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테나 Jun 07. 2023

What if?   

현재를 좀 먹는 생각들

친구 하나가 단톡방에 고민을 털어놓았다.  벌써 십년전에 대형로펌에서 공기관 법무팀으로 옮겨간 친구다.  로펌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휴가와 (비교적) 인간적인 업무 스케줄, 연금 및 각종 혜택을 받는 친구 왈,


"요즘 자꾸 그런 생각이 들어.  내가 그 때 로펌을 나가지 않고 버텼다면 어땠을까? 내가 공기관으로 옮긴 게 잘한 일일까?  그 때 나랑 같이 일하던 사람들, 지금은 다 로펌에서 한자리 하고 있는데.  나도 그만두지 않고 계속 있었으면 훨씬 더 많이 벌었겠지?"  


What if?  (oo하지 않았다면? 또는 oo 했다면?)  

친구는 몇해전 건강상의 문제로 꽤 오랜 기간 병가를 냈다.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병가를 끝낸 후 서서히 일을 시작했으나 그것마저 견디기 힘들어했다.  물론 로펌에 계속 있었다면 장기간의 병가를 얻기는 힘들었으리라.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친구도 "What if..."라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이제 좀 살만 해지니 동년배 로펌변호사보다 낮은 연봉이 슬슬 짜증나나 보다.  


졸업 후 줄곧 Private practice (공기관이나 기업의 법무팀이 아닌 일반 회사, 기업, 개인을 대상으로 일하는 변호사 업무)일해온 나로서는 기가 막히는 말이라 한소리 하려다가 참았다.   이 쪽 바닥을 떠난지 너무 오래되어서 이바닥이 어떤 바닥인지, 이 친구는 완전히 망각한 것이 분명하다.  


살인적인 업무 스케줄, 할당된 Billable Hour (청구가능한 시간)을 채워야 한다는 압박, 그리고 연차가 쌓이면 고객을 유치해야한다는 부담감, 동료이면서 경쟁자인 주위 사람들, 윗사람이지만 견제를 늦추지않는 파트너들.  할 말은 많았지만 하지 않았다.


대신 이런 말을 했다. 넌 A보다 B가 더 좋아서 B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A를 더이상 견딜 수 없어서 B를 택한 것이다.  그 당시 너는 '어떤 선택이 내 커리어에 더 유리한 선택인가?' 라는 생각으로 결정을 내린것이 아니란걸.  이직 하지 않으면 미쳐버리고 말거라는 생각만 남아있었을 뿐. 10년 전 친구의 이직 선택은 생존의 문제였음을.   


그러니 What if 와 같은 현재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질문따위는 버리자.


내가 이 직업을 택하지 않았더라면?

이 사람과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결혼을 더 늦게 했었더라면?  결혼을 더 일찍 했더라면?  

아이를 더 일찍 가졌더라면?  아이를 더 늦게 가졌더라면? 아이를 갖지 않았더라면?

다른 전공을 선택했더라면?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안 그래도 견디기 힘든 하루 하루를 더 힘들게 하는 생각이다. 현재를 좀 먹는 생각들이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오늘 하루를 살아내기도 힘든데.  버티는 게 이기는 거라고 하지않나.  그저 오늘을 버틴 나에게 잘했다 칭찬해주자.

매거진의 이전글 스물셋의 나에게 쓰는 편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