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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한 Mar 17. 2023

이혼 가정에서 자란 28살 청년의 삶 3

가만히 먼 곳만 바라보는 엄마

내가 2  엄마는 아빠와 싸운  고향인 정읍으로 내려갔다. 나와 아빠를 두고 친정으로 가자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놀라 사위에게 그러지 말라며 타일렀다. 아빠는 자존심 상해했다고 엄마는 말했다. 그러면서 무슨 심보였는지 엄마에게  집을 주겠다고 아빠는 말했다.


엄마는 아빠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 얼른 명의를 이전하고 싶었다. 당장 법무사 사무소로 가자고 했고 둘은 자고 있는 나를 집에 혼자 두고 얼른 갔다 오겠다는 생각으로 집을 나섰다.


둘이 집을 비운 사이 나는 일어났고 두 살배기 아기는 집을 휘젓고 다니며 울었다. 베란다까지 나가 울부짖자 윗집에 사는 이웃 아주머니는 인형에 끈을 묶어 창문밖으로 내렸다 올렸다 반복하며 내 이름을 부르면서 달래주셨다.


아빠는 어느 날 엄마에게 대뜸 원주로 내려가자고 했다. 거기서 살면 좋을 거라고 책임지겠다는 말을 했겠지. 실행력 좋은 엄마는 집부터 내놨고 1시간 만에 우리 집은 나갔다. 아빠는 말을 번복했고 엄마는 당장 살 집을 구해야 했다. 집을 구해 본 경험이 없던 엄마는 지금 사는 곳에서 차로 30분 정도 걸리는 곳에 위치한 빌라 전세를 얻었다. 엄마의 고달픔의 시작이었다.


엄마는 운전면허증이 없다. 나는 다니던 어린이집을 끝까지 다니겠다며 고집을 부렸고 등하원 버스는 새로 이사한  앞에 오지 않았다. 아침마다 버스를 타고 나를 데려다 놓고 다시 버스를 타고 직장에 가야 했다. 새로 이사한 집은 구축빌라여서 집의 크기가 컸으나 너무 추웠다. 가장   방에서 엄마와 나는  방이 집의 전부인 것처럼 생활했다.   4개월도 되지 않아 집주인은 전세금 1천만 원을 올려달라고 했다. 터무니없는 가격에 엄마는 집을 나가겠다고 했다.  집에서 우린 6개월을 있었고  기억  가장 물리적, 정신적으로 추웠던 시기였다.


그 집에 살면서 엄마는 자주 멍을 때렸다. 내가 불러도 잘 대답하지 않았다. 엄마는 아빠가 들어오지 않는 집에서 대부분 무표정으로 살았다. 큰 집이기 때문에 제사를 우리 집에서 지낼 때면 엄마는 나를 데리고 친정으로 갔다. 영문도 모른 채 외할머니네 다녀온 후 우리 집에 돌아와서 고모가 사준 내 잠옷이 소파에 있는 걸 보고 좋아하는 나를 보고 엄마는 떨떠름해했다.

"고모가 너 사줬나 보네."라고 말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인 '멜로가 체질'이라는 드라마에서 내가 오열했던 장면은 은정이가 정신상담을 받으며 어렸을  자신과 엄마의 모습을 회상하는 장면이다. 작은 놀이동산에서 먹고 싶은 것도 먹고 재미있는 놀이기구를 타면서 신나야 정상인데 벤치에 가만히 앉아서 먼 곳을 보는 엄마가 어린 마음에도 신경 쓰였던 은정은 엄마 옆에 가만히 앉는다. 그날을 회상하며 본인은 기억하려고 가지고 있는 기억은 아니지만 왜 떠올랐는지 잘 모르겠다며 울고 만다.


나는 그 장면을 보게 된 것만으로 아주 깊은 위로가 되었다. 나도 잠시 숨겨두었던 그때의 모습을 잠깐 꺼내어 먼지 한 번 털어주고 자주 꺼내어 볼 수 있을 만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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