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의 실패
#1
*"치료는 엄마나 받으라고 했을 때"
재수 끝에 커뮤니케이션학을 전공하고,
광고회사에서 13년을, 대기업에서 4년을 보냈다.
까다롭다고 소문난 클라이언트를 설득하는 것보다
아들과 대화하고 설득하는 게 어려웠다.
보고를 하거나 신제품을 출시하거나,
한 번 안 되어도 다음에는 되곤 했지만
아들과의 대화는 좌절의 연속이었다.
## 프로의 자존심
틈을 내어 짬짬이 읽은 육아서만 수십 권,
들은 강의도 넘쳐났지만 작심삼일이었다.
아들의 칼 같은 반응과 냉소적인 화법은 늘 예상을 넘어섰다.
"사춘기 뇌는 적군과 아군만 있다네..너한테 엄마는 누굴까?"
"그걸 몰라서 물어!?"
초등학교 6학년 아들에게 이미 엄마는 적군이었다.
어렵게 휴가를 내서 떠난 여행길에 들은 말이 있다.
"엄마는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어설픈데,
어떻게 회사 임원인지 이해가 안 돼.
내가 받을 운을 엄마가 다 가져간 거 같애."
회사에서는 '커뮤니케이션의 달인'이라 불렸던 내가
정작 가장 중요한 아들과 소통이 되지 않았다.
## 마지막 카드
심리상담 전문가와 병원 치료에 기대고 싶었지만,
치료는 엄마나 받으라는 말에 결국 아들 없이
남편과 내가 먼저 상담을 시작했다.
골절 사고와 디스크가 겹쳐 병가를 내면서
꼼짝없이 아들과 지내며 '아들살이'가 시작되었다.
감당 안 되고 열 받을 때 적던 것이 습관이 되었다.
지금은 끝이 안 보이지만,
언젠가 우리가 대화가 통하고
우리 아들이 살아야 할 의욕이 생기면
그땐 이 글들이 누군가의 위로와 버틸 힘이
될 수 있겠다는 소망으로.
## 2021년 8월 10일
무리를 했다.
수술한 지 1년밖에 안 됐는데 옆에 있던 근종이 6cm로 커졌다.
두 달 전 검사보다 2배로 커졌다.
부정출혈까지 겹쳐 또 수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꺼번에 닥친다더니 오른손목이 아파 병원을 다녔는데, 어깨와 목까지 저리고 잠자기도 어려워졌다. 목디스크라고 했다. 일자목에 긴장 상태가 계속되니 여기저기 경보음이 켜져서 결국 2달 병가를 냈다.
그 와중에 발목 골절까지 겹쳐 집에서 꼼짝달싹 못하게 되었다.
## 8월 14일, 오징어불고기와 눈물
몸은 여기저기 불편했지만, 전국 각지 유명 맛집 대표 메뉴를 시켜가며 아들한테 뭔가 해주고 싶었다.
사막 같은 내 눈에 눈물이 난 건 20년 전 추억을 떠올리며 시킨 오징어불고기 날이었다.
그날도 아들은 오후 4시가 되어 부스스 일어났다.
"오징어불고기 해줄까?" 하고 깁스를 끌고 후라이팬을 잡았다.
오징어 튀김에 불고기볶음에 손이 바쁘다
식탁에서 핸드폰 보는 아이에게 숟가락만 놓으라 했다.
"숟가락 엄마 바로 뒤에 있잖아"
"엄마가 발이 아파서 그래"
"아니 뒤돌면 숟가락 통인데 발 아프다는 게 말이 돼?"
부아가 치밀고 속이 뒤틀렸다.
"엄마도 나름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너무 하다."
"나름 열심히 하는 거지 최선을 다하는 건 아니잖아!"
자식한테 이런 훈계까지 듣는 상황이 어처구니없어
눈물이 핑 돌았다.
자기는 게임하다 밤새놓고 누구보고 최선 타령을 하는지 기가 찼다.
## 시멘트처럼 굳은 마음
오징어불고기를 다 만들어 놓고,
아들의 차가운 반응을 보며 깨달았다.
아이의 마음이 시멘트처럼 굳어버렸다는 걸.
"나름 열심히 하는 거지 최선을 다하는 건 아니잖아!"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불현듯 이런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틀린 말도 아니네?
나름 열심히 하는 거지 진짜 내가 최선을 다하는 건 아니잖아.'
정말로 나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회사 일에는 밤을 새워가며 매달렸지만, 아이에게는 늘 '나름'이었다.
이제 2달간의 병가가 시작되었다.
꼼짝없이 매일 얼굴을 마주해야 하는 시간들.
시멘트처럼 굳은 아이의 마음을 어떻게 녹일 수 있을까?
17년간의 커뮤니케이션 스킬도,
수십 권의 육아서도, 심리상담도 통하지 않는 이 작은 인간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아마도 이번에는 정말로 '최선'을 다해야 할 것 같다.
나름이 아닌, 진짜 최선을.
다음 이야기: "얼마나 기다렸다고!"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 완벽하지 않은 엄마의 진솔한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 시리즈 소개
**"사춘기 아들과 나"**는 아들을 바꾸려다 엄마가 바뀐 이야기입니다. 통제에서 신뢰로, 조급함에서 기다림으로의 여정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사춘기아들과나 #완벽하지않은엄마 #커뮤니케이션 #육아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