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연 지음, 서랍의 날씨, 2023년 2월 27일 발행
2026년 1월에 읽음
이 책은 한국에서 한동안 한참 인기 있었던 [불편한 편의점]을 쓴 김호연 작가님의 '사적인 소설 작업 일지'이다. [불편한 편의점]도 아직 읽기 전이지만, 베스트셀러 작가의 글쓰기 노하우가 궁금해 집어 들었다. 밀리의 서재에서 pdf판으로 읽었는데, 글씨 크기가 너무 작은데 확대하려면 화면 전체 확대를 해야 했고, 밑줄 기능(하이라이트 표시)도 작동하지 않아 인상적인 구절에 밑줄 치기 좋아하는 나로서는 pdf판은 좀 불편했다.
작가님은 본인의 '작업실' 연대기를 중심으로, 그 외 글쓰기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세 가지 요소를 서술한다. 작업실, 루틴, 산책, 독서가 그것이다.
- 작업실(공간): 글쓰기를 방해하는 모든 요소를 제거한 지공의 공간. 그 자체로 글쓰기 세계로 진입하는 웜홀
- 루틴(시간) : 작업실로 나를 보내는 행위. 그곳에 머무는 시간을 효과적으로 보낼 수 있게 만드는 기술. 프로 운동선수가 매일의 연습을 통해 자기만의 폼을 만들고 스킬을 체화하듯, 작가 역시 매일 꾸준한 습작으로 글쓰기 감각을 놓지 않고, 그 안에서 자기만의 폼과 스킬을 장착해야 함.
- 산책: 발로 글을 쓰는 행위. 아이디어와 아이디어가 반응하고 캐릭터와 캐릭터가 들끓는 작가님의 창작 루트. 작업실에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으면 산책을 하며 떠올리고, 작업실로 돌아와 그것을 타이핑.
- 독서: 글쓰기의 전공 필수. 독서는 그냥 작가가 밥 먹는 거. 독서는 글쓰기를 떠나 한 인간으로서 배움을 지속하는 길. 독서는 겸손과 투지의 원동력, 독서는 자신감의 원천, 독서는 취재, 독서는 문장 강화, 독서는 단어 수집, 독서는 공감, 독서는 다른 인생을 사는 것
막상 쓰지는 못하고 요즘은 이런저런 책을 읽기만 하는 중인데, 그런 면에서 나는 아직 전공 필수 과목을 듣는 중이라고 위안해 본다......;
작법서나 작가님들의 루틴에 관한 책들을 몇 권 읽다 보니, 결국은 호기심을 갖고 주변을 관찰해 영감을 얻고, 그걸 글감화한 후, 꾸준히 앉아서 쓰는 것만이 답인 것 같다. 글을 쓰고 싶지만, 진도가 잘 안 나가거나 방향을 못 잡고 방황하는 사람이라면 가볍게 읽고 스스로를 채찍질할 수 있는 책.
늘 그렇듯, 인상 깊은 대목들을 모아 본다.
"뮤즈는 땅에서 지낸다. 그는 지하실에서 살고 있다. 그러므로 오히려 여러분이 뮤즈가 있는 곳으로 내려가야 한다. 그리고 내려간 김에 그의 거처를 잘 마련해줘야 한다. 다시 말해서 낑낑거리는 힘겨운 노동은 모두 여러분의 몫이라는 것이다." -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 중에서.
그렇다면 재미와 의미를 다 잡는, 문학성도 있는 베스트셀러를 쓰면 어떨까? 그것이야말로 가장 바람직한 작가의 완성형일 것이다. 하지만 시작 단계에서는 일단 한 가지 목표에 충실하길 바란다. 재미와 의미 모두 충만한 소설을 쓰는 작가가 되는 데에는 많은 경험과 시간이 필요하다. / 핵심은 자신이 어떤 성질의 소설을 쓰는지 알고 써야 한다는 점이다. 문학성, 작품성, 실험성, 대중성, 통속성, 흥행성, 무엇이든 좋다. 그 한 가지 성질을 기억하며 이야기를 완성해 나가기 바란다.
소설 쓰기는 진짜가 담긴 가짜 이야기를 당신만의 문체로 쓰는 일이다. 가공된 형식으로 진실을 담는 사적인 글쓰기 기술이 필요하다.
이야기는 무조건 궁금해야 한다. (중략) 이야기는 재미있어도 흥미로워도 안 되고 궁금해야 한다. 재미있는 이야기보다 더 재미있는 게 넘치는 세상이다. 유튜브 알고리즘만 따라가도 하루가 가버린다. 재미있는 이야기는 언제라도 뒤로 밀려날 수 있다./하지만 궁금한 이야기라면? 그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계속 읽을 수밖에 없다. 궁금증이 풀려야만 책을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궁금증을 유발하는 과정이 그럴듯해야 하고, 궁금증을 풀어가는 과정이 흥미로워야 하며, 마지막에는 궁금증이 만족스럽게 풀려야 한다.
이때 사실 내가 하는 것은 책상 앞에서 앉아서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일이다. 내가 그랬다면? 내가 그녀였다면? 이렇게 나는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본다. 다른 사람의 신을 신어보고, 다른 사람의 피부로 느껴본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 대해 상상한다. 이것은 호기심에서 나오는 것이다. 내 글쓰기의 최대 동력은 호기심이고, 나는 호기심이 매우 많은 사람이다. - 이은주(2019), '이스라엘 작가 아모스 오즈 인터뷰: 인간 심리 잘 쓰는 비법? 그 사람의 신발을 신어봐라', 한국일보(2019.01.02)
간단히 정리하자면 먼저 당신이 좋아하는 캐릭터를 만들어라. 다음에 당신이 싫어하는 캐릭터를 만들어라. 드리고 둘이 싸우게 해라. 그 싸움의 전 과정을 관찰해 당신이 싫어하는 캐릭터의 좋아하는 면을 발견해 발전시키고, 당신이 좋아하는 캐릭터의 싫어하는 면도 발견해 발전시켜라. 결국 당신은 입체적인 캐릭터 둘을 얻게 될 것이다. 이것이 초고의 과정이다.
"책상 앞에 앉을 때는 이미 그날 써야 할 글감을 모두 지닌 채 앉아야 합니다. 책상 앞에 앉아 이제 뭘 쓸까? 궁리하는 것은 허리와 엉덩이를 고문하는 방법일 뿐입니다. 글을 당신의 머릿속에서 이미 구상되고 정리되어 집필 가능 모드의 글감으로 완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 다름에야 당신은 책상 앞에 앉을 수 있습니다. (중략)." => 내가 책상 앞에 앉지 못하는 핑계. 글감이 선명하지 않다.
하지만 글을 쓸 때는 당장 눈앞의 길에 집중해 한 발짝씩 가야 한다. 나는 작품의 시작 즈음, 갈 길이 막막할 때 이 금언을 떠올린다. 큰 그림이 안 그려질 때 오늘의 길만 걷자고 다짐한다.
글 쓰는 일을 받아들여 습관으로 만들고 그 습관이 강박관념이 되기 전에는, 그 사람은 작가가 아니다.
글은 막마에 맞춰 완성되는 것이다. 미완성의 완성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완벽한 글을 보여주겠다는 것은 착각이다. 그런 자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어이, 지구도 초기 마감에 일주일 걸렸어. 그리고 지금까지 고치는 중이야."
그러기 위해 먼저 당신 스스로가 공감할만한 주인공 캐릭터를 만들어야 한다. 주인공에게 공감되지 않는 이야기는 작가 역시 쓰기 곤란하다. 이는 소설이 잘 써지지 않을 때 주인공 캐릭터부터 다시 점검하라는 뜻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