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5페이지나 되는 두꺼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외롭지 않았다. 프롤로그부터 연달 그어지는 밑줄에 시작도 않은 이 책의 끝이 아쉬워졌다. 「코드가 맞는 사람을 우연히 발견했을 때의 흥분을 아는 사람이라면」이라는 이 책의 문장처럼 취향 가득한 그녀의 이야기는 나를 공감이라는 위로로 흥분시켰다. 나를 모르는 그녀와 가까워지고 싶었다, 아니. 그녀의 취향과 가까워지고 싶었다. 책 읽는 동안 처음 들어보는 뮤지션과 영화를 검색하고 찍어두기를 몇 차례, 「프란시스 하」가 나오자마자 내적 환호성을 질렀다. 이 영화를 알다니, 그것도 좋아하다니!
지금껏 가장 좋아하는 책이 뭐냐고 물어보면 대답할 수 없었다. 존경하는 작가가 쓴 책은 놓치지 않고 읽었고 감탄하고 감동했던 책도 많았지만 왜인지 떠오르는 제목은 없었다. 나는 내가 책보다는 책을 쓰는 사람을 더 좋아하나보다 생각했다. 겨울답지 않은 겨울이 찾아오고 있는 32살의 끝자락에 사놓고 방치해 두었던 그 책은 느긋한 햇빛이 들어오는 카페에서 에이드 한 잔과 커피 두 잔을 마시게 할 만큼 나를 집요하게 만들었다. 아이도 어른도 아닌 애매한 나이에 깨달아 버린 것들은 그녀는 20대에 알고 있었다. 그녀가 자처해서 쌓아가는 여행이라는 삶을 통해서 말이다. 방황이라는 변명으로 입체적일 수 없었던 내가 아닌, 나답게 사는 법을 알아차린 지금 이 글을 읽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온전히 나로서 인정받는 기분이었고 그 기분은 나를 알아주는 다정한 채찍질이었다. 더 잘 살라는.
그녀의 책을 읽으면서 내 손과 머리는 쉬지 못했다. 좋은 문장이라도 나오면 밑줄 치기 바빴고 어떤 페이지는 낙서장인 마냥 지저분해졌다. 읽으면서 느낀 생각들을 빨리 글로 남기고 싶어 조급하기도 했다. 순간 떠올려진 문장들을 잊을세라 급하게 휴대폰에 메모했는데 오타가 나도 그대로 둘 만큼 그녀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게 중요했다. 인생 처음 가장 좋아하는 책이 생긴 만큼 들떴다. 이 카페와 이 거리와 이 시간엔 나와 20대의 그녀만이 있는듯했다. 그녀가 베를린에서 프란시스 하 처럼 걸으면 나도 같이 걸었다. 인상을 찡그렸다는 구절에서는 같이 인상을 찡그렸고 한숨을 쉬었다는 구절에서는 같이 한숨을 쉬었다. 그녀가 쓴 모든 활자는 곧 덮혀버릴 환상 속 친구가 되었다.
나를 알아주는 것 같은 이 책을 나를 알아주는 또 다른 친구에게 선물하고 싶었다. 어리기만 했던 10대부터의 나를 지켜봐 준, 나보다 더 책을 좋아하는 친구들이었다.
‘이 책은 내가 사랑하는 책이 될 것 같고 읽는 동안 자주 니 생각이 났다. 그러니까 선물! 항상 고마워.’
‘내가 올해부터 혼자가 너무 괜찮아졌거든, 평생 살면서 32살이 제일 행복하다 할 만큼? 나를 알아주는 것 같은 책을 찾았는데 책을 좋아하는 친구한테 주고 싶었음. 니가 했던 말들이 이해되는 순간도 많았음.’
미리 전달하는 소소한 연말 선물이라는 말을 덧붙이며 보내자마자 온 친구들의 답장은 호들갑 없이 편안했다. 자연스럽게 책 이야기로 넘어가는 그 대화에 자유로움을 느끼며 입체적인 나를 보았다. 참 마음에 드는 요즘의 내 삶, 아무것도 아니게 되더라도 내가 나를 알아 의미 깊어진 내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