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 나는 삶을 살고 있다면, 높은 확률로 좋아하는 것이 많은 사람일 테다. 감정을 누리기 위해 매일을 즐기게 된다는 것은 ‘무엇’ 때문이 아닌 ‘어떻게’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하는 것으로, 참 멋있는 태도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편한 옷가지 몇 벌과 책 두 권, 노트북을 챙겨 윗 지방에 올라와 지낸 지 며칠이 지났다. 기꺼이 장기 투숙을 반겨준 연은 새벽부터 떡과 커피를 챙겨주며 아침을 고민하고, 점심과 저녁 메뉴를 정하면서 간식과 야식을 묻는다.
“제발 그만 물어봐, 나 안 굶고 다녀.”
“안돼, 내 집에 온 순간부터 배고픔을 느낀다?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갓 지은 따끈한 밥을 담고 작은 그릇에 반찬을 담아 정갈하게 식탁을 채운 연은 매끼를 정성스럽게 차려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잔뜩 꺼내진 그릇들을 보며 설거지가 귀찮지 않냐고 묻는 나에게 연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답한다. 설거지가 귀찮아? 난 너무 재밌는데! 연과 나는 오랜 친구로 18년이라는 시간 동안 탈 없이 잘 지내고 있다. 책이라는 같은 취미로 더 잦은 교류를 나눈 우리는 한 사람이 책을 꺼내면 옆에 앉아 함께 읽었다. 비슷한 감성의 역치를 가진 둘은 좋은 문장을 발견하면 호들갑을 떨며 공유한다. 이번엔 내가 먼저였다.
“야, 세상에 천재는 너무 많은 것 같아. 읽어줄 게 들어봐봐. ‘위로를하려면 그들이 무엇을 견디고 있는지 알아야 하고, 응원하기 위해선 그들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하던 연은 맞는 것 같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 끄덕임이 공감이라는 감정을 부추겨 신난 내가 문장 하나를 더 읊는다.
“또 있어! 자동차가 아이보다 더 많이 태어나는 사회래.”
“와…뭐지? 그 책 나도 살래!”
살 책이 많은데 하나 더 늘었다며 툴툴대는 척하던 연은 웃으며 표지를 찍는다. 함께 노는 게 재밌다고 같이 살자는 농담도 한다. 그건 서로에게 좋지 않으니 옆집에 살자고 맞장구치는 내 대답에 또 한 번 웃는다. 사실 나는 연이 웃지 않을까봐 이곳에 왔다. 누구보다 강한 책임감으로 부지런히 사는 애다. 세상은 그 애에게 얼마나 대단한 보상을 해줄 생각인지 호락스럽지 않은 일들을 자꾸만 만들어 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은 계속 웃었다.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내어 삶은 즐거운 것이라는 걸 잊지 않으려 노력했다.
“힘들어해 봤자 뭐해. 해결도 안 되는 거 좋아하는 거 하면서 생각 안 하는 게 낫지!“
한 번은 연이 씻는 사이 집주인 딸이 와서 가장 맛있을 때라며 김치를 주고 갔다. 씻고 나온 연에게 말하니 이번에 시킨 쑥떡이 맛있길래 드렸더니 주셨나보다 하며 웃었다. 그 웃음을 보던 나는 얜 정말 뭘까, 생각했다. 위로라기 보단 어떤 상황이든 함께하는 이가 있음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 왔다. 그런데 연은 본인이 사는 법은 물론 함께 사는 법까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애였다. 며칠을 함께하며 든든해진 건 오히려 나였다. 고맙고, 대단하고, 미안했다.
내가 남자였잖아? 너한테 반했어. 내 말에 깔깔거리던 연은 친구를 위해 또다시 밥을 한다. 도와주겠다는 내게 자신의 주방은 건들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으며 정갈한 밥상을 차린다. 특별 레시피라 진짜 맛있을 거라고 호언장담하는 말에 기막힌 리액션으로 답하며 생각한다. 오늘 연은 몇 번이나 웃었더라, 내가 더 많이 웃었던 것 같은데. 어쨌거나 우린 또 오늘을 누렸네,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