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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한 Mar 20. 2023

이혼 가정에서 자란 28살 청년의 삶 4

엄마는 아직도 이 얘기만 하면 운다.


내 어린 시절 앨범은 6살 이후의 사진이 거의 없다. 7살 사진이 한 장 남아있는데 3-4살 때의 사진에 비해 7살의 내 모습은 촌스럽기 짝이 없다. 화려한 공주 드레스나 통 넓은 바지에 쿨한 나시를 매치하고 양갈래로 묶거나 파인애플 머리를 했던 3-4살의 내 모습에 비해 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고 여러 번 접어 입은 패딩과 고무줄 쫄바지를 입은 7살의 모습은 지금 봐도 꽤 차이가 크다.


7살에 나는 유치원에 갈 때 고를 수 있는 바지가 3벌이었다. 청바지 하나와 같은 디자인의 분홍색, 빨간색 쫄바지.

나는 청바지를 입는 날이 가장 자신감이 있었고 빨간색 쫄바지를 입어야 하는 날엔 유치원에 가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이 얘기를 23살쯤 엄마랑 대화를 하며 웃기려고 꺼낸 일화였는데 엄마는 갑자기 펑펑 울고 말았다. (최근에도 엄마는 그 시절 얘기는 아직도 슬프다며 곧바로 휴지를 찾았다.)


그 시절을 떠올리며 나도 항상 울어버리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나는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엄마가 퇴근을 하고 바로 집에 오는 날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날도 간혹 있었다. 밤 10시가 되고 11시가 되어도 오지 않을 때가 있었다. 내가 무척이나 당신을 기다린다는 표현을 부재중 수를 많이 찍혀있도록 짧게 여러 번 전화를 걸고 끊기를 반복했었다. 엄마는 10번 중 한 번을 받아 금방 갈게. 하고 끊었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엄마의 목소리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나는 여전히 그 시절의 까슬한 이불 촉감과 집이 무서운 공간으로 변해버리는 공포와 싸늘한 공기와 마음이 텅텅 비어버린 느낌을 잊기가 힘들다. 엄마에게 이 얘기를 하면 엄마의 표정과 생각을 보고 듣기도 전에 나는 내 눈물을 닦느라 바쁘다.


우리는 웬만하면 서로 그때의 상처를 잘 꺼내지 않는다. 꺼내는 연습이 부족한 지 꺼낼 때마다 매번 운다. 애써 웃으면서 무마하고 싶은 모녀는 입은 웃지만 눈은 쉴 새 없이 바다를 만든다. 같이 나이를 먹은 지 28년이 되어도 여전히 서로 모르는 것들이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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