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ft.mag 2호 게제 글 입니다.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냐면
이라는 말을 시작으로 방방거리며 명대사 같은 것들을 왕왕 쏟아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한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일이 바빠졌기 때문이 가장 큰 이유였지만 작은 이유도 꼽자면 몇 년 만에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서기도 했다. 머릿속에 있는 걸 적어야 하는데 그 애가 했던 말과 행동과 함께 보냈던 시간들이 생각나서 사랑 넘치는 글만 나올 것 같았다. 세상은 내 사랑에 관심이 없고 둘의 이야기는 둘만 재밌을 거니까 적는 걸 멈췄다. 꾸준히 들어오는 일에 감사하며 일에 집중했고 짬을 내어 그 애를 만났다. 잔잔하던 일상에 한 사람이 들어오니 생기가 돌았는데 자극적이지는 않았다. 내가 그 애를 좋아하게 된 이유 중 하나였다.
이십 대 때는 영화 같은 사랑을 바랐다. 나 하나만 보는 왕자님에게 누구보다 가장 큰 사랑을 받으며 둘 사이에는 흠 없는 완벽한 추억만 있었으면 했다. 영화 같은 사랑은 보여주기식이라는 걸 알면서 나는 그런 연애를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사랑에 빠져 별도 달도 따다 주며 비위를 맞춰주던 남자들과는 넘치던 도파민이 줄어들면서 이별이라는 수순을 밟았다. 아주 자연스러운 반복이었으며 현실의 연애를 받아들이게 되는 다행스런 계기였다.
그 애는 왕자님도 영화 속 남자 주인공도 아니지만 편안했다. 그냥 나답게 만났고 그 애 답게 받아줬다. 꾸밈도 감추는 것도 없이 자신의 것을 드러내는 그 애의 성격은 나를 이성적인 사람으로 유지시키는데 한몫했지만 결국엔 그 한결같음에 안정을 느껴 감정적인 관계가 되었다. 느지막한 두 달이 흐른 후였다.
나는 재미없는 영화를 좋아한다. 그러니까 큰 굴곡도 사건도 없는 잔잔한 일상물 같은 것들. 결핍과 감정에 휩쓸린 어린 나날을 보내다 30대가 돼서야 좋아하는 영화처럼 살게 되었다. 똑같지는 않지만 흡사하게, 잔잔히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략 아는 정도지만 원하는 삶에 가까워진 게 어딘가. 그 애는 나를 흐트러뜨리지 않을 것만 같았다. 떠오르지도 잠기지도 않게 그 자리 그대로 있는 나로 유지시켜 줄 것 같은 애.
우리는 영화 속 주인공이 아니고 그냥 살아가는 사람인지라 당연히 서로에게 기대하고 기대한 만큼 속상해하다 금방 풀며 사랑하고 있다.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왕왕거리고 싶을 때 슬퍼지는 건 나만 아는 비밀이며 혹시나 일어날 이별을 감당하는 것이 무서워 슬퍼할 수 있을 만큼만 표현한다. 그건 일반적인 30대의 사랑이자 내가 좋아하는 영화처럼 살기 위해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다. 소중한 이들과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나를 먼저 지키는 일.
쏟아내지 않는 만큼 차근히 모아진 마음으로 내가 줄 수 있는 선에서 충만히 그 애를 좋아하고 있다. 그러니까 가끔 방방거리고 이해할 수 없이 축축 처지는 내 용기를 알아주기를. 일상물 같길 바라는 많은 30대의 연애들에 별일이 생기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