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정한 옷차림에 짧은 단발을 한 여자가 급한 걸음으로 마감 30분 전인 카페로 향한다. 제발, 하며 멀리서부터 흐린 유리창에 시선을 고정한 채 불편한 구두를 끈다. 빈 카페에 익숙한 뒤통수 하나가 보인다. 타고나길 반짝이는 눈이 더 반짝거리며 안도한다. 카페 문을 열고 하나 있는 사람 앞에 의자를 끌어 털썩 앉는다. 휴대폰이 꺼졌어, 가버렸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네 뒷모습이 보여서 다행이었어. 사실 그 말도 채 못 끝낸 여자는 짧은 단발을 숙여 긴 머리처럼 거짓을 만든다. 얼굴이 반쯤 가려지니 한 손으로 이마를 짚어 그 반을 또 가린다. 숨을 고르는 척 다른 거짓을 하나 더 만든 여자의 테이블에는 까만 물 자국이 생긴다. 뚝 떨어지는 몇 방울의 눈물, 맞는데 아닌 것처럼 보이고 싶은 거짓의 아우라.
맞은편, 기다리던 여자는 보던 책을 다시 열어 페이지를 넘긴다. 다리를 꼬더니 몸을 창 쪽으로 틀어 옆으로 기댄다. 나 아직 책을 덜 읽어서, 책 좀 더 볼게. 거짓의 아우라에 또 다른 거짓의 아우라를 추가한다. 거짓과 거짓이 만나 정체불명의 무엇이 된다. 알 수 없는 비밀의 무엇은 가끔 서로를 위해주기도 한다. 침묵이 평화를 가져다줄 때도 있는 것처럼.
기다리던 여자는 자신의 주위에 이만큼이나 반짝이는 눈을 가진 사람은 단발의 여자가 유일하다고 생각한다. 떨어지는 눈물을 거꾸로 따라 올라가니 검은자의 빛이 더 찰랑이는 것 같다. 맑은 눈은 울어도 맑구나, 이렇게 예쁘니 슬픈 줄도 모르고 계속 펑펑 이는 걸까. 그들만의 축제처럼, 폭죽이 터지듯, 주체 없고 한없이. 단발의 여자는 책을 보는 여자에게 말을 걸더니 길쭉한 입고리를 쭉 올려 웃는다. 사는 게 쉽지 않다 했던가, 말은 슬픈데 입은 웃고 눈은 반짝인다. 쉽지 않음이 담긴 아이러니한 행동이었다. 결국 그 잠깐은 끝까지 거짓으로 남았다.
여자는 가진 눈만큼 세상과 사람을 예쁘게 볼 줄 알았다. 그래서 잦은 혼돈을 겪던 예전의 여자애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 줬다. 혼란스러워 보이는 말과 행동을 다그치지 않고 기다려줬다. 일방적인 가르침 대신 장점을 찾아 말해주고 뜬금없이 반가운 연락을 보냈다. 그것들은 너는 잘 클 것임을 믿는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혼란스러우면서 멀쩡한 척, 내 잘못이면서 아닌 척,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으면서 일부로 그런 척, 겁나면서 아닌 척, 어떤 척으로든 거짓을 아우라로 감추려 애쓰면 단발의 여자는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 줬다. 그렇게 우정을 쌓고 보니 어린애는 믿어주는 만큼의 어른이 되었다.
보이는 아우라를 덮는 법과 기다려주는 법을 배운 여자는 마감이 다 되어가는 카페에서 느긋이 책을 읽었다. 테이블을 까맣게 물들이는 상대를 위해 덮었던 책을 다시 피기도 했다. 단발의 여자는 요즘 세상과 사람이 예쁘게 보이지 않음에 슬퍼한다. 여전히 반짝이는 눈으로 그렇게 이야기 한다. 기다리던 여자는 그 눈을 마주치며 생각한다. 이제 당신에게 잘 배웠음을 보여줄 차례구나.
사람은 사람 때문에 힘들지만 사람으로 구원받는다. 혼란함 속에서도 올곧게 잘 살아갈 것이라 믿어주는 한 사람만 있어도 힘듦을 이겨낼 용기를 얻는다. 둘은 여전히 세상이 싫어질 때마다 서로에게 전화를 건다. 부정적 감정을 토해내며 투정을 부리면 그렇구나 하고 받아준다. 서로가 잘 살 것을 믿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우정이다. 거짓의 아우라가 판을 치면 기꺼이 같이 판치거나 더 쳐줄 수 있는 든든한 관계. 잘 배운 사람에게 잘 배운 우정, 그건 내가 사랑하는 이들 옆에 있어줄 영원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