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왜 ‘한낮의 포르노’를 쓰게 되었나

by 김현아




우연히 보게된 서립의 소설은 읽을수록 질척이고 찐득거리는 게 꼭 액체괴물 같았다. 묘한 자극에 계속 찾게 되는 것도 똑같다고 생각했다. 빠르게 주물러야 손에 묻지 않는 액체괴물은 조금만 오래 쥐고 있어도 점성이 심해져 더 찐하게 달라붙는다. 이 소설은 딱 그만큼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 소설 속 주인공은 이해할 수 없는 형태의 사랑을 반복했고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잠자리를 가진다. 신은 그녀에게 뛰어난 글솜씨와 공부 머리를 주었지만 사람은 주지 않았다. 멈추지 않는 구설의 폭력으로 결국 나체의 여자를 보게되는 ‘조현병’을 얻게 된다.


이 소설은 서립의 실제 삶을 기반으로 작성되었으며 제목은 ‘한낮의 포르노’다.

“이렇게 사랑하면 안 된다는 지침서라고 적어두셨어요. 왜 그런 소개글을 남겼을까요?”

“한낮의 포르노는…실화와 픽션이 반반 섞인 이야기예요. 사랑에 맞고 틀리고는 없겠지만 도의적인 선은 있잖아요. 소설에 나오는 모든 연애 관계는 그 틀에도 못 미치는 틀린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사랑은 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제목의 이유도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은 거예요. 소설에 나오는 거의 모든 인물과의 잠자리를 낮에 가지는데, 온전한 밤을 함께 보내지 않은 만큼 무언가를 나누지 못한 관계라고 생각했어요. ‘포르노’라는 단어 외에는 소설 주인공이 겪어온 사랑을 제대로 담을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았고요.


도의적이지 않은 사랑을 말하는 서립의 목소리는 그와 어울리지 않게 나긋했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데 적당한 공기가 차서 듣기도 좋았다. 그 목소리로 잘 웃기도 했는데 틀린 사랑 이야기를 하며 웃는게 마음이 비어 있다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같이 웃었다.


“그만큼 쉽게 말할 수 없는 이야기도 많이 나와요.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아요.”

“정말 큰 용기가 필요했어요. 실제로 세상에 내놓으면 안 될 글이라는 지탄을 받기도 했어요. 용기는…’진짜 사랑’을 잘하고 싶었기 때문에 적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용기를 내도 용서받을 수 없는 사랑의 이야기가 시작됐을땐 질타의 댓글이 달렸다. 실화와 픽션이 오가는 설정에 서립은 그저 사과의 댓글을 남겼다고 했다.


「제대로 보셨습니다. 그런 걸 남기고 싶어 쓴 소설입니다. 세상에 내놓게 되어 죄송합니다. 그리고 읽어주셔서 감사한 마음도 함께 전합니다. - 서립의 댓글」



사실 인터뷰를 하면서 궁금한게 넘쳤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픽션인지, 그녀의 범상치 않은 인생을 알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그녀의 생각이 듣고싶어 간 것이지 인생을 고하라고 찾아간 건 아니기 때문이었다. 스스로도 항복못한 인생을 파해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준비해 둔 형식적인 질문이 아닌 대답의 꼬리를 물고 생기는 궁금증은 두루뭉실 다듬어 물어보려 노력했다. 곤란한 건 피하고 답할 수 있는 건 하라는 뜻이었다. 소설 속 아픔이 사실이라면 나와 대화하는 순간이 그저 편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던 것 같다.


“소설을 읽으면 추측이 되는 게 있잖아요. 몸과 마음이 너무 아픈데, 그게 너무도 많은 구설에 시달려서 그랬던 것 같아요. 그 시작은 고등학생 때였던 것 같고요.”

“맞아요.”

“괜찮다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어볼 수 있을까요?”

“어…제가 원래 몸이 좀 많이 아팠어요. 중학교는 의무교육이니까 억지로 나가야 했는데 고등학교는 아니잖아요. 그래서 학교를 거의 못나갔죠. 그랬는데…”


말하다가 잠시 멈춘 서립은 갑자기 민망하다는 듯 웃더니 말을 이어갔다.


“너무 내 자랑 같은데 (웃음)”

“괜찮아요. 저 자랑 듣는 거 좋아해요. (웃음)”

“학교를 못 나가는데도 성적이 계속 잘 나오니까 애들이 뒤에서 수군거리기 시작했어요. 내신성적에 굉장히 중요한 논술시험이 있었는데 제가 거기서 1등을 해버린 거에요. 학교는 안 나오는 애가 시험만 띡-치고 갔는데 1등을 해버리니까 문학 선생님이랑 자서 그런 거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어요. 다른 과목도 성적이 잘 나오면 다 그 선생들이랑 자서 그런 거라고, 제가 토요일에 어떤 선생님이랑 모텔에서 나오는 걸 봤다는 소문도 돌았더라고요.”


선도 자아도 없는 심심한 어린 학생들에게 튀는 모습을 보이면 바로 타겟이 된다. 그저 남들보다 조금 더 뛰어난 두뇌와 학생이라는 의무감이 주는 강박으로 홀로 한 공부라는 것도 모르면서 말이다.


“막 둘러싸여서 집단 따돌림을 당한적이 있어요. 엄청 욕설을 퍼붇고 그런 적이 있었는데…그때는 지금과 다르게 완전 내향적이어서 질질 짤 수밖에 없는 거야. (웃음) 그리고 그날 바로 자퇴했어요. 엄마한테 전화해서 ‘엄마 애들이 나 죽이려고 해.’ 했더니 엄마가 깜짝 놀라서 바로 자퇴시키셨거든요.”

“받았던 오해를 풀고 싶진 않으셨나요?”

“그럴 기회도, 시간도, 마음도 없었어요. 그런데 대학생때 구설은 제가 한몫했다고 생각해요. (웃음)”

“왜요?”

“술도 너무 많이 퍼부었고…(웃음) 뭐…술자리라면 가리지 않았으니까 일조했다고 생각해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도 모르겠고, 도망치듯 휴학했는데… 동기들은 졸업하고 바빠지니까 어느 순간 저에 대한 소문이 희미해졌더라고요. 퇴색도 되고 바래져서…뭔가 고치려 하면 오히려 더 선명해질 것 같아요. 저도 처음엔 힘들었는데 지금은 먹고살기 바빠서…(웃음)”

“아픈 몸과 마음은 많이 회복된 걸까요?”

“여전한 것 같아요.“



사랑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 가족과 친구, 애인, 그저 가까운 지인이라고 해도 사랑의 에너지로 관계가 맺어지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서립은 그 여러 모양의 사랑이 어려웠던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와 타인을 위한 용기로 잘못된 사랑 이야기를 세상 밖으로 꺼냈다. 자신의 병명을 밝히면서까지 말이다. 너무 나쁘게만 바라보지 말아달라 했다. 이야기의 완성을 위해서기도 했지만 이렇게 유지하고 사는 사람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는 말과 함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믿으려 하시는 것 같아요.”

“저는…사랑의 힘을 믿진 않지만 믿고 싶어 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사랑을 해본 적이 없으니까 더 갈망하는 그런 부류인 것 같아요. 사람을 안 믿는다면서 또 믿나 봐요. (웃음)”

“그럼 원하는 사랑이 있을까요?”

“이 질문을 되게 많이 받아요. 처음에는 나라는 범주 안에 집어넣는 일이라고 말했어요. 사람은 태어나면서 누구나 자기를 먼저 생각하는 본능적인 무언가가 있잖아요. 그러니까 그게 내 안으로 들여놓는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애인한테 부르는 ‘자기야’의 ‘자기’가 그 뜻이니까요. 그런데 지금 생각하는 사랑은…그게 아닌 것 같아서 찾는 중이에요”


찾고 있다는 말을 끝으로 잠시 생각에 빠져있던 서립은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저는 또 정말 사랑이 하기 싫은 사람인 것 같아요.”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무언가에 기대고 싶지 않아서요. 제가 일기를 매일 쓰는데 요즘은 거의 홀로 서는 사람이고 싶다고 적어요. 그런데 제가 생각하는 사랑은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있는 형상이거든요. 그게 연인, 친구, 가족 모두 다 해당되는 것 같아요.”

“아무에게도 기대고 싶지 않은 거죠?”

“그런 것 같아요. 이때까지 계속 기대어 오기만 하니까 힘든 일이 생기면 사람을 제일 먼저 찾더라고요. 그게 너무 싫은 거예요. 언젠간 없을 수도 있잖아요. 그게 잘못된 사람일 수도 있고. 내가 원할 때 취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잘못된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그 뜻은 편안해지고 싶다는 말처럼 들렸다. 강해지기보다 이제는 마음이 편안했으면 하는 바람처럼.



“그러면 다른 사람들도 그런 사랑을 했으면 하나요?”

“사람들은…완연한 사랑을 했으면 좋겠어요. 당당하고…확실한…그런 것들. 내가 이 사람에게 뭘 원해도 되고 해줄 수 있는, 서로가 확실한 사랑이요.”


서로에게 당당히 무언갈 원하고 줄 수 있는 사이라는 말이 좋았다. 그만큼 선명한 비유가 또 있을까 싶었다. 그녀는 말하면서 자주 뜸을 들였는데, 어쩌면 본인이 원할 그 사랑을 잠깐 생각해 본 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소설의 사랑 이야기는 끝나가고 있을까요?”

“슬슬 정하고 있는데…아마 지금 거의 끝인 것 같아요. (웃음)”

“그럼, 사람들이 ‘한낮의 포르노’를 읽고 어떤 기분이 들었으면 해요?”

“기분이 좀…더러웠으면 좋겠어요. 좋은 이야기는 아니니까요. 소개란에도 잘못된 사랑이라고 써놨잖아요. 잘못된 걸 봤으면 기분이 더러워야 하는 게 정상이니까…”


잠시 흐른 침묵 뒤 마지막 질문을 했다. 작가 ‘서립’으로써 어떻게 보였으면 좋겠냐는 내용이었다.


“글 잘 쓰는 작가, 딱 그거. 그리고…이건 뭐지 싶은, 오묘함. (웃음)”


그녀가 원하는 두 가지는 이미 글 안에 담겨 있다. 자극적인 내용이 아닌 필력으로 느껴지는 것들이니 그저 자신을 믿기만 해도 될 것 같다 말하고 싶었다. 서립과 만나고 돌아온 그날 저녁, 침대에 누워 소설을 다시 읽었다. 얼마 남지 않았다는 그 결말을 끝으로 조금이라도 후련해지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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