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부딪히는 달그락 그릇 소리와 시원하게 쏟아지는 물소리에 자연스레 눈이 떠졌다.
거실에 나오니 싱크대 앞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엄마가 잘 잤냐 묻는다. 마당이 훤히 보이는 큰 창밖에는 키 큰 고추밭 사이로 밀짚모자가 들썩인다. 부지런한 두 부부 덕분에 이른 아침부터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됐다. 한 달 전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인터뷰 프로젝트에 대한 샘플 촬영을 부탁했었다. 큰 일인 마냥 떨려 하던 두 부부의 모습이 참 귀여웠다. 평화롭지만 지루하기도 한 일상에 특별한 이벤트가 생긴 설레는 일이었다.
“아빠가 어떻게 하면 되는데.”
“엄마가 잘할 수 있을까?”
“아이, 왜 그렇게 떨려 하는데! 그냥 딸이랑 이야기하는 건데.”
커피와 다과를 두고 테라스 벤치에 두 부부를 앉혔다. 카메라를 설치하고 노트북을 켜니 행동이 부자연스러워지는 게 웃겼다. 사실 새로운 프로젝트의 주제와 엄마아빠의 삶은 달랐다. 샘플 촬영은 핑계고 두 부부에게 추억을 선물하고 싶었던 게 컸다. 종종 속이야기를 하는 엄마와 달리 아빠는 깊은 대화를 부담스러워할 뿐만 아니라 과묵한 사람이었기에 그저 이 시간을 다 함께 보낸다는 게 좋았다.
“엄마아빠는 평범했다. 지금 이렇게 사는 게 행복하고, 너네 다 키우고 텃밭 가꾸고 하나는 결혼해서 손자도 보고.”
“꿈 같은 건 생각할 정신도 없었지. 그 시절에는 다 힘들어서 먹고사는 게 바빴다. 누구나 한 번쯤은 다 망하고.”
몇 번의 사업 실패로 힘들었을 두 부부는 누구든 한 번쯤은 망한다는 말과 함께 그저 평범한 삶을 살았다고 말한다. 정신없이 키운 딸 둘이 제 몫을 해내며 살아가니 덜어진 부담과 함께 온전히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여유를 찾았다. 열심히 일을 하다 제 나이에 시집간 첫째는 말랑콩떡한 손자를 만들어 일상의 활력까지 주었으니 얼마나 평화로운 삶일까.
“너희 언니는 현실적인 사람이다. 니는 생각이 어디로 튈지 몰라서 종잡을 수가 없다. 추측이 안 된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인 엄마가 보기에도 니는 평범한 건 아니다.”
자꾸 과거를 물어 불편한 아빠는 대화 주제를 피했고 자연스레 주제는 둘째 딸인 내가 되었다. 예민한 성격으로 피곤하게 굴었던 작은딸이 개인사업을 한다니 걱정스러움과 자랑스러움이 섞여 애매한 기분인 듯했다.
“그럼 내가 내 일 한다고 하니까 어땠어? 내한테 해줄 말 있나?”
“니가 무슨 일을 하는지는 정확히 이해도 안 되고 모르겠는데, 니가 하고 싶은 일하면서 사는 건 좋다. 니가 하고 싶은거 원 없이 다 해보고 대신 무리하게는 하지 마라.”
처음 듣는 아빠의 조언 뒤 폭신한 엄마의 응원이 이어진다.
“니가 지금 굉장히 편안해 보이고 활기차 보이거든, 니가 생각하는 대로 밀고 나갔으면 좋겠어. 응원할게.”
예상했던 30분이 지나자 인터뷰 분위기는 자연스레 마무리되는 듯 흘러갔다. 챙겨온 필름 카메라로 서로의 사진을 찍고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엄마는 남은 커피를 홀짝이며 카메라를 정리하는 딸과 텃밭으로 향하는 아빠를 쳐다본다. 시간이 너무 짧아 내용이 나올까 모르겠다며 투정 부리는 딸에게 이해하라는 듯 웃는 엄마는 마냥 이 순간의 화목과 평화로움이 마음에 드는 듯 보였다. 설레고 떨렸지만 불편하기도 했던 가족 인터뷰는 짧았지만 돈독했다. 평범을 추구하는 두 부부의 깊은 이야기는 결국 꺼내지지 않았지만 여러 장의 사진과 짧은 영상과 적당한 글은 남겨졌다. 가족 단톡에 전송된 사소한 영상에 모두가 웃기도 했다. 평범하지 않은 평범을 담는 브랜드의 샘플이자 첫 콘텐츠는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로 담겼지만 추억을 남기고 응원을 받았으니 됐다. 그저, 그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