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용서할 수 있을까

자기혐오의 늪

by 아테나

내부엔 에어백이 여기저기 터진 상태였다. 도로 기둥을 박아 앞부분이 심하게 손상된 차는 처참한 몰골로 견인소에 방치되어 있었다. 앞부분 외 다른 곳은 손상이 없었지만 에어백의 어마어마한 수리비와 전기차의 특성상, 이 차를 수리하겠다는 곳은 나타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폐차를 감행했고 아직 한참 남은 대출은 전액 상환 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보험 처리는 할 수 없었다.


폐차장에 연락을 하고 보험사에 사고신고를 하고 차량 보험을 취소하고 친구 A에게 물어 변호사를 선임했다. 내 차 외에 피해를 입은 차량이나 사람은 없었지만 당연히 면허정지 처분이 나왔고 몇 달 후 법원에도 가야 했다. 이 모든 일들이 머리를 떠나지 않아 음식도 넘어가지 않고 잠도 오지 않았다. 내일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이 미친 짓으로 누군가를 해했다면 난 살 수 없었을 거다. 그나마 혼자 기둥을 박고 끝난 게 얼마나 다행인지. 그렇다 해도 몰려오는 자기혐오는 어찌할 수 없었다.


왜 그랬을까. 분명 나에게는 비상시 사무실 야영을 위한 에어매트리스가 있었는데. 사무실에는 내 에어매트리스가 펴져 있었는데. 그걸 설치한 기억도 그곳을 떠난 기억도 없다.


딱 죽고 싶었다. 나 같은 게 왜 죽지 않고 살아있는 걸까. 어쩔 수 없이 상황을 알게 된 배우자는 그렇다 쳐도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되면? 직원들이 알게 되면? 친구들이 알게 되면? 견딜 수 없는 수치심이 몰려왔다. 잘못을 저지른 유명인들이 왜 스스로 목숨을 끊는지 알 것 같았다. 평범한 일반인인 나도 이런데. 그냥 이 세상에서 사라질 수는 없을까. 내일이 오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친구는 내게 당장 상담을 받으라고 조언했고 나 또한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했다. 경찰서를 걸어 나오던 그날 새벽부터 내 안의 목소리는 끊임없이 외치고 있었기에. 나 따위 인간은 살아있을 가치가 없다고.


변호사들이 운영하는 비영리단체에 제일 먼저 전화했다. 친구가 강추하기도 했고 어쨌거나 지금 내가 도움을 청할 곳은 그곳밖에 없었다. 각종 중독과 우울, 정신질환으로 힘들어하는 동종업계인들을 위한 단체에서 D와 연결됐다. D는 가장 먼저 자기혐오를 멈춰야 한다고 했다.


누구라도 살다 보면 잘못을 저지르는 순간이 올 수 있어요. 잘못을 한 것은 분명 하나 그 한 번의 일로 당신 전체가 나쁜 사람이 되는 건 아니에요. 자기혐오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아요. 오히려 다시 음주에 빠지게 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그의 말에 쉽게 동의할 수 없었다. 그것 참 편리한 생각이네, 싶었다. 그러니까 내가 나를 용서한다는 건 너무 이기적이지 않나? 나 같은 사람이 그렇게 쉽게 스스로를 용서해 버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내가 나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가혹한 형벌이 자기혐오인데. 나는 아직 한참 더 많이, 더 깊이 고통받아야 하는데. 그래도 부족한데.


그와 완전히 동의할 수 없었지만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시키는 대로 한번 해보자 생각했다. 숨 쉬고 살아있는 순간순간이 너무 괴로워서. 어쩌면 내가 살아있는 이유가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천천히 나와 화해해 보자.



그가 내 준 숙제를 하나씩 공책에 적어 넣었다. 숙제는 주 단위로 달라지기도 했고 몇 주간 같은 걸 반복하기도 했다. 그중 제일 먼저 했던 것이 자기혐오가 솟구칠 때마다 그 생각을 공책에 쓰는 것이었는데, 머릿속 말을 종이에 옮겨적으니 너무 아팠다. 평생 어느 누구에게도 하지 않을 저주의 말들을 나는 계속해서 나에게 퍼붓고 있었으니까. 머릿속으로 그 말을 듣는 것과 종이에 쓰는 건 완전히 다른 일이었다. 나를 저주하고 혐오하며 자주 눈물이 흘렀다.


감사일기도 썼다. '매일 감사한 것 세 가지씩 쓰기'였는데 첫 한 달간 가장 어려운 숙제였다. 뭐가 감사하지? 아, 다친 사람이 없어서 감사하지. 내가 사지 멀쩡한 것도. 아무도 안 죽은 것도 감사하긴 한데 난 왜 안 죽었지. 이런 식이었다. 작은 것부터 써보려고 하기도 하고 제일 피부에 와닿는 것을 써보기도 했지만 쉽지 않았다. 날씨가 좋아서 감사하다고 쓰면서도 나 따위가 좋은 날씨를 누려도 되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무슨 의미가 있나. 나는 이미 쓰레기인데. 하지만 성실히 따라가기로 마음을 먹은 이상 억지로라도 썼다.


D가 나에게 말했다. "중독은 병이에요. 단주를 결심했다면, 간절히 그걸 원한다면, 자신이 나약하다는 걸 인정하세요. 그리고 도움을 받아요.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맡기세요. 중독이란 게 그런 거예요. 자신과 타인을 해하는 일을 계속하는 거예요. 그걸 그만두고 싶다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세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몇 달의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꽤 안정을 찾았다. D 외에도 많은 이들의 도움이 있었지만, 그 당시 나에게 절실히 필요했던 '나와 화해하기'의 문을 열어준 것은 분명하다.


그때 문득 막다른 골목까지 쫓긴 도망자가 휙 돌아서는 것처럼 찰나적으로 사고의 전환이 왔다. 나만 보았다는데 무슨 뜻이 있을 것 같았다.
...
증언할 게 어찌 이 거대한 공허뿐이랴. 벌레의 시간도 증언해야지. 그래야 난 벌레를 벗어날 수가 있다.


박완서작가님의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중 마지막 대목이 늘 내 안에 고여있었는데 언젠가 내가 벌레가 될 걸 알아서 그랬나 보다. 그러니까 내가 수치를 무릅쓰고 (불특정 다수의 뭇매와 질타를 두려워하며) 연재를 시작한 이유도 벌레의 시간을 증언하기 위함이다. 내가 나를 용서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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