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릴 것이 없는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일이 커지는 게 싫어 미뤄둔 유통기한 지난 양념들이 떠올랐다. 마침이다 싶어 몸을 움직이기로 했다.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기 때문이다.
여러 일을 겪은 후 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몇 개 찾아두었다. 그중 하나는 청소였다. 치울게 없으면 옷장을 몇 번이고 뒤집어엎었다. 쓸고 닦고 버릴 것을 찾아 좁은 집안 곳곳을 헤맸다. 대신 복잡하게 굴어줄 테니 너는 진정하라는 몸의 신호에 마음은 안정을 찾는다. 이럴 때마다 몸과 마음은 이어져 있다는 말을 실감한다.
생각해 보면 별일은 아니었다. 드물게 있는 자기주장 강한 고객을 만났고 그냥 넘기면 될 말들을 넘기지 못했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요구했고 하지 못한다하니 따지듯 말했다.) 웬만하면 손해 보더라도 좋게 끝내자는 편인데 그날따라 유달스레 화가 났다. 장문으로 받아치며 너무 속상하다는 말까지 남긴 건 처음일 정도로. 같이 따져대는 내 말에 상대가 인정하며 마무리됐지만 여전히 감정은 상해있었다. 불쑥 올라온 서러움의 이유는 분명 있을 것인데 무엇 때문인지는 지금도 모른다. 사람이 감정을 평생 다스릴 수 없는 이유는 때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지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그날의 컨디션이라든지 화가 쌓인 정도 라든지 호르몬 이슈라든지…
특히나 나는 감정의 이유를 늦게 알아차리는 편이다. 참으로 까다로운 아이가 아닐 수 없다고 자주 생각한다. 예민해서 감정이 빠르게 느껴지지만 머리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았다. 어릴 땐 이유도 모르고 쓸데없이 감정에 충실했다. 충실도 때를 봐가며 해야 한다는 것을 안 이후부터는 감정의 동요가 일면 원인부터 찾는 게 버릇이 되었다. 뇌를 두 개로 분리해둔 느낌. 해야 할 것은 하되 원인을 찾을 때까지 다른 뇌는 잔잔히 돌아가있는 정신없는 강박 상태.
잔잔히 찾을 수 없을 지경일 때는 몸을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안다. 서른 넘어 알게 된 스스로의 기분 처방법인데 내가 나를 다스릴 줄 안다는 것이 자존감을 올려준다. 주방 찬장을 열어 양념들의 유통기한을 확인한다. 1년이나 지난 것부터 한 달 전 것까지, 살릴 수 있는 건 다이소에서 산 참기름과 쿠팡에서 주문한 알룰로스뿐이었지만 속이 시원했다. 겨우 두 개 남아 텅 비어버린 찬장이 보기 좋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용감하게 물건을 버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옷장과 캐비넷 속, 혹시나 해서 남겨둔 모든 것들을 탈탈 털어 댔다. 집은 비어가고 쓰레기봉투는 차올랐다. 차오른 쓰레기봉투를 얼른 내놓고 싶었다. 그래야 비로소 비워지는 기분일 것 같아서였다. 청소도 중독이라던데 비워지고 채워지는 모양새가 마음에 들었다. 나름의 희열에 빠진 덕에 두개로 나눠진 뇌는 제대로 일을 하지 못했다. 감정의 이유는 미궁에 빠졌지만 기분은 시원했다. 그 감정은 영원히 미궁에 빠져도 상관없겠다 싶었다. 강박에 벗어난 뇌가 이유도 모른채 다시 하나가 된 것은 처음이었다.
어른스러운 사람이 되려면 스스로의 감정을 다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강박을 만들었고 매번 이유를 찾기 위해 잦은 시간을 헤맸다. 과연 그것들은 아까운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해야 할 만큼 중요한 것들뿐이었을까? 충실도 때를 봐가며 해야 한다. 이미 아는 줄 알았던 충실의 또 다른 때를 발견했다. 감정의 이유를 꼭 찾아야 할 때, 그때가 아니라면 모른 채로 넘어가도 된다는 것. 사람이 감정을 평생 다스릴 수 없는 이유는 사람을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항상 깨달을 것 밖에 없는 사람의 평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