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인지 된장인지 굳이 찍어먹어 봐야 아는 자

해보지 않고는 모르는 사람

by 아테나

뭐든 직접 해봐야 아는 사람들이 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난 왜 반드시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먹어 봐야만 아는가. 사고 이후 가장 자책한 부분도 이것이다.

OOO이 별로라고? 난 해보니 괜찮던데? 난 가보니 좋던데? 난 먹을만하던데?
왜 그래야 하는데? 그게 정말 맞아?
어려울 거라고? 힘들 거라고? 해보지 뭐. 해보지 않고는 모르는 거니까. 그들이 틀릴 수도 있으니까.


무엇이든 스스로 납득해야 인정하는 성격을 나는 은근히 자랑스럽게 여겨왔다. 남들에게 떠들고 다니진 않았으나 나만 아는 나의 특별함이랄까. 덕분에 남보다 많은 경험과 실패를 했지만 내 속에 새겨진 실패와 성공의 기억은 그 누구의 조언보다 오래 남는 법이니까. 가끔 반골 소리를 듣는 것도 싫지 않았다. 그런데... 식구들이 술을 줄여라, 한두 잔만 마셔라, 그렇게 필름 끊어지다 큰일 난다, 할 때 왜 그 말을 듣지 않았을까. 꼭 이렇게 되돌릴 수 없는 곳까지 와 봐야 했던가. 굳이 이럴 일인가. 남들이 그렇다고 하면 좀 들으면 안 되나? 이 점은 후회가 많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지 말라고 하는 일은 다 이유가 있는 법인데 반드시 스스로 넘어져봐야 정신을 차리는 인간. 그런데 알코올의존자들 중에 이런 사람들이 특히 많다. 바닥을 찍지 않고는 모르는 나 같은 사람들은 사회나 타인이 설정한 기본값은 일단 의심하고 본다. 좋고 나쁨은 본인의 논리와 경험으로 판단해야 하기에 알코올의존증을 스스로 인정하기까지 시간이 걸리고 꽤 크게 넘어져 봐야 정신을 차린다.


중독자를 만드는 건 성격만의 문제는 아니다. 유전자의 영향도 있다. 특정 유전자를 소유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중독에 더 취약할 뿐만 아니라 알코올의 효과를 더 강하게 느낀다고 한다. 술이라는 물질이 들어갔을 때 느끼는 자극이 크기 때문에 보상경로가 더 강력하게 작용한다고. 한잔만 마시고 일어나는 게 안 되는 사람 (나다), 술이 술을 먹는 사람 (이것도 나). 절주가 안 되는 사람 단주가 답인데 "아, 이 놈의 술... 진짜 끊어야지" 외치면서도 술잔을 기울였던 과거의 나. 중독취약 유전자를 가진 우리의 뇌는 과거의 강력한 쾌락을 저장한다 (숙취는 왜 기억을 못 하니). 술을 마신다 = 도파민이 올라간다라는 보상경로가 뇌에 새겨지는 것이다. 그러니 성공적인 단주를 위해서 외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상담도 좋고 입원치료 또한 상황에 따라 필요하겠지만 돈과 시간의 문제가 있다. 그에 반해 Alcoholics Anonymous* (익명의 알코올중독자들) 모임에 참석하는 건 진입장벽이 낮다. 일단 무료고 단주하겠다는 마음만 있다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미드에서 보듯이 "I'm OOO, and I am an alcoholic" (저는 OOO이고 저는 알코홀릭입니다)로 인사를 한다.


*익명의 알코올중독자들 (Alcoholics Anonymous; AA로 줄여 부른다.)은 알코올중독자들이 서로를 돕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이다. 온라인 오프라인 모임이 세계각지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앞서 설명했듯이 가입비는 없다. (나는 현재 주중 온라인 모임 1회, 그리고 주말 오프라인 여성그룹 모임 1회를 참석하고 있다.)



그래서 AA 미팅에 가면 뭘 하는데? 정말 별거 없다. 같이 AA 가이드북을 읽기도 하고 단주하며 겪는 어려움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단주하며 달라진 점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일상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단주를 하면서 얻은 자기 성찰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있다. 단, AA에는 "Cross Talk"가 금지되어 있어서 한 사람이 말하고 있을 때 다른 참석자들은 절대로 그의 말을 끊거나, 질문하거나, 조언하지 않고 온전히 들어줘야 한다. 그래서 대화라기보다 나눔에 가깝다.


둘러앉아 이야기 나누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되겠나 의아하겠지만 알중의 마음은 알중이 제일 잘 안다.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이 생긴다. 누군가의 성공담도 힘이 되고 (나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준다) 실패담도 경각심을 준다 (몇 년을 성공적으로 단주한 사람이 다시 술을 마시고 후회하고 돌아온 이야기를 들으면 나 또한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나만 망가졌다고 생각하겠지만 중독자는 어디에나 있고, 술로 크고 작은 사고를 치며 살아온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다. 단주하고 잘 살아가는 사람들도 생각보다 많다. 나도 한번 묻어서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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