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억이면 감옥가도 돼"
남편 고교동창이 뉴스에 오르내린다. 1000억을 들고 미국으로 가족과 도망갔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세간에 뉴스가 화제가 되며 남편의 직장 동료가 1000억 생기면 자기가 감옥가도 될지 부인한테 물었고, 부인은 1000억이라면 괜찮다 했다 한다.
갑자기 궁금해서 아들에게 물었다.
"너는 1000억 생기면 아빠 감옥가도 돼?"
"응. 1000억이면 아빠랑 엄마 둘 다 감옥가도 돼. 1000억이랑 복이(강아지)만 있으면 돼."
기대는 안했지만 한치도 망설이지 않는 대답에 너무 당황스러웠다.
"엄마 아빠가 많이 잘못했구나..." 하고 얼버무렸다.
토마스 고든 박사의 책에서 읽은 글이 마음을 때렸다.
'사회 경제적 지위와 무관하게 자기 부모를 부모 자리에서 해고하는 아이들이 늘어난다.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부모를 부모로 생각하지 않고 아예 마음의 연을 끊어버리는 아이들이 있다. 부모를 마음에서 지워버리고 친구들이나 다른 곳에서 정 붙일 가족을 찾으려 한다.'
결혼 당시 군복무 중이던 남편과 18평 월세에서 시작했던 걸 생각해보면, 지금의 사회경제적 지위는 몇십 배에 달할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을 낳고 턱없이 부족했던 엄마 아빠의 자리를 돈이 대체하게 방치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것들
20년 동안 무엇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살았을까. 애들에게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겠다며 새벽같이 출근해서 밤늦게 퇴근했다. 더 좋은 학군에 더 비싼 집으로 이사하고, 더 좋은 학원에 보내고,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려고 했다.
억대 연봉과 강남 아파트를 얻었다. 아이들은 소위 명문 학교에 다니고, 원하는 거는 웬만하면 다 사줄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정작 아이는 1000억만 있으면 부모가 감옥가도 된다고 한다.
결국 돈으로 채울 수 없는 빈자리가 있었던 것이다.
아침에 "잘 갔다 와" 인사하고, 저녁에 "오늘 어땠어?" 물어보고, 힘들 때 "괜찮아, 엄마가 있어" 안아주는 그런 보통의 관심과 정을 놓쳤던 것은 아닐까
회사에서 보고 중이라며 아이 전화를 받지 않았던 날들. 피곤하다며 "좀 조용히 해"라고 했던 저녁들.
성과급 받아서 좋은 책가방 사줬던 건 기억나지만, 아이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 무너지는 안전판
그동안 우리 가족의 안전판은 돈이었다.
아이가 공부를 못해도 "괜찮아, 유학 보내면 돼" 했고, 성적이 안나와도 "비싸도 좋은 학원 보내면 돼" 했다.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돈이었다. 돈만 있으면 어떻게든 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런데 아이의 마음은 돈으로 살 수 없었다. 상처받은 마음, 외로운 마음은 아무리 비싼 걸 사줘도 채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어차피 돈으로 해결하려고 하겠지" 하는 냉소만 키웠다.
# 아직 늦지 않았다는 희망
그래도 아직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았나 보다.
1000억과 복이만 있으면 된다고... 그래도 강아지는 남겨뒀으니까.
아이에게 복이는 무조건적으로 자신을 사랑해주는 존재다. 아침에 일어나면 품에 안기고, 밤늦게 들어와도 마중 나와주고, 기분이 나빠도 곁에 있어준다.
결국 아이가 원한 것도 그런 것이 아닐까. 조건 없는 사랑. 성과나 성적에 상관없이 존재 자체를 인정해주는 마음.
돈으로 대체하려 했던 그 자리를,
이제는 진짜 부모의 마음으로 채워야 할 때인 것 같다.
늦었지만 아직 완전히 늦지 않았다고 믿고 싶다.
20년 동안 반복해온 습관을 바꾸기는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해보려한다.
아이가 나중에 "그래도 엄마 아빠는 진짜 날 사랑했어"라고 느낄 수 있도록.
1000억보다 소중한 부모가 되는 것.
그게 이제 내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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