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2월 출간된 5ft.mag 2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멍청한 생각이 반복될 때 영화 같은 삶을 상상한다.
생각을 생각에 묻어버리거나 생각 속에 희석시켜 흐지부지해버리기 위함인데 그 방법은 다양하다. 첫 번째, 좋아하는 장면을 곱씹으며 초마다의 분위기에 이입하며 만끽한다. 한 사람의 표정, 몸짓, 대사, 그리고 배경, 색감, 음악 모든 것은 맴도는 공기가 되어 근처에 무겁게 자리하는데 잠깐 도피하고 싶은 지금을 막아주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두 번째, 동경하는 대상의 영화 같은 삶을 생각한다. 영화 같은 인생이 없다는 걸 알지만 영화 같아 보이는 인생은 존재한다. 동경하는 대상의 글을 읽거나 영상을 보며 부러움을 동력으로 행복회로를 돌리고 다시 열심히 살 힘을 얻는다. 지난 날 누군가가 너는 왜 그렇게 남을 부러워 하냐고 물었다. 나에게 부러움이란 질투같은 부정 의식이 아니라 진심의 감탄으로 동력을 얻는 방법이었는데 말이다. 열심히 살기 위한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당황스러움과 설명하고 싶지 않은 기분이 섞어 아무말도 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반복을 요하는 일을 할땐 음성만 들어도 되는 영상을 틀어 놓는 편이다. 토크쇼나 인터뷰 같은 것들인데 최근 개봉한 ‘어쩔 수가없다’ 감독의 이야기를 듣게 됐다. 박찬욱 감독은 영화가 마음에 들게 나왔냐는 질문에 회피하듯 웃기만 하다가 심심하게 대답했다.
‘제가 만든 영화 중에 제일 웃기는 영화 같아요.’
웃기다는 말에 꽂혔다. 지금 필요한 영화라는 생각에서였다. 인터뷰도 듣다 말다 해서 제대로 된 줄거리도 모른 채 덧붙인 말 없는 그 한 문장이 좋아 바로 예매했다. 하던 일도 멈추고 무작정 보게 된 ‘어쩔수가없다’는 기대 이상이었다. 안정적인 직업과 멋진 집, 사랑하는 가족과 사랑스러운 강아지. 다 이루었다고 생각한 한 가장이 갑작스럽게 실직자가 되면서 다시 취업하기 위해 무모한 일을 벌이는 이야기로 그의 과장된 행동은 ‘살인’이었다.
몰입도를 높이는 사운드와 유쾌한 연출로 가볍게만 보고 나왔던 나는 후에 나눈 지인과의 대화에서 고찰할 수 있는 주제를 얻게 됐다. 지인의 주변 반응은 반으로 나뉘는데 재밌어하는 사람의 MBTI는 F고 재미없다 한 사람은 T라는 거였다. T의 입장에서는 영화적 허용을 떠나 취업을 위해 죄 없는 사람을 죽이는게 이해되지 않는 포인트였을 것이다. ‘어쩔수가없다’는 완벽한 자기방어를 보여주는 예로 주인공은 살인을 하든 하지 않든 불행이라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게 되고 결국 윤리적이지 못한 방법으로 아끼는 것을 지키는 것으로 끝난다.
우리는 흔히 ‘열심히 사는 사람’을 좋게 보거나 잘 사는 방법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다. 열심히 살기 위한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합리화와 자기방어를 위한 정당화는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만약 내 힘듦을 극복하기 위해 타인에게 정신적 피해와 물리적 손해를 끼쳤다면, 그런데 그 타인이 평소 또 다른 타인에게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면. 어쨌거나 그건 도덕적이지 않으며 결국 열심히만 산다고 되는 게 아니라 방향을 잘 잡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아! 멍청한 생각도 방향을 잘 잡으면 되는 것 같다. 더 쓸데없는 생각으로 희석해버리면 되니까. 멍청한 생각이 반복될 때 흐지부지 시켜버릴 세 번째 방법을 찾았다. 나와 동떨어진 현실성 없는 영화 이야기에서 주제를 찾고 고찰하는 것.
시간 참 잘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