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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말 Jun 23. 2024

공백의 불안

마주치는 삶의 공백 속으로 숨 참고 러브다이브 #가보자고.

2024.1.25 thu. 내 일기장 지니에게 보내는 편지.


지니. 저번에 소원을 들어달라고 한 말 잊지 않았죠? 농담 아니에요. 난 정말, 진짜, 진지하게, 엄청 간절해요. 자, 지금부터 소원 세 개를 온 정성과 마음을 다 해서 적어 볼게요.


첫 번째, 내가 즐거울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싶어요.


두 번째, 그 직업으로 충분한 성공과 재물, 명예를 갖고 싶어요.(‘충분한’의 기준이 모호한가요? 그렇다면 절대 임의로 소원을 들어주지 말고 세부사항을 내게 확인하도록 하세요. 나는 그에 대해 A4 용지 30장 분량도 써낼 수 있어요.)


세 번째, 나의 직업적 성취가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이루어졌으면 좋겠어요. 당장 내일, 아니 지금 이 순간에요. 물론 조금 억지스럽고, 영 개연성 없는 일이겠지만 뭐. 세상이란 게 원래 그런 거 아니겠어요? 대충 눈을 흐리고 못 본 척 넘어가 드릴게요.(제발!)


왜 갑자기 이런 소원을 비냐 하면, 나는 지금의 불안감을 빨리 해소하고 싶거든요. 미래에 대한 불안과, 내 진로에 대한 불안을요. 어떻게 그 감정을 해소해야 하겠냐고요? 음…. 여러 가지 길이 있지만, 결국 생각을 할수록 정답은 하나뿐이네요. 내 불안의 원인을 없애는 거죠. 행동하고, 성과를 보는 거예요.


불안의 대부분은 ‘알지 못하는 것’에서 기인해요. 미래에 대한 무지. 상황에 대한 무지. 존재에 대한 무지….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아는 것’ 사이의 빈칸. 이 ‘공백’들은 모두 ‘불확실’이라는 단어로 바꿀 수도 있겠죠. 우리는 불확실이라는 공백을 메꿔야 해요. 미지를 줄여야 해요. 데이터를 쌓아야 해요.


물론, 나는 항상 느껴요. 말이 쉽지. 공백을 줄인다는 것은 공백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해요. 낯설고 어렵고, 귀찮고 힘들어요. 그래서 사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회피예요. 공백을 외면하고, 거기에 공백이 있다는 사실도 외면하는 거죠. 아니면, 공백을 내 몸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뜨려 놓는 방법도 있어요. ‘훗날, 언젠가, 나중에, 기회가 되면, 자리를 잡으면’ 같은 말을 통해서요.


하지만 그건 결국 해결책이 되지 못해요. 그저 유예 만이 있을 뿐이죠. 왜냐고요? 우리는 공백을 잊지 못하니까요. 공백이 있다는 사실과, 공백이 있는 장소를 잊지 못하니까요.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는 공백은 더 큰 두려움을 만들어요.


나는 온갖 방법과 핑계의 회피를 모조리 해 본 사람이에요. 공백을 처치하는 방법으로서 ‘회피’가 절대로 좋은 결과를 만들지 못한다는 사실은 저 스스로가 가장 잘 알겠네요.


비밀 하나 알려드리자면, 나는 지금도 회피 중이에요. 써야 하는 글이 있지만, 생각만으로도 부담스럽고 머리가 터질 것 같아서 노트북을 여는 것을 미루고 있는 중이죠.


아아. 이제 더 이상 미룰 수가 없겠네요.

진심을 담은 소원도 빌었고 셀프 팩폭과 설득도 했으니 이제 노트북을 열고, 공백 속으로 들어가 볼게요.


내가 노트북 화면 속의 하얀 공백을 채우는 만큼, 내 삶의 공백 또한 부디 채워지기를. 그럼 안녕, 지니.


P.s. 내 소원 잊지 마세요!



——


2024년 초, 지금으로부터 대략 6개월 전에 썼던 일기다.

진심을 담아 빈 소원들을 보니 6개월 전의 나는 꽤나 바라는 게 많았네. 괄호 안에서 간절함과 집념이 느껴진다.(지금은 아니라는 것처럼 쓰고 있지만 사실 저 소원들 지금도 진행 중. 지니 내 소원 언제 들어줄 거예요?)


간절히 빈 세 소원들은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내가 즐거운 일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고, 이 직업으로 충분한 성공, 재물, 명예 못 얻었고, 그동안 직업적 성취는 있었으나 바란 것처럼 하루아침에 이루지는 못했다.


다만, 저 순간의 나보다 ‘공백’이 덜 두려워졌다. 완전 안 무서운 건 아니고, 그냥 조금 덜 무섭다. 6개월의 시간 동안 내가 조금씩 공백을 메꾸어갔기 때문에. 공백을 외면하지 않았고, 공백을 생각했고, 공백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내가 두려워했던 공백의 크기가 줄었다. 여전히 공백은 남았지만, 그래도 이제는 그 구멍의 깊이를 알 것 같은 기분. 전처럼 완전한 ‘미지’로 보이지는 않는다는 말.


앞으로도 내가 채워야 할 수많은 공백을 발견하게 되겠지. 나를 두렵게 만들고 외면하고 싶은 삶의 미지를. 그때, 이 날의 기록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내가 채운, 더 이상 두렵지 않은 공백을 떠올렸으면 좋겠다.


저 지금 진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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