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시간부터 창문이 하얗다. 존재감 강해진 해의 빛이 유리를 통과해 눈까지 닿는다. 알람이 울리기까지 2시간이나 남았다. 일부러 쳐둔 침대 옆 블라인드가 오늘도 몫을 해냈구나 생각한다. 이 모든 것은 다가오는 계절을 온몸으로 맞이하는 나만의 행위다. 그렇다, 여름이 시작되고 있다.
위의 거창한 표현으로 알 수 있듯이 나는 여름을 사랑한다. 쨍쨍한 활기를 돋아주는 햇빛, 겹쳐 입지 않아도 되는 가벼운 옷차림, 파릇한 식물에 얹혀진 청량한 분위기와 질 줄 모르는 해. 새, 매미, 구름과 하늘 그 아래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늘어진 우리. 참으로 평화로운 계절이 아닐 수 없으나 어느 부분은 굉장히 왜곡스럽기도 하다. 왜곡으로 남겨진 착각. 그 오해 덕분에 나는 여름을 참 좋아한다.
개인주의라 주장하는 이기주의를 따르고 오지랖은 여전하면서 정은 없어진 시대. 대 혐오의 세상이라 불리는 지금을 버틸 방법은 왜곡이라 생각한다. 끈적하게 덥고 숨 막히게 습한 여름을 반짝이는 햇빛에 덮여진 쾌적 발랄한 풍경으로 왜곡해 기억하듯 말이다. 때문에 난 매해의 여름이 좋았다고 착각하고 산다. 오롯이 반짝이던 풍경만 기억에 남아서. 긍정보다 부정에 더 민감한 것은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다만 대 혐오의 기운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잡아먹고 있는 지금 여름적 왜곡이 참 절실한 것 같다. 날씨 하나로 너그러워지는 마법, 서로를 예쁘게 바라보게 하는 왜곡적인 여름 필터.
나도 참 부정적인 인간이었다. 여름이 좋니 뭐니 하는 사사로운 곳에 신경 쓸 여유도 없었다. 출근도 싫고 나가도 싫고 집에 있어도 싫고 누굴 만나도 싫고 혼자 있어도 싫고 그냥 다 싫었다. 사사건건 마음에 드는 게 없다며 트집을 잡았던 것 같기도 하다. 여유와 함께 나만의 호불호를 명확히 하게 된 지금, 그때의 내가 불만투성이였던 건 지내던 환경이 나와 맞지 않아서라는 결론을 내렸다. 어린 내가 반성해야 할 건 너무나 많지만 특히 두 가지를 짚어 혼내고 싶다. 첫 번째. 왜 불만스러운 감정이 생기는지 이유를 알려고 하지 않은 것. 두 번째. 가진 모든 불만을 입 밖으로 내 경솔하게 행동했던 것.
내 감정 하나 다룰 줄 모르던 사람이 계절 따라 풍기는 감정을 글로 엮게 되기까지 10년이 걸렸다. 어린 나는 왜 진작 노력하지 않았을까 자주 후회했다. 잦은 후회는 나를 갉아먹는 부정적 행위다. 알면서도 계속 자책했다. 더 노력할걸. 더 빨리 알아차릴걸. 하지만 마법처럼 여름만 되면 너그러워졌다. 사소한 것에 행복을 느끼는 이유는 어리석었던 경험 덕분이라며 긍정적으로 왜곡시켰다. 나답게 살게 되면 여유가 생긴다. 그래서 나를 더 잘 알아가자는 마음도 함께 먹었다. 다 활기찬 햇빛과 가벼운 옷차림과 파릇한 식물과 청량한 분위기 덕분이었다.
내가 싫고 타인이 밉다면 예쁘게 볼 수 있는 법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모두를 포용할 만큼 성인군자가 되라는 말은 아니다. 몰아닥치는 부정을 쳐내어 잠깐이라도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감정의 원인을 알면 타당한지 아닌지 알 수 있으니까. 여름엔 나는 유독 긍정적인 사람이 된다. 이른 아침에 쏟아지는 햇빛을 온몸으로 맞으며 너그럽게 일어난다. 타인이 아닌 내가 좋아서 하는 행위다. 나는 당신이 스스로를 위했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마지막까지 권하려 한다. 왜곡적 여름 필터 같은 무언가를 찾아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