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묵혀놓기 아까워서 올리는 글
시대를 보고 듣고 읽고 경험한 이들이 모여 또 한 시대를 만들어 내고 있다.
과거의 시대를 쉽게 접할 수 있는 현시대는 진귀하거나 고약한 일마저 쉽게 세상에 내놓았고 우리는 정보의 피로를 이고 지며 산다. 이제 내 손가락은 SNS 앱 위치를 기억하는 것 같다. 설정해 놓은 세팅 값 마냥 폰을 켜는 순간 당연하게 누르는데 나는 또 익숙하게 돋보기 속 세상을 살펴본다. 하루 동안 사소하거나 엄청난 논란들이 차가운 네모난 창 안에서 떠돌아다닌다. 일반인부터 유명인, 연예인, 정치인까지 얼굴만 알거나 얼굴조차 몰랐던 타인의 삶이 눈으로 들어와 입 밖으로 뜨겁게 내어진다.
“그거 봤어? 누가 이랬고 저래서 그렇게 됐대.”
내어진 말은 듣는 사람의 귀로 들어가 또 다른 타인의 체력을 침범하고
“와, 진짜 이해 안 되네. 왜 그런 거래?”
굳이 품지 않아도 될 감정까지 품게 해 노동보다 더 피로한 상태를 만들어 내고 만다. 나와 상관없이 소모 될 일에 열을 내는 것이 언제부터 일상처럼 되었을까. 어쩌면 우리는 너무 멀리 있는 것들을 불필요하게 사랑하고 당연하게 미워하는 걸지도 모른다.
이 글을 적기 시작한 날 누군가와 대화를 나눴다. 시대의 피로를 어떻게 이겨낼 수 있는지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불가피하다는 게 결론이었다. 심심함을 달래기 위한 거짓 관심은 일상이 되었으며 이미 우리의 여기저기에는 정보가 흐르고 있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니까 피할 수 없으면 피로를 푸는 데에 집중하는 것이 더 중요할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기려 하지 말고 정보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라는 뜻이었다.
차갑고 뜨겁게 오가던 소식은 금방 미지근해진다. 요즘 시대의 온도가 그렇다. 끓고 식음을 반복하는 소란함 안에서 우리는 미지근하게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누군가의 불행에 열광하지 않고 누군가의 비난에 깊이 침잠되지 않도록 내 삶에 좀 더 집중하는 법 같은거. 예를 들면 오늘 먹을 저녁의 메뉴를 신중히 고르거나 내일 입을 옷을 단정히 준비해 두는 것처럼 아주 작고 구체적인 일상을 챙겨보는건 어떨까. 뜨겁게 달궈진 타인의 이야기에 시간을 내기보다 직접 만든 따뜻한 밥 한끼에 집중하는 것이 더 괜찮은 선택일지도 모른다.
피로가 이 시대의 기본값이라면 나는 적극적으로 밍밍해지는 쪽을 택하려 한다.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방법일거라 믿으면서 말이다.
미지근한 평온.
건조한 관심.
싱거운 연대.
무심한 존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