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잊어서 잃어버릴 뻔한 취향

by 김현아



취향도 무형의 귀중품이라는 것을 가끔 상기시켜야 한다. 잊어버리거나 잃어버릴 수 있으며 가끔 훔쳐질 수 있는 존재기 때문에 소중히 여겨야 하는 것이다. 타인과 타인이 섞여 뒤죽박죽한 우리네 하루 중 순간이나마 안정을 느끼는 건 어떠한 내 취향을 만났을 때 일 가능성이 높다. 숨 고르는데 집중해야 하는 점심시간 입맛에 딱 맞는 밥집, 우연히 들어간 가게에 풍기는 마음에 드는 향, 커피 한 잔도 마음에 쏙 들게 마시고 싶어 둘러둘러 찾아간 인테리어 좋은 카페. 귀중품이라 표현했지만 사실 취향이라는 것은 이만큼이나 소박한 것이다.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부터 차근차근 쌓아 나를 만들어 가도록 설계해 주는 것. 단 하루라도 나스럽게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값진 무형의 존재. 무언가 단단해 보이는 사람은 본인의 취향을 알아 이미 자기의 세계를 만든 사람 이랬다. 이 정도면 정말 빼앗기면 풍비박산 날 귀중품이지 않을까.


취향의 카테고리는 무궁무진하지만 대표적인 세 가지가 옷, 인테리어,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그 세 가지 중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하게 됐다. 의도치 않아 듬성듬성한 간격이지만 몇 주간 해댔으니 다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는 기간이었다. 이 말은 즉 어느센가 음악이란 내게 다시 생각해야 하는 취향이 된 것이다. 잠깐 스치는 가을바람조차 이기지 못해 함께 흐드러지는 연약한 감정을 가졌던 어린 시절의 나는 음악이 아주 중요한 사람이었다. 눈을 뜨고 감을 때까지 모든 순간 의존할 만큼 취향의 음악을 쏙쏙 골라 들어댔다. 유튜브가 활성화되지 않았던 시절이라 블로그와 각종 사이트를 통해 마음에 드는 곡을 찾는 데도 많은 시간을 들였다. 그리고 지금은 잘 모르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음악에 관한 내 취향을.


“좋아하는 가수는 누구예요?”


너무 간단한 질문임에도 답답하도록 말문이 막혔다. 빨간 히비스커스차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뇌를 움직이려 하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한 대답이 ‘잘 모르겠어요. 요즘엔 없는 것 같아요.’ 였다. 여전히 시선은 차만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다. 왜일까. 시선조차 옮길 수 없던 멍한 기운의 이유는. 3분도 안 되는 그 찰나의 순간이 집에 가는 내내 마음 한 켠에 자리잡혀 떠나질 않았다. 분명 차 한잔과 함께 꿀꺽 넘겨버리면 되는 일인데 넘어가지 않는 게 이상했다.


어느 날의 누군가는 처음 보는 팝송 이미지와 함께 그 노래를 좋아하게 된 이유를 보내줬다. 메신저일 뿐일 네모난 말 주머니들이 그렇게 단단해 보일 수 없었다. 차에 눈을 뗄 수 없던 그때의 기운이 다시 도는 듯했다. 나 또한 이유 있는 노래들이 많았기에 서사까지 쌓아둔 취향을 잊었다는 것이 적지 않은 충격으로 다가온 것이 틀림 없었다. 이젠 음악에 의지할 필요가 없어서, 너무 쏟아냈기에 감정 동요 없는 무던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이유는 그저 현실적인 사람이 되고자 한 거였는데. 같은 이유로 슬픈 가사를 가진 노래는 멀리했다. 조금만 감정이 흔들려도 노래를 껐다. 들어도 무덤덤한 노래만 찾아 틀었다. 그렇게 일관적인 감정에 안심하며 살고 있었다. 하지만 이게 정말 나다운 것일까.


그날 이후로 차근히 과거의 노래를 꺼내고 있다. 어느 시절에 어떤 감정을 가졌을 때 무슨 노래를 들었는지 지긋이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의 나를 표현하는 새로운 취향의 노래도 함께 담는다. 그 차이에서 오는 변화를 느끼려 하지만 어쩐지 달라지지 않았다. 취향이란 이토록 고유한 것이다. 서른 중반, 너무 잊어서 잃어버릴뻔한 취향을 다시 찾았다. 그건 한 편의 나를 다시 되찾은 것이다. 그렇게 또 다른 이치를 깨달으며 꽤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행복하기에 작고 사소해서 자주 잊어버릴 수 있는 취향을 귀하게 여겨야 함을 자주 상기한다.


나스럽게 살고싶은 당신이 이 순간부터 좋고 싫음의 기준을 세우고 취향을 만들어 간다면 기꺼운 행복을 느낄 것이다. 여러 곳에 뻗쳐있는 나를 모아 단단히 사는것이 얼마나 개운한 행복감을 주는지 느낄 수 있는 첫 시작이니 말이다. 그러니 잊지말자. 당신의 한 파편을, 찾기와 되찾기의 방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