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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테나 Nov 20. 2022

집착 쩌는 어머니, 그리고 그녀의 아들

새벽의 약속 - 로맹 가리


프랑스 소설가 로맹 가리(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도 활동했다)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새벽의 약속"은 그야말로 집착 쩌는 어머니의 아들이 소년에서 남자가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릴 때 본 드라마에 그런 남주들이 한 번씩 있었다. 홀어머니가 세상과 맞서 키워낸 소중한 아들. 아들을 위해 모든 희생을 감수하나, 그 대가로 아들의 절대적인 복종을 요구하는. 이 어머니는 좀 다르다.


러시아 출신 유대인인 그의 어머니는 배우의 길을 걸었으나 성공하지 못했고, 그런 그녀에게 아들은 한줄기 빛이자 희망이다. 그녀는 단 한순간도 자신의 아들의 위대함을 의심하지 않는다 (딱 한 번 아들에게 무섭게 귓방망이를 올려붙인 적이 있긴 하나 아들에 대한 광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다.)  아들은 어머니의 믿음을 실현시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엄마와 어린 아들은 러시아에서 폴란드를 거쳐, 험난한 여정 끝에 프랑스에 도착한다. '여정'이라고 했으나, 아들이 열세네 살이 되어서야 프랑스에 도착했으니 유년기의 전부를 '잠시 거쳐가는 곳'에서 지낸 셈이다. 이곳저곳을 거치며 프랑스로 향하는 동안, 엄마는 모자를 만들어 팔기도 하고, 의상실을 하기도 하고, 생계를 위해 무엇이든 가리지 않는다.  '거쳐가는 곳'치고 오래 산 곳도 있다. 중간에 빌나(Vilna - 현재 리투아니아; 당시에는 폴란드)에서 의상실이 너무 잘되는 바람에 돈 걱정 없이 살던 때도 있었다. (파리의 유명 디자이너의 지점이라고 사기 쳐서 소도시 아줌마들의 돈을 긁어모았다.) 그러나 결국에는 무일푼으로 그곳을 떠나게 된다.


이 불굴의 아주머니는 늘 말한다. "넌 대단한 사람이 될 거야." 그리고 아들에게 무한한 애정과 신뢰를 준다.


아들이 도대체 어떻게 대단한 사람이 될 것인지 찾는 과정은 왠지 애처롭다. 엄마의 빅 픽처는 이렇다.


(1) 아들을 저명한 아티스트로 만들고 (그녀가 예술인으로서 이루지 못한 꿈이다), (2) 사회적 명성과 권력도 가져야 하며 (3) 여자들이 마구 달려드는 멋진 남자가 되는 것이다.


일단 천재적 소질을 찾아내기 위해 엄마는 없는 살림에 비싼 레슨비를 내가며 온갖 예체능을 시켜본다. 피아노, 바이올린, 노래, 연기, 등등.  애석하게도 아들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소질 없음' 판정을 받는다. (아들이 막상 하고 싶어 한 것은 미술이었는데, 그림 그리는 사람들은 가난하고 일단 죽어야 빛을 본다며 그림은 못 그리게 한다.) 그 외에도 테니스, 펜싱, 레슬링까지 다 해보지만, 두각을 나타낸 운동이라고는 탁구 하나 (지역전에서 금메달 정도). 그러나 엄마는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는다. 넌 분명히 특별한 능력을 가진 아이야. 우린 그걸 찾아낼 거야. 눈물 어린, 그러나 미소 띤 눈으로, 애정을 가득 담아 아이의 눈을 들여보며 그녀는 말한다.

두 모자가 힘든 생활을 하고 있을 때에도 그녀는 사람들에게 당당히 외친다. "내 아들은 대단한 사람이 될 거야. 나라를 구하는 영웅이 될 거고, 위대한 작가가 될 거고, 프랑스의 외교관이 될 사람이야."  (재미있는 사실은 어머니가 이런 이야기를 할 때에 이들은 프랑스 시민도 아니었을뿐더러 프랑스에 살고 있지도 않았다.)



모자는 끝내 '문학'으로 분야를 정한다. 위대한 작가가 되기 위해, 아들은 어릴 때부터 공책 빽빽이 글을 쓰고 시를 쓰고 엄마에게 들려준다.


신기한 것은 실제로 작가는 2차 대전에 큰 공을 세웠다는 인정을 받고 프랑스에서 훈장을 받고 (작가의 고백을 보면 약간의 운과 오해가 더해진 결과인 것으로 생각된다. 정말 훈장을 받았어야 하는 이들은 전쟁에서 다 사망했다), 실제로 유명한 작가가 되고 (프랑스의 저명한 문학상인 공쿠르 문학상을 두 번이나 받았단다 - '로맹 가리', 그리고 '에밀 아자르'라는 각각 다른 필명으로. 그러나 동일인이다), 실제로 프랑스의 외교관이 된다.


이 글을 읽는 부모들이 흥분하기 전에, 그리고 본인이 원하는 모든 부귀영화를 자성예언처럼 자녀에게 쏟아붓기 전에, 일단 책을 다 읽어보길 바란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원하는 건 자녀의 행복이지, 자녀가 내 꿈을 대신 이루어 주는 건 아니지 않나.


엄마를 위해서 글을 쓰고, 공군에 지원하고, 안 되는 피아노며 바이올린이며 연기며, 모든 것을 열심히 한 아들.  난 그가 안쓰럽다. 전쟁에 참전해서도 엄마를 기쁘게 하기 위해, 어떻게든 큰 공을 세워 영웅이 되려고 최전방으로 뛰어들 궁리만 하는 아들.  로맹은 열심히, 묵묵히, 최선을 다해, 어머니의 인생을 대신 살아드렸고, 그녀의 꿈을 대신 이루어주었으나, 그 과정은 녹록지 않았고, 그는 고통받았음이 분명하다.  모든 것을 이룬 작가는, 66세의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작가는 말한다. 어린 나이에 그렇게 많은 사랑을 받지 말았어야 한다고. 그런 사랑에 한번 익숙해지고 나면, 그것을 계속 갈구하게 된다고. 그러나 다시는 찾을 수 없다고.


Truffle Aperitif


고민할 필요도 없이 이 책과 가장 잘 어울리는 술이다. 짠하면서도 따뜻한, 어쩐지 눈물 냄새가 나는 "새벽의 약속"과 트러플 향과 함께 프랑스 냄새 물씬 나는 Truffle Aperitif  파리 Maison de la Truffe에서 판매한다. (세병밖에 사오지 못한 것이 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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