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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테나 Jul 08. 2023

소설가 존 어빙의 세계 - 오웬 미니를 위한 기도

필연과 우연, 믿음과 의심, 기적과 이변

십여 년 전 친구가 빌려준 소설 "너를 찾을 때까지" (Until I find you)를 시작으로 존 어빙의 세계에 빠졌다. 묵직한 양장본에 크기도 두께도 만만치 않은 책이었는데 (페이퍼백이 800 페이지가 넘는다...)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소설이었다. 최근 헌책 나눔 행사에서 "오웬 미니를 위한 기도" (A Prayer for Owen Meany)를 발견했다. 헌책인데 상태도 좋았고 아직 안 읽어본 소설이라 '개이득'을 외치며 모셔왔다. (이 소설도 600장이 넘는다... 작가님 대단.)


존 어빙 - 작가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의 명문 기숙사 학교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 (Phillips Exeter Academy)를 졸업했는데, 이곳이 미국에서 열손가락에 드는 명문 사립학교다. 1781년에 세워진 남고였으나 1970년 즈음 남녀공학으로 전환했다.  유명한 졸업생으로는 아주아주 옛날 미국대통령도 있고, 페이스북/메타의 마크 저커버그, 다빈치 코드로 유명한 댄 브라운 작가, 쿼라(Quora)를 만든 아담 디안젤로 등이 있다.  그 외,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정재계와 법조계의 큰 손들도 허다하다 (어디 법원장, 협회장, 어디 어디 상원, 하원 의원들, 아이비리그 학장, 등등).  졸업반의 1/3 정도를 하버드에 보낸다고 하니, 비싼 건 둘째치고 돈만 있다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아닌 것 같다. 어쨌든 어빙은 아버지가 이 학교의 선생님이어서 교직원 특혜(?)로 입학했다. 엑시터의 역사 선생님이었던 그의 아버지 콜린 어빙은 사실 양부였는데, 친아버지는 어빙이 태어나기도 전에 엄마와 이혼을 했다고 한다.  어빙이 여섯 살 때 양부가 어빙을 친자로 입양하면서 성 또한 "어빙"으로 바뀌었다.  콜린 어빙은 따뜻한 양부였으리라 생각된다. 소설에서도 피는 안 섞였지만 누구보다 따뜻한 양부, 이 나온다. 

Eㅐ

존 어빙의 소설 속에 사립학교, 레슬링, 아버지의 부재, 아버지와 유사한 어른, 기독교 등등이 자주 등장하는 건 그의 어린 시절의 영향이 아닐까.  


"오웬 미니를 위한 기도" 소설 속, 몇 가지의 큰 주제를 나열하자면,   

신의 존재와 믿음의 영역

베트남 전쟁

운명과 기적

아버지 찾기 (이 중 아버지 찾기는 어빙 작가님이 좋아하는 주제인지, 훨씬 나중에 나온 소설 "너를 찾을 때까지"에서도 아버지 찾기가 이야기의 주축을 이룬다.)


뉴햄프셔주의 시골마을, 그레이브센드(Gravesend)에 사는 조니 윌라이트 (Johnny Wheelright)는 뼈대 있는 지역유지 집안의 자손이다.  오웬 미니는 조니의 베프인데 남들보다 몸집이 현저히 작은 친구다. 오웬은 목소리도 특이한데, "Permanent scream" (영원한 비명)이라고 표현되는 그의 목소리는 누구도 한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괴상한 목소리다. 책에서 오웬의 말은 모두 대문자로 표기된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오웬의 목소리는 매우 거슬리는 목소리이기 때문에 책 속에서는 시각적으로 매우 거슬리는 대문자로 표기했다고 한다. 한글번역판에는 오웬의 목소리를 어떻게 표기해야 할까?  한글에는 소문자 대문자가 없으니 말이다.  

"A coward dies a thousand times before his death, but the valiant taste of death but once."
비겁한 자는 살아있는 동안 이미 천 번의 죽음을 경험하나, 용감한 자는 단 한 번의 죽음을 맛볼 뿐이다.


오웬이 가장 좋아하는 말이다 (셰익스피어의 줄리어스 시저에 나오는 대사.)  몸집은 작지만 지능이 높고 배짱도 두둑한 오웬은 어디다 데려다 놓아도 쫄지 않는다.  키가 더 큰 조니가 오웬을 지켜줄 것 같지만, 사실 오웬이 조니를 지켜준다 (손가락 절단까지 직접 해주는... 친구).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공동체인지, 조니 엄마의 죽음에 오웬이 한몫을 하기도 한다.  


가난하지만 명석한 오웬은 믿음 또한 독실한데 그 믿음이 그를 어떤 결말로 데려다 줄지, 소설의 마지막에 다다라서야 알 수 있다.  존 어빙이 가장 잘하는 것 중 하나가 '소년'이 아닐까 싶다. 마치  어린 소년의 머릿속에 들어가 있는 것 같은 탁월한 캐릭터 구사력과 묘사.  문장력도 좋고 가독성도 좋고 빠져들기 좋은 책이지만, 쉽게 볼 두께는 아니기에 약간의 지구력은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교보문고 사이트에 "오웬 미니를 위한 기도"가 뜨지 않는다.  한글판이 없는 책의 리뷰라니...  의미 없는 글이 될 것 같다. 그렇지만 존 어빙의 다른 유명한 작품 "사이더하우스 룰"(영화도 있음), "가아프가 본 세상", "일 년 동안의 과부", "네 번째 손" 등등의 한글번역판 소설들이 있으니, 그 소설들을 통해 그를 한번 경험해 보길 바란다.  

끝으로 존 어빙이 본인이 쓴 소설의 첫 문장 중 가장 마음에 든다는, "오웬 미니를 위한 기도"의 첫 문장을 남긴다.


“I am doomed to remember a boy with a wrecked voice—not because of his voice, or because he was the smallest person I ever knew, or even because he was the instrument of my mother's death, but because he is the reason I believe in God; I am a Christian because of Owen Meany.”


나는 망가진 목소리를 가진 어떤 아이를 영원히 잊지 못한다.  그를 잊지 못하는 건, 그의 목소리 때문도, 그가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작은 사람이어서도 아니다. 그가 내 어머니를 죽음에 이르게 한 도구였기 때문도 아니다.  그것은 내가 그로 인해 하나님을 믿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오웬 미니 때문에 기독교인이 되었다."  


(여기만 보면 뭔가 종교적일 것 같은데 포교나 선교를 위한 책은 전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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