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요구하지 않은 무엇을 당신도 책임지려 하나요.

by 김현아


일곱 살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나를 보더니 엄마라 불렀다. 낯선 몸짓과 어색한 표정과 애착 없는 목소리로 자신에게 하나뿐일 엄마를 그렇게 불렀다. 아이는 지금껏 클 동안 내가 자신을 방치했다고 했다. 숨을 곳이 없어 작은 몸을 구부린 아이를 보니 마음이 무너질 듯했다. 가슴속에서 올라온 무언가에 스스로를 원망했다. 정신없이 머리를 굴려 아이의 상처를 매워 줄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꿈속에서였다.


눈을 번쩍 떴던 것 같다. 원망을 할 줄 몰라 낯설어만 하던 아이의 표정과 지난날의 방치를 후회하고 보살피려 애쓰던 마지막 감정이 아침 내내 몸속을 돌았다. 몇 주가 지난 지금까지도 그 감각이 떠오를 만큼 여운이 큰 그 꿈은 아마 내 부담감이 만들어낸 심리적 개꿈이었을 것이다.


아무도 책임지라 강요한 적 없는 것들을 굳이 버거워 하는 편이다. 쓸데없는 영웅심리인지 착한아이 콤플렉스인지 그냥 정이 많은 건지 나에게 온 사람과 식물과 동물에게 대충 대하지 못해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내가 쓸 수 있는 에너지의 양을 몰랐던 터라 그 이상을 자주 써버리니 금방 지치는 것은 당연했다. 나 하나도 버거워 하는 사람이 또 다른 다수를 지키려 하면 심리적 부담감은 몇 배가 된다. 그렇게 고립을 바래 도망치기를 반복했고 소중했던 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나서야 적당히 노력하며 살게 됐다. 힘 빼면서 사는 게 중요해진 이유 중 하나다.


방법은 알아도 태생의 성격은 어쩌지 못한다. 원하지 않아도 종종 울컥하고 올라온다. 그 꿈을 꿨던 시기에는 프리랜서로 평생을 살 방법에 대해 자주 고민했는데 그 생각이 길어지다 건드려진 걱정거리가 문제였던 것 같다. 지금처럼 느슨하게 주위를 잘 챙기며 살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서는 내 여유가 사라지지 않을 만큼 잘 되어야 하니까. 더 잘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하니 책임감 버튼이 눌러진 것이었을 테다.


생각해보면, 꿈에서 내가 엄마가 된 것은 아무도 요구하지도 바라지도 않은 것들에 대한, 마음 가는 사람들에게 더 잘해주고자 하는 책임감이 부모로서의 애정과 흡사하다는 건가 싶기도 하다.


꿈속 아이의 꼬깃거리던 몸짓이 생각난다. 왜 몸을 구부리는 법부터 알게 만들었을까, 그것도 엄마라는 내 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