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다양한 목소리들
우리는 누구나 다중인격이다
이 말이 당신에게 어떻게 들리나요? 잠시 시간을 가지고 내면의 반응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우리는 누구나 다중인격이라는 말이 너무나 당연한 말처럼 들리나요? 이렇게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일리가 있는 말이라는 생각이 드나요? 아니면 영화나 소설에 나오는 다중인격이라는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이 떠올라서 우리 모두가 다중인격이라는 말이 불편하게 느껴지나요?
다양한 마음의 힘
우리에게 다중인격 즉, 여러 가지 마음이 공존한다는 것은 상당히 자연스럽고 우리에게 도움이 됩니다. 다양한 마음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처한 상황에 적절하게 또 유연하게 대처를 할 수 있고, 그 결과 우리가 생존하고 나아가 번영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인간의 본성은 무엇인가?
하지만 내 내면에 이렇게 다양한 마음들이 존재한다면 과연 나는 누구인가?라는 의문이 들 것입니다. 이렇게 복잡하고 모순된 생각들과 감정들이 공존하는데 이 중에서 과연 무엇이 나라는 말인가?라는 생각 말이죠. 수많은 철학자와 심리학자들이 ‘인간의 본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탐구해 왔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일 것입니다.
철학자들이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정의했는지 논의하기 전에 지금 잠깐 생각을 해 보세요. 당신은 당신이 누구라고 생각하나요? 당신의 핵심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무엇이 당신 다운 것이고, 무엇이 당신답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하나요?
이 본질적인 질문에 대해 우리가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본성에 대한 정의를 내리게 되면 그 이후 인간의 행동을 해석하고, 그에 따라 무엇을, 어떻게,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성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성선설 vs. 성악설
잘 아시다시피 동양철학에서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두 가지 상반된 관점이 있습니다.
맹자가 주장한 성선설에 따르면 인간은 본래 선한 존재이며, 사회나 환경의 영향으로 때때로 부정적인 행동을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인간은 선함을 지니고 있다고 봅니다.
반면 순자가 주장한 성악설에 따르면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악한 본성을 가지고 있으며, 오직 교육이나 사회적 규범을 통한 감시와 통제를 통해서만 바른 행동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봅니다.
인간의 본성을 정의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
인간의 본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우리가 정의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인간 본성을 어떻게 규정하는지에 따라서 우리가 우리 자신과 타인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들이 달라지고, 인간의 일탈적인 행동을 보완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을 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본래 선하고, 선한 행동을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다면 나와 타인을 신뢰할 수 있고, 기회를 주게 되며,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호기심을 가지고 이야기를 듣고, 일탈 행동을 하더라도 다시 자신의 선한 본질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고 또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들을 모색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본질이 악하다고 믿으면 당연히 사람들은 나쁜 행동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을 교육을 통해 계몽시키려 하고, 자신과 타인이 잘못하고 있는지 늘 감시하고 행동을 통제하려고 할 것이며, 통제를 보다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비난과, 수치심 주기를 할 수 있고, 그럼에도 일탈 행동이 나오면 처벌을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본성인 참나와 참나의 특성
IFS(Internal Family Systems내면가족체계) 심리치료 창시자인 리처드 슈워츠 박사는 우리 내면에는 여러 가지 마음(파트)이 공존하고 상황에 따라 이 마음들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변할 수 있지만, 그중에서도 변하지 않고 결코 손상되지 않는 참나(Self)가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참나란 ‘내 안의 하나님’ ‘내 안의 부처님’ 같은 존재로 다음과 같은 특성을 보입니다: 호기심 Curiosity, 연민 compassion, 용기 courage, 창조성 creativity, 연결감 connectedness, 명확성 clarity, 자신감 confidence, 침착함 calmness. 동양철학의 성선설과 유사하게 참나는 모든 사람들이 타고나는 선한 씨앗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왜 참나가 삶에서 잘 드러나지 않을까?
여기서 독자들은 이런 의문이 들 것입니다. ‘이 좋은 참나가 우리 내면에 있다면 내 삶에서는 왜 이 참나가 항상 드러나지 않는 걸까?’
참나가 우리 삶에서 항상 드러나지 않는 이유는 앞에서 말한 여러 가지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나타나는 다양한 마음들(파트들) 때문입니다.
당신은 누구인가?
이제 다시 질문을 던져보겠습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을 본질적으로 선한 사람이라고 믿고 싶으신가요, 아니면 본질적으로 통제가 필요한 악한 존재라고 믿고 싶으신가요? 이 질문에 답하는 과정 자체가 여러분의 삶과 행동 그리고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열쇠가 될 것입니다.
다음 포스트에서는 리처드 슈워츠 박사가 말하는 ‘참나’와 우리 내면에 있는 복잡하고 다양한 마음들(파트들)에 대해 더 깊이 탐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지, 댓글로 함께 나눠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