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_속초 여행기 (2)

by 정담

11시도 되지 않은 이른 저녁, 의도치 않게 잠이 든 나는 새벽 3시에 그나마 눈을 떴지만 지금까지의 데이터로 나는 알았다. 새벽에 눈을 뜨면, 거의 99%의 확률로 새벽 6-7시까지 다시 잠들지 못한다.


=

2일 차 여행도 망한다!


애써 떠진 눈을 다시 감으며 나는 잠이 들려 노력했고 덕분에(?) 다음 날 10시 즈음 눈을 뜰 수 있었다. 이 여행, 괜찮은 건가…? 심란해지는 나를 일으켜 바다로 향했다. 낮에 다시 본 바다는 다행히도 매우 아름다웠다. 어제보다 밝고, 활기차고, 따뜻한, 내가 아는 바다.


설레며 돗자리를 펴 앉았다. 원래의 목적이었던 ‘바다멍’을 위해. 어쩔 수 없는 mbti N인 나는 바다를 보면 별의별 생각을 다 한다. 인어공주부터 새부터 온갖 판타지적인 생각들을. 그런데 이번엔 왜인지 자꾸만 망상에서 빠져나오게 되는 거다. 이건 아니야! 이런 건 내가 원한 바다 멍이 아니야! 뒤에 있는 흔들의자에 앉으면 좀 좋을까? 싶어 계속 자리를 노려보았으나 번번이 실패한 나는 그냥 밥을 먹으러 간다. 저번에는 실패했던 감자 옹심이 칼국수를.


예전, 대학생 때 학과 답사로 왔던 강원도에서 먹었던 들깨 옹심이 칼국수가 이상하게 그 뒤로 계속 생각이 났었더랬다. 그때는 그리 맛있게 먹지도 즐겁게 먹지도 못했던 음식인데. 그래서 저번 여행에서 몇 개의 음식점을 알아보고 먹으려 시도해 보았지만, 번번이 때를 놓치거나 문을 열지 않아 아쉬움을 안은 채 돌아갔던 바로 그 음식점을 이번엔 성공할 수 있었다.


당연히 생각했던 만큼의 특별함도 맛있음도 없었지만 만족감은 있었고 나로서는 드물게 한 그릇을 거의 다 비운 채 식당을 나왔다.


'바로 시장을 가…?' 생각하며 해변가를 거닐던 때 높게 솟은 계단 아래로 사람들이 돗자리를 펴 누워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어차피 할 것도 딱히 없고, 날씨도 좋고, 나는 얼른 그 대형에 합류했다.


적당히 그늘진 자리에 돗자리를 깔고 누웠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 이거다!


나는 바로 이 순간을 위해 속초에 온 거다. 그 생각이 들었다. 머리 위로는 따뜻한 햇살이, 코 끝으로는 살랑한 바람이, 귓가로는 철썩이는 파도 소리가, 주변에는 꺄르륵대는 아이가 있는 이곳이 바로 내 여행의 목적이었다.


내가 바라지 못한 순간, 생각지 못한 장소에서 행복은 발견된다. 너무 기대하고 바라는 건 내 생각만큼 흡족하지 못할지라도.


그 이후 한 거라곤 시장에 들러 인생 네 컷 찍기, 도넛 사기, 빵 사기 정도이지만 나는 이미 좀 행복했다. 그날 돌아와 처음 해본 팩이 내 피부에 잘 맞다는 걸 발견했고, 바라던 대로 유튜브를 틀어놓고 핸드폰을 하며 잠드는 마지막 날 밤.


그렇게 마지막 날인 3번째 날 아침이 밝았고, 나는 체크아웃 시간이 다 되어서야 느지막이 일어나 숙소를 떠났다. 아침부터 비가 온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카페에만 있다가 가야 할 수도 있겠다, 생각했지만 웬걸? 비는 오지 않고 그저 흐릴 뿐인 날씨의 파도는 어제보다 더 웅장했다. 어제의 윤슬이 반짝이는 파도도 예뻤지만 오늘의 바다는 조금 더 에너지 넘치는 무언가가 되어 나타났다.


잠깐 보고 식당으로 바로 향하려던 계획도 잠시, 홀린 듯 파도로 향하던 나의 눈에 어제 그토록 원하던 흔들의자의 빈자리를 발견해 바로 달려가 앉았다. 흔들의자에 앉아 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진짜 여느 미사여구처럼 바다와 나 둘 밖에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 아늑함을 준다.


마지막 날의 아쉬움을 담아 30분쯤, 파도를 보다 밥을 먹고 나온 나는 지금 바다 바로 앞에 있는 어느 카페에 앉아 있다. 지난 4월 속초 여행 때도 왔던, 매우 고요하고 아늑한 카페에. 주인 분이 친절하고 조용하며 뷰가 예쁘고 손님들이 저마다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곳.


가방 무겁게 들고 온 노트북을 이제야 처음 꺼낸 나는 지금 마주한 파도가 너무 소중해서 이 순간을 기록하고자 글을 쓴다.


늘 여행을 하며 아름다운 광경을 목격할 때면 생각한다.


“다시 이런 아름다운 걸 볼 수 있을까?”


이번에 깨달았다. 그 아름다움은 다시는 볼 수 없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이 아니라 또 다른 아름다움을 목격하게 될 거다. 분명히. 지난번의 이 카페에서는 고요함을 만끽하다 갔던 내가, 이번에는 파도의 웅장함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지금 내 등 뒤로는 고소한 버터 냄새가 난다. 다음에는 이곳에서 저 빵을 먹어 봐야지.


PS.

혼자 여행을 하다 보면 다른 사람들을 구경할 때가 많다. 이번 속초 바다에는 유독 가족 단위의 관광객이 많았다. 물놀이하는 아이들을 귀엽게 쳐다보는 부모님과, 포즈 수정을 요구하는 어느 중년 부부와, 엄마를 모시고 놀러 나온 중년의 아주머니와, 뒤처진 어린 딸을 챙기는 부부까지. 저마다의 이야기가 재밌고, 여행을 나온 사람들의 행복한 표정을 보는 건 내가 좋아하는 순간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2023.10_속초 여행기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