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해나 지음, 창비, 2023년 3월 17일 발행
2025년 1월에 '밀리의 서재'에서 읽음
이틀간 짬 내서 후루룩 읽었다. 오래간만에 따스하게 행복해지는 소설을 만났다.
[혼모노]를 읽었을 때와는 달리 작가님에 대한 궁금증이 일어 작가님의 블로그와 인스타그램도 찾아봤을 정도로, 마음에 와닿았는 소설이었다. 작가님의 다른 소설집 [빛을 걷으면 빛]도 찾아 읽어보고 싶어졌다.
작은 사진관을 운영하는 아버지의 재혼으로 열아홉 기하는 열한 살 재하와 갑작스레 형제가 된다. 기하는 진짜 가족도 아닌데 가족인 척 살아보려고 애쓰는 아버지와 재하 어머니가 못마땅해 재하 모자를 멀리한다. 친아들 기하와 동등한 보살핌을 주려는 재하 어머니를 밀어내고 뾰족하게 대하거나, 아토피 치료를 받는 재하를 따라 같이 병원을 가주긴 하지만 절대 거리를 좁히지 않는 식으로. 이 어색함을 애써 못 본 체 하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도 솟아난다.
소설은 기하와 재하의 시점에서, 세 번에 걸쳐 번갈아 서술된다. 처음 한 집에 살게 된 어린 시절, 기하가 대학 기숙사로 떠난 후, 서로 소식을 모르고 산지 한참 지난 후인 삼십 대의 기하와 이십 대 막바지의 재하, 이렇게 약 이십여 년에 걸쳐서. 동일한 사건이나 에피소드를 각자의 입장에서 다르게 회상하는 기하와 재하의 서술이 재미있게도, 아련하게도, 안타깝게 읽히기도 한다.
제목 "두고 온 여름"은 기하와 재하, 기하 아버지와 재하 어머니 넷이 다 같이 '인릉'에 갔던 어느 여름날을 지칭하는 말이자,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 시절과 다시 만날 수 없는 인연을 모두 담은 말인 것 같다. 뾰죡했던 십 대의 기하는 도무지 재하와 재하 어머니를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삽십대가 훌쩍 넘은 기하는 우연히 보게 된 스트리트 뷰에서 그들의 모습을 발견하고 능청스럽게 찾아갈 수 있을 정도로 무뎌졌다. 하지만 이미 재하 어머니는 세상에 없고, 재하는 예전과 다르게 더 이상 '밝지' 않다. 어떻게든 그 가족을 유지하려고 했던 아버지는 재하 어머니와 4년을 살고 이혼했고 지금은 요양원에서 지내고 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조금 다르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
소설은 기하와 재하의 시점에서 번갈아 서술되지만, 기하의 이야기로 시작되어 재하의 이야기로 맺어지면서, 마지막에 재하가 옛집(사진관 딸린 그 집, 지금은 누가 사는지 알 수 없는)으로 부친 편지의 내용 - '누구든 그곳에서는 슬프지 않기를 바라는' -이 긴 여운을 남긴다.
읽는 내내 미소가 지어지거나 안타까운 마음이 들거나 마음이 따스해지거나 했던, 소설. 나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어떤 시절을 회상하는, 그런 류의 소설을 좋아하는데, 그런 면에서 김애란 작가의 단편집 [침이 고인다]도 떠올랐다. 둘 다 행복하게 읽은 소설이다. 언제고 다시 읽고 싶은 책.
인물과 이야기를 모두 촘촘히 만들어놓고 소설을 쓴다는 성해나 작가의 작업방식도 인상적이었다. 그래서인지, 기하와 재하, 기하 아버지와 재하 어머니 이 네 인물 모두를, 생생하게 떠올리며 애정을 갖고 바라볼 수 있었다. 성해나 작가님의 다른 책들도 얼른 읽고 싶다.
이 소설을, 올해 들어 읽은 소설 중 제일 마음에 와닿은 소설로 (당분간) 꼽겠습니다.
인상적인 구절들을 옮겨 적어본다.
울퉁불퉁한 감정들을 감추고 덮어가며, 스스로를 속여가며 가족이라는 형태를 견고히 하려고 노력했지요. 두 사람 모두 한 번씩은 아픔을 겪었고, 그것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을 테니까요. 물론 자신을 속일 틈도 없이 툭, 튀어나온 날것의 감정들도 있었지만요.
제게 등을 진 채 어머니는 한참 울었습니다. 고여 있던 것을 흘려보내듯 잠잠히. 어떤 울음이 안에 있던 것을 죄다 게워내고 쏟아낸다면, 어떤 울음은 그저 희석일 뿐이라는 것을 저는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비워내는 것이 아니라 슬픔의 농도를 묽게 만들 뿐이라는 것을요.
그게 불편해요. 가족도 아닌데 가족인 척하며 사는 게. (중략) 저기, 제발...... 이러지 마세요. 애쓰지 마시라고요. 이러 때마다 정말, 숨이 막혀요.
날 때부터 품어온 익숙한 것들이 하나둘 빠져나가고 새것이 돋아나던 시절.
그 사람과의 묵은 악연은 우리 모자뿐 아니라 우리와 이어진 이들에게까지 짙은 그늘을 안겼습니다. 씻을 수도, 무를 수도 없는 상흔을 남겼습니다.
홀로 남아 사진첩을 넘겨 봅니다. (중략) 부드럽게 미소 지은 채 손을 맞잡은 세 사람을 보고 있으면 우리가 버티지 못하고 놓아버린 것들, 가중한 책임을 이기지 못해 도망쳐버린 것들은 다 지워지고, 그 자리에 꿈결같이 묘연한 한여름의 오후만이 남습니다. 이편에서 왔다가 저편으로 홀연히 사라지는 것들. 어딘가 숨어 있다 불현듯 나타나 기어이 마음을 헤집어놓는 것들.
그들과 함께 살았던 날들을 떠올리면 불안하고 미숙했던 내가 재하 모자에게 안겨주었던 자잘한 상처만이 선명히 상기되었다. (중략) 헤어진 이들은 대개 두 부류로 나뉘었다. 다신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과 한 번쯤은 더 만나도 좋을 사람. 내 삶에서 재하와 재하 어머니는 언제는 전자였다가, 언제는 후자가 되곤 했다.
재하는 짐을 챙기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표정을 굳히고 게임을 이어갔다. 감추려고 하는 것 같았지만 슬픔과 부끄러움이 그 애의 얼굴에 여실히 드러났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 애는 숨기는 데에 재주가 없었다.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마음을 똑바로 마주하고 감당하는 게 나는 언제나 버거웠다.
생각해 보면 나는 살면서 터득한 요령이나 더 나은 이생의 지표를 재하에게 알려줄 만한 사람이 못 되었다. 나 역시 그런 노하우 따위 없었다. 내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는데. 어쩌면 그런 이유로 자꾸 실없는 말만 늘어놓은 것인지도 몰랐다.
매미는 칠 년이 넘도록 땅속에 살다 밖으로 나온다는 거 알아요? (중략) 땅 위로 나와서는 겨우 한 달 남짓 산대요. 가끔은 궁금해요. 한 달간의 생이 존재한다면, 나는 누구를 가장 먼저 기억하고, 누구를 가장 마지막으로 떠올릴지.
잘 나왔네./ 잘 나왔네요./ 역광이 심해 누가 그 애고, 누가 나인지 구분조차 어려웠다. 잘못 찍은 사진이었지만 누구도 다시 찍자고는 하지 않았다.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재하는 한참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빛 아래 우리는 두 점 그림자 같았다.
아무것도 두고 온 게 없는데 무언가 잃어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능에서 서서히 멀어지고 있었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충동이 들 때마다 저는 스트리트 뷰를 살펴보곤 합니다. (중략) 커서를 옮기며 이곳저곳 누비다 보면 그곳을 온전히 혼자 누리는 것만 같은 기이한 충만감에 잠기곤 합니다. 특히 스트리트 뷰 속에 정물처럼 멈추어버린 사람들의 표정과 마음을 더듬을 때면 잠잠히 흐르던 시간이 그대로 고여버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 속에서 나 혼자 천천히 누군가의 기억을 걷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곰곰이 고민하다 저는 봉투의 공란에 오래전 우리가 함께 살던 집의 주소를 적었습니다. 사진관에 딸린 그 작은 집의 주소를요. 한데 모여 밥을 먹고, 골목에 나가 자전거도 타고, 간간이 웃음을 터트리던 한때를 반추하면서요. 누가 이 편지를 받을까요. 재하야, 다정히 부르며 이마를 쓸어주는 아버지일까요. 희고 따듯한 빛이 새어 들어오는 창가에 서서 해바라기를 하는 어머니일까요.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다 가만히 미소 짓는 형일까요. 누구든 그곳에서는 더 이상 슬프지 않기를 바라며 오오누키 씨에게 편지를 건넸습니다. 미처 못다 한 말이 봉해진 편지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