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희구 지음, 서삼독, 2021년 8월 25일 1권 발행
웹툰은 24년 초에, 드라마는 25년 말에, 책은 26년 1월에 읽음
웹툰으로 이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 김 부장이라는 캐릭터와 회사 생활에 대한 묘사가 너무 생생해 충격이었다. 매주 업데이트되는 웹툰을 열심히 따라가다, 당시 다니고 있던 회사의 한국인 부장님들에게 이 웹툰을 추천해주기도 했다. 김 부장의 이야기, 권 사원과 정 대리의 이야기, 그리고 송 과장의 이야기까지 이어지는 웹툰을 따라가다 이 작품의 원작이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원작을 쓰신 송희구 작가님에 대해서도 찾아봤었다. 작가님이 회사생활을 하며 틈틈이 블로그에 쓴 글이 소설로 출간되고, 이어 웹툰과 드라마화까지 이어진 케이스.
나도 그간 회사 생활을 하며 상사, 동료, 후배, 외주, 협력사, 파트너사 등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고 그들의 특징들을 관찰하고 인상적인 면들을 담아두려고도 했지만 막상 작품에 활용하지는 못했는데, 송희구 작가님의 생생한 캐릭터 묘사를 보면서 글을 쓰고 싶어 하는 회사원이 이룬 어떤 '이상적인 결과물'을 본 것 같아 존경스러우면서도 한편에서는 부러움과 질투가 솟아올랐다.
작년 말 방영한 드라마가 워낙 화제였어서 50대 대기업 꼰대 김 부장(1권)의 캐릭터는 다들 알겠지만, 책에서는 그 외 권 사원과 정 대리(2권), 송 과장(3권)의 스토리까지 펼쳐져 신입부터 대리, 과장, 부장에 이르는 이 시대 직장인 전 세대를 아우르는 한 편의 하이퍼리얼리즘 소설이 되었다. e-book으로 세 권 다 구매해서 읽었고, 어렵지 않게 술술 읽힌다. 다만 3권의 송 과장의 이야기에서 부동산(땅, 주택) 투자와 경제적 자유 등에 관한 작가님의 생각을 송 과장의 대사로 직접 풀어내다 보니, 소설이라기보다 마치 블로그나 칼럼 글을 읽는 느낌도 들었다.
전반적으로 캐릭터들이 생생하게 살아있어서 다른 약점은 크게 눈에 띄지 않는, 쉽고 재미있게 술술 읽히는 이야기다. 원작에서는 회사 업무나 회사 내 업무 관련 에피소드가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은데, 드라마화화면서 몇몇 캐릭터(백 상무, 도 부장, 유튜버, 와이프와 처제, 아들 주변 인물 등)와 에피소드(보고서 장표 관련, 인터넷 속도 관련 업무 실수, 회사 내 세차 업체 선정 등)에 살을 덧붙여 더 극적으로 드라마를 강화했다. 그래도 원작의 캐릭터 세팅이 워낙 매력적으로 잘 되어 있어, 웹툰화, 드라마화하는 게 어렵지 않았을 것 같다. 역시 이야기에서 캐릭터는 중요하다!
- 김 부장: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꼰대 부장. 전형적인 성공 공식대로 대학 졸업 후 대기업에 입사해 임원을 다는 삶을 이상적으로 여기며, 아들도 그 길을 밟길 바란다. 명품 가방, 서울 자가 주택, 대기업 등, 타인에게 보여지고 평가받는 자신에 집착하고 의식하고, 그 기준에 맞춰 사는 사람. 내가 가지지 못한 걸 남이 가지면 부러워서 배가 아픈 사람.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이런 지질한 면들을 극대화시킨 캐릭터. 그래서 마냥 남 얘기로 볼 수 없는, 독자 자신을 투영할 수 있는 캐릭터. 원작 1권과 드라마의 메인 캐릭터이다.
- 권 사원 : 김 부장팀의 이십대 후반의 막내 사원. 일은 잘하지만, 몇 년째 승진 누락된 같은 팀 과장 때문에 고과에 밀려 대리 승진에 누락되어 퇴사하고 결국 진정 하고 싶었던 일(산업 디자인)을 찾아 대학원에 진학한다. 몇 년 사귄 남친과 결혼을 약속했으나 과감히 헤어지고 송 과장의 조언을 양분 삼아 서울에 아파트를 한 채 장만하는, 똑부러지는 20대 캐릭터.
- 정 대리 : 아버지 회사 때문에 울산에서 서울 8학군으로 전학 와, 부잣집 친구들 사이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던 인물. 그래서인지 남들에게 보여지는 것에 집착하며 할부로 명품, 외제차, 백화점 옷과 구두를 생각없이 구매하여 인스타그램에 자랑하는 게 취미다. 같은 욜로족 와이프를 만나 결혼하고 신용 카드 연체로 잠시 신용 불량자 신세가 되기도 하지만, 송 과장과 대화하며 조금씩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려는 인물.
- 송 과장 : 작가 자신이 투영된, 전체 이야기의 숨은 화자. 적당한 인서울 대학을 나왔으나 번번이 취업에 실패하고 자살 시도를 했던 20대를 거쳐, 본인에게 ADHD와 우울증이 있다는 것을 알고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현재는 삶을 진취적으로 이끌어 나가고 있다. ADHD 때문에 편의점 아르바이트에서도 잘릴 정도였지만, 본인이 좋아하는 일(피아노, 부동산 공부 및 투자)에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하며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인물. 경제적 자유를 이루기 위해 철저한 노력을 하는, self-control에 특화된 인물.
작가님은 14년간 회사 생활을 했고 끊임없이 부동산 투자와 경제적 자유에 대해 공부하고 고민한 끝네 실제로 수백억대 자산을 갖게 됐고 지금은 회사를 나와 그에 관한 강의도 하고 관련 유튜브 채널도 운영하며 지내는 것 같다. 작가님이 이룬 지금의 '결과'가 부럽기도 하지만, 웹툰이나 원작 3권에 표현된 송 과장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저 정도는 노력해야 되는구나 싶은 존경심이 절로 든다.
원작에서 인상적인 대목들을 옮겨본다.
1권에서 김 부장이라는 캐릭터를 묘사하고 있는 대목들.
김 부장은 걱정이 된다. 아들 녀석이 취직 못하면 어떡하지? 듣도 보도 못한 회사에 들어가면 어떡하지? 동창 애들은 벌써 대기업에 입사했니 마니 하는데 걔네들한테는 뭐라고 말하지? 설마 진짜 장사를 하겠다는 건 아니겠지? 손이 떨리고 다리가 후들거린다. 김 부장은 스스로의 평가보다는 남의 시선이 더 중요하다. 늘 그래왔다. 남에게 보이기 위해 살아왔다. - p.35 1권
김 부장은 생각한다. 내가 꼰대인가? 아니야, 이건 꼰대가 아니야. 정상이 아닌 것을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게 이상한 거야. 팀원이면 차를 사기 전에 나한테 허락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아니, 허락까지는 아니더라도 상사한테 물어는 봐야 하는 거 아닌가? 내 생각이 잘못된 건가? -p.39 1권
그놈이...... 건물주라고? 김 부장을 우울하게 만든 사람은 없지만 스스로 우울감에 빠진다. 남과 비교하면서 우월감과 동시에 기쁨을 느끼며 살았던 기 부장이 이제는 남과의 비교로 우울해진다. -p.63 1권
친구 놈들 중에 건물주가 있을 줄이야. 내가 제일 잘 나가는 줄 알았는데...... 내 친구들 중에 내가 제일 잘 나가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나보다 공부도 못했고, 대학도, 직장도, 사는 곳도 구린 이 놈팽이가 건물주라니. -p.66 1권
김 부장은 교과서 외에는 딱히 책을 읽은 적이 없다. -p.76 1권
장사나 사업이나 다 탈세하고 사기 치는 거야. -p.80 1권
김 부장은 남들과 회사 바깥세상 이야기를 한 적이 거의 없다. 관심도 없다. 회사에서 일어난 에피소드를 늘어놓는 것. 그것이 김 부장이 사람들과 하는 이야기의 전부다. 아는 게 그것밖에 없다. -p.107 1권
내가 거품 위의 달걀 껍데기 같은 존재인 거 같다. 회사에서도 나를 이런 눈으로 본 걸까. 빨리 건져내서 버리고 싶은 그런 필요 없는 존재. 집에서도 이런 존재일까. 아내와 아들조차 나를 불필요한 존재로 생각하는 건 아닐까. (중략) 김 부장에게 라면은 등산 끝나고 먹는 성취의 라면, 축구 끝나고 먹는 승리의 라면, 술 취해서 먹는 해장의 라면, 친구들과 편의점에서 먹는 우정의 라면, 주말이 오기 전 금요일 점심에 먹는 설렘의 라면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기당한 백수, 패배자, 정신이상자의 라면이다. -p.206 1권
내가 갖지 못한 것을 남이 가졌을 때 용납하지 못했다. 질투심을 원망과 적대감으로 확장했다. 업무의 목적, 결과, 과정보다는 나에 대한 관심과 평판이 더 중요했다. -p.255 1권
친구들, 친척들, 동료들에게 내 자식 대기업 다닌다고 자랑하고 싶었다. 자식을 나를 위한 과시용 도구, 사회적인 체면과 자존감을 높여주는 수단으로 보았다. 이렇게 소중한 아이를 그렇게 생각해 왔다니...... -p.259 1권
2권의 권 사원 캐릭터.
어둑어둑한 해변가를 걷다가 모래성을 만든다. 파도에 무너지지 않게 수로도 판다. 파도가 몇 번 왔다 가다 하니 금세 없어진다. 아무도 내가 여기에 모래성을 만든 지 모른다. 나만 안다. 잠시 시간이 지나면 나조차도 어디에 모래성을 만들었는지 모른다. 뭐든지 쌓는 것은 오래 걸리지만 무너끄리는 것은 쉽다. 마음의 성도 비슷하다. -p.195 2권
오를 수도 있고 떨어질 수도 있다. 확률은 반반이다. 무조건 오른다는 믿음도 없다. 무조건 떨어진다는 걱정도 없다. 언젠가 들어가서 산다는 목적이 있다. 떨어지는 화폐가치를 방어한다는 목적도 있다. 이 두 가지 이유만으로도 충분하다. 권 사원은 다짐한다. 나는 부모님처럼 밀리고 밀려 삐라가 집 앞에 떨어져 있고, 대남방송이 들리고, 멧돼지가 출몰하는 곳에서는 살지 않을 것이다. -p.273 2권
솔직히 지금 내가 회사에서 하는 일은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회사일이라는 게 특정 연구개발직 말고는 일반적으로 약간의 센스와 눈치, 부지런함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언제든지 다른 사람과 대체될 수 있다는 뜻이다. -p.318 2권
무미건조하고 딱딱한 이메일만 써 버릇해서 글에 감정과 진심을 담아내기가 어렵다. 손이 좀 풀리고 나닌 대학원에 진학해야만 하는 이유와 절실한 감정을 담을 수 있다. -p.321 2권
2권의 정 대리 캐릭터.
대학을 가니 고등학교 때는 느끼지 못한 계급 차이를 더욱 실감했다. 1학년 끝내고 유학을 가는 친구, 어학연수를 가는 친구, 휴학을 하고 해외여행을 다니는 친구, 대학 다니면서 아버지 회사에서 일을 배우는 친구, 대학 가서도 자주 만나자고 했던 친구들은 모두 각자의 세계로 뿔뿔이 흩어졌다. -p.228 2권
3권의 송 과장 캐릭터. 작가 자신의 모습을 투영해서 그런지, 좀 더 생생하다.
각자 식판을 들고 와서 한 테이블에 자리를 잡는다. 권 사원은 천천히 먹는다. 정 대리는 약간 빨리 먹는다. 김 부장님은 그냥 마시는 것 같다. 나는 아주 빨리 먹을 수도 있고, 약간 빨리 먹을 수도 있고, 천천히 먹을 수도 있다. 대한민국의 과장이라면 그 정도는 할 수 있다. 나까지 빨리 먹으면 천천히 먹는 사람이 부담스러워진다. 나는 권 사원의 속도에 맞춰 먹는다. -p.19 3권
"자네, 하루 일과를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생각해 본 적 있나?" (중략) "그래, 이를테면 이런 거야.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면 정신이 희미하지. 그건 유아기야. 정신을 차리고 출근해서 일을 시작하는 시간은 청소년기인 거고. 점심을 먹는 시간, 이때는 뭔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고 돈을 벌어 즐길 수 있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이지. 점심을 먹고 나면 졸음이 오지 않나? 꾸벅꾸벅 졸면서 여기는 어디인가, 나는 누구인가, 졸면 안 되는데, 일어나야 하는데, 눈은 왜 감기지, 이런 생각하며 몽롱하게 꿈과 현실 사이를 헤매는 이때는 30대 후반에서 40대 중반. 시간이 지나서 어느 정도 잠이 깨고 오늘 뭐 했나 되돌아보는 시간이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인 셈이지. 그러다가 저도 모르게 퇴근 시간이 되어 회사를 벗어나는 시기는 50대 중반. 퇴근하고 집에 갔는데 딱히 뭘 해야 할지는 모르겠고, 반겨주는 것은 강아지뿐이고, 손잡아주는 것은 리모컨뿐인 시간은 60대인 거야." -p.180 3권, 부동산 박사장님의 말
그동안 본 책에 등장한 인물들, 중요한 순간에 손을 내밀어준 사람들 모두가 나의 동료이자 선후배이다. 이순신 장군, 세종대왕은 나와 한 팀이다.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는 나와 한 팀이다. 부동산 사장님들은 나와 한 팀이다. 아버지, 어머니는 나와 한 팀이다. 아내는 나와 한 팀이다. 나는 그들에게서 소속감을 느낀다. (중략) 어떤 ㅈ비단에 '회원 가입'을 해야만 소속이 되는 게 아니다. 내가 마음속에 동그라미를 그려 그룹을 만들고, 각 분야의 사람들 이름을 채워 넣으면 그게 소속이 된다. 결국 소속은 내가 결정하고,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p.231 3권, 송 과장의 말.
성공한 사람들의 자서전을 보면 진부하기 짝이 없다. 일찍 이러나고, 명상을 하고, 책을 읽고, 관심 분야에 깊이 파고들고, 운동을 하고, 좋은 사람을 만나고, 당장 일어나서 실천하고, 메모하고, 계획적인 삶을 살고, 담대한 목표를 만들고, 자신을 통제하고, 윤리적이며, 두려움에 맞서는 용기를 가지고, 좋아하는 일을 한다. 어디서 베껴 쓰기라도 한 것처럼 똑같다. / 그럼에도 진부하고 뻔한 과정이 바로 성공의 함수이다. 함수라고 하면 어려우니 덧셈 뺄셈이라고 하자. 결국 성공은 무엇을 더 하고, 무엇을 덜 하는지의 문제다. (중략) 운동 실력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평소에 자신을 가다듬고 통제하고 집중하고 있어야 한다. 혹시나 운이 다가왔을 때 거침없이 잡아채서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이 뜨겁게 예열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운이 끝나갈 때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대처하는 것까지가 운을 다스리는 실력이다. -p.309 송 과장의 말
깔끔한 정장, 번쩍이는 구두, 고가의 시계, 명품 가방을 들고 다니던 사람. 진급 누락 없이 부장까지 승진했던 사람. 장표 작성의 달인. 회사에서 치이도록 바쁘게 사는 게 인생의 동력이던 김 부장님. 교육, 사회, 문화, 관습이 만들어놓은 전형적인 사람. 밑그림이 그려진 스케치북에 열심히 색칠만 하면 되었던 존재. 새로운 것을 그리는 것보다 정해진 도안에 익숙한 중년. 50년 넘게 살면서 남의 그림에 색칠만 하다가 자신의 그림은 정작 그려본 적이 없는 어른아이. 그야말로 백지상태. -p.323 3권, 송 과장이 떠올리는 김 부장 캐릭터에서 나를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