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테나 Nov 20. 2022

지구에서 한아뿐 - 정세랑

진정한 판타지는 바로 그 '사랑'

2021년 겨울, 한국 방문 직전에 터진 오미크론으로 열흘의 자가격리를 하게 되었다. 그 시간을 위해 주문한 많은 책 중 지구에서 한아뿐 이 있었다. 정세랑 작가의 이야기들이 으레 그러하듯, 첫 장을 들추고는 생각보다 재미난 이야기에 빠져서 내려놓을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반나절만에 다 읽었다.  


일반인의 기준에선 특이할 수 있는 사람, 한아.  그녀는 지구를 사랑하며 인간이 망쳐버린 것들에 대한 책임을 느끼는 사람이다.  유명한 디자이너가 되리라는 주위의 기대를 버리고, 홍대에서 옛날 옷을 리폼하는 작은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그녀에겐 말 그대로 free spirit 오래된 남친, 경민이 있다.  경민은 마음이 내키는 대로 연락두절과 함께 훌쩍 떠나버리는 나쁜 습관이 있고, 그런 그가 내심 서운한 보통의 여친 한아.  그런데 어느 날 그 남친이 여행에서 돌아온 후, 이 세상에 사람이라고는 한아밖에 없는 듯, 관심과 애정을 쏟아붓는다. 


늘 만나서 놀던 친구들과의 시간도 마다하고, 삶의 초점을 오직 한아에게 맞춘 것처럼. 마치 그녀만이 존재의 이유인 것처럼.  한아는 그의 변화가 불편하고, 이상하고, 부자연스럽다.  


슬픈 얘기지만 오랜 시간 동안 적당한 무관심에 익숙해지면 당연한 일이다.  긴 연애나 결혼생활을 경험한 사람들이라면 아마 알 거다. (좀 섬뜩하지 않나. 데면데면하던 배우자가 갑자기 나만 보고 나에게만 관심 가지고 잘해주면?  나한테 왜 이래... 무섭게.... 나는 그럴 듯.)  


사실 우리 모두 그런 시절이 있었지.  내가 사랑하는 그가 마치 내가 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나를 사랑했던 기억.  아쉽게도 그 시기는 너무 빨리 끝나버리고, 나는 그에게, 또 그는 나에게, 그저 생활의 일부가 되고 만다.  사랑했던 기억, 또는 사랑받았던 기억은 희미하다 못해 '그럴 때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믿기 어려운 일이 된다.  


그러니 저렇게 사랑을 맹목적으로 쏟아부어주는 상대가 나타나면 결국 빠지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내가 우주에서 유일무이한 존재임을 쉬지 않고 일깨워 주는데? 


나는 일전에 읽은 로맹 가리의 새벽의 약속이 떠올랐다.  생존을 위해서라도 그런 사랑의 기억은 잊는 것이 옳다.  그 기억을 지우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망한 거다.  햇살처럼 나에게 쏟아지는 사랑은 다른 모든 것들을 시시하게 만드니까.  


굳이 따지자면 SF 내지는 판타지 장르에 속하는 지구에서 한아뿐이지만, 이 소설의 진정한 판타지는 외계인도, 우주여행도 아닌, 바로 저 '사랑'이다.  우주를 건너올 만큼 절실한 사랑.  그리고 내가 이 소설에서 가져가는 건 결국 사랑에 대한 고찰.  


오래전, 내가 누군가의 우주였던, 그리고 누군가가 나의 우주였던, 그때를 떠올리게 되는...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판타지.  




깔끔함이 남다른 '담은' 막걸리


안타깝게도 단독샷이 없다. 너무 맛있어서 아껴 마시는 것이 불가능했던, '담은' 막걸리.  깔끔하고, 청아한 막걸리의 맛은 잊혀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았다. 밥이 아닌 생쌀로 만든다고 들었는데 말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아? 막걸리가 이럴 수도 있다고?" 하는 생각이 들었던 술이다. 한국 방문 중 전통주 시음회에 갔다가 득템한 술 중 하나. 

매거진의 이전글 집착 쩌는 어머니, 그리고 그녀의 아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