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빠졌냐는 물음에 숨겨둔 대답
최근 살이 7kg 정도 빠졌다.
뺐다가 아니고 빠졌다라고 수동태 자연현상으로 표현한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갑작스럽게 불어닥친 이직, 전세대출, 이사, 연애 등으로 마음이 복잡하다 보니
입맛도 없고, 불안한 마음을 잠재우려 마구잡이로 걷는 시간이 늘어 자동으로 살이 빠지게 된 것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 몸무게는 20대 초반부터 항시 유지되던 몸무게였고 약 3-4년에 걸쳐 9kg가 쪘다가 다시 7kg가 줄어 원상태로 돌아왔다고도 볼 수 있겠다.
마음이 복잡하고 불안할 때 전조증상은 내가 뭘 먹는지도 모르는 채 멍하니 정서적 허기를 채우기 위해 이것저것 집어먹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곡기를 끊는다. 무서워서 잠시 쉬어가겠다는 굳은 의지의 표명일테다. 이맘때쯤엔 가슴이 쿵쿵대 속이 시끄러워서라도 걸을 수밖에 없다. 살기 위해서 걷고 쓰고 독서하고 소식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살은 빠지고 마음은 생애 가장 가난하고 몸은 생애 가장 클린한 기묘한 상태가 유지되기 시작한다.
다이어트 해요? 살빠졌어요? 뭐 했어요? 라는 말을 들을 때 바람빠지듯 어설프게 웃으며 '그냥 걸어요’라고 둘러댄다. 마음이 폐허가 되면 알아서 빠져요 라고 말할 순 없는 노릇이다. 그런 답을 기대한 물음도 아니었을테고.
절박하게 앓다보면 자연스럽게 격동의 시기는 지나가고 다시 또 나를 살찌우는 행복들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날이 오기 전까지는 이 달가우면서 달갑지 않은 무한 체중감량의 늪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수밖엔 없다.
건강하면서 불건강한 하루하루다. 걷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랬다면 ‘걷는 사람 하정우’는 인생에 풍파가 없었겠지. 인생에 풍랑은 오고 다만 그 풍랑을 버티는 법을 배우는 게 인생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