 나답지 않게 일사천리로 했으면 안 됐다. 박스에 담긴 여러 권의 책 중 유일하게 읽다 만 책 사이에 나의 모차르트 하우스가 숨어 있는 줄 알았더라면… 물건을 읽어 버린 것에 대한, 그것도 추억이 가득 담긴 물건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슬픔도 컸지만, 나에게 있었더라면 적어도 애정을 계속 받았을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로 넘어가 아무 쓸데없는 종이 쪼가리로 취급받으리라는 생각이 나를 더 서글프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