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그 순간,

by 김윤정

"엄마, 나 좀 만나줘!"

아빠랑 이혼을 하고 휴양차 외삼촌 집에 있는 엄마를 찾아갔었다.

절대로 엄마를 찾지 않을 거라고 아버지한테 맹세를 했었고 만약 엄마를 찾는다면 그걸로 너는 내 딸이 아니라기에 그동안 참고 있었지만 오도 가도 못할 상황에 처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픈 엄마를 찾아가는 것 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아버지가 원하는 아들을 낳지 못하는 대신 살림을 윤택하게 하겠다는 일념에 높은 이자에 혹해 빚보증을 서 주었고 그 대가는 믿었던 사람의 배신과 빚쟁이들의 독촉과 압박에 의한 충격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아버지는 그런 엄마를 용서하지 못하였고 결국 갈라서게 되었다.

어른들의 잘못은 아무 죄 없는 내게 묻매처럼 쏟아지는 불행으로 닥쳐왔다.

미대를 목표로 그림을 그리던 여고생이었던 나는 미대는커녕 고등학교 졸업도 불투명해졌고 빚쟁이들에게 쫓겨 야반도주를 택한 아버지를 따라 부산에서 인천으로 이사를 해야 했다.

거기까지였으면 좋았을 것을 아빠는 없는 돈에 빚을 내서 생전 해 보지 않은 장사를 한다고 하다가 그나마 있는 것을 몽땅 사기를 당하고 난 뒤 서울로 다시 쫓기듯 이사를 하게 되었다.

어린 날 배가 고파 울었던 아픈 기억이 있던 곳인 북아현동 산꼭대기 집에 단칸방을 겨우 얻어 살아가는 중에

아버지는 이상한 여자를 집으로 데려와 살림을 차렸다.

딸이 아닌 조카가 된 나는 한순간에 골치 아픈 군식구 취급을 받아야 했다.

"내가 왜 이 나이에 당신 조카까지 신경 써야 돼?! "

그냥 아무것도 안 해도 옆에 있는 것 자체가 끔찍하다는 듯 그 여자는 나를 싫어하였고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는 것이 아니라 밥도 챙겨 주기 싫었는지 김치 말고는 남겨 놓은 반찬도 밥도 없어 배고픔에 시달리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어버렸다.

홍길동도 아닌데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도 못하고 나무에서 떨어진 가지처럼 나는 메말라 갔다.

1년 반 남은 고등학교를 거의 나가지도 못하다가 겨우 야간으로 옮긴 뒤에야 학비를 벌며 다니게 되었지만 쥐꼬리만 한 그 돈은 아버지에게 고스란히 빼앗기고 하루 한 끼 라면으로 때우며 매달 교무실로 불려 가 육성회비와 공납금을 내라는 닦달 속에서 겨우겨우 학교를 다녀야 했던 고달픈 처지였었다.

한의원 보조 간호사로 일하면서도 나의 18세는 늘 배가 고팠고 외로웠으며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막막함 속에 발버둥 치며 지나가고 있었는데 더는 몸이 버텨주질 못했고 결국 혈변을 보기에 이르렀다.

이러다 낫겠지. ᆢ아니 그냥 나아지길 간절하게 바랐지만 그 염원과 달리 배는 쥐어짜듯 아팠고 화장실에 갈 때마다 쏟아지는 피를 보며 이러다가 죽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하루하루 질려갔다.

하루는 말을 할까 고민하다가, 하루는 이러다 말겠지 했고 또 하루는 그냥 죽자 하다가 내 힘으로는 어떤 결론도 낼 수가 없어서 어렵게 아버지에게 말을 했지만 치질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그냥 있으면 괜찮아진다며 병원에 데려갈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이러다가 죽으면 차라리 잘 된 것이겠지.'

죽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배가 점점 더 아파질수록 혈변이 더 많아질수록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해질수록 묘하게 죽고 싶은 생각보다는 살고 싶다는 간절함이 점점 더 강해져 갔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한 날에는 별을 볼 수가 없었다.

사람에게는 자신의 별이 있다는 말을 들었기에 내가 죽게 되면 내 별도 사라지겠지 ᆢ

별을 안 보면 더 오래도록 빛날 수도 있어!

물건도 자꾸 만지면 닳아버리지만 안 보고 안 만지면 더 오래오래 보전할 수 있는 것처럼 내 별도 안 보면 더 오래 반짝이지 않을까... 아닌 줄 알면서도 괜한 희망을 품어 보려고 아등바등하였다.

그러다 문득 엄마 생각을 했었다.

그동안 나를 버리고도 연락 한번 없는 무정한 엄마였지만 그래도 찾아가 보자. 어쩌면 살길이 열릴지도 몰라!

부질없는 희망이 되더라도 용기를 내어 찾아간 길이었다


엄마가 있는 외삼촌 집은 방배동 부촌에 있었다.

돌들이 박혀 있는 높다란 담장은 아무나 근접할 수 없는 철옹성처럼 보였고 담장 위에 멋들어지게 휘어져 고개를 내밀고 있는 소나무는 마치 보초병처럼 도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위옹에 주눅이 들어 초인종을 누르지 못하고 얼마나 머뭇거리고 있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비가 내렸다.

점점 거세지는 빗줄기에 몸이 얼어붙었고 더는 버틸 수 없을 때 겨우 누른 벨이었다.

누구세요?

오랫동안 듣지 않았어도 아무리 잊으려고 했어도 핏줄에 푸르게 새겨 있는 엄마 목소리는 저절로 안다.

"엄마. 나야!"

그런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꿀 먹은 벙어리가 된 것일까?! 몇 번이나 벨을 누루고 눌렀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조급함과 두려움에 엄마를 불렀지만 내게 돌아온 것은 일하는 아줌마의 감정 없는 목소리였다.

"학생이 이렇게 찾아오면 엄마가 충격받아서 죽어요! 그럼 좋겠어요? 그러니까 이만 돌아가요"

딸이 엄마를 찾아왔는데 엄마가 왜 충격을 받아 죽을까? 참담함 속에서 해답을 알 수 없는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 봤지만 나는 그 해답을 알 수가 없었다.

"엄마, 제발 나 좀 만나 줘! 나 춥고 배 고프단 말이야!"

모습을 볼 수 없는 엄마에게 애원을 하였다.

그러나 내게 돌아온 건 암흑 같은 참담한 침묵이었다.

일하는 아줌마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사이 빗줄기는 거세지고 바람이 불었고 아무리 두드려도 열어주지 않는 대문 앞에 한참을 주저앉아 울다가 매섭게 몰아치는 폭풍 같은 비바람에 쫓기듯 되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내게 세상은 왜 이리도 모질까?! 무엇을 잘못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엄마나 아버지한테 버림받을 만한 큰 잘못을 저지른 것 같지는 않은데...

얼마나 버림을 받아야만 하는 건지? 돌아보니 어린 날에도 엄마는 나를 버리고 떠났었고 아버진 나를 할머니한테 버렸었다.

이렇게 무책임할 거면 차라리 낳지 말던가 아니면 아무것도 모를 때 버리지 ᆢ

버림받을수록 그 두려움은 갑절로 커지고 인이 박힐 만도 한데 무뎌지지 않는다.


존재의 가치조차 아무 의미 없을 때가 있다.

세상에서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게 되었을 때가 그중에 하나이다.

엄마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기에 최소한 만날 수는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주린 배를 채우느라 먹었던 김밥 때문에 주머니에는 돌아갈 차비조차 남아 있지 않았었다.

장대비를 맞으며 버스를 타고 왔던 그 길을 온몸에 김이 모락모락 나도록 걸으며 덜덜 떨리는 턱의 울림소리에 목이 터지도록 서럽게 울며 걸었던 그 길은 아버지 집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허기가 지고 다리는 부어오르고 더 이상 한걸음도 걸을 수 없도록 지친 나는 일하던 한의원에 찾아들었고 젖은 옷을 벗어 빨아 널고는 평소 환자가 누워 있던 침대에 널브러졌다.

'내일 아침은 영원히 오지 말아라...'

아무도 없는 환자의 침대에 누워 오지도 않는 잠을 청하며 18세밖에 되지 않았던 내가 바랐던 것은 내일이라는 또 다른 날을 맞이하지 않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김 작가... 나만 선택해 주면 안 되겠어요?! "

쿵쾅쿵쾅ᆢ 스피커를 찢을 듯한 요란한 노랫소리가 들리면 어김없이 그의 페라리는 기획사 마당을 미끄러지듯 들어선다.

황 대표가 오는 소리에 팀장은 나를 부른다.

팀장의 부름에도 난 무응답이다

기획사의 투자자라는 황 대표,

서로 돌싱(돌아온 싱글)끼리 마음도 맞추고 함께하면 얼마나 좋냐고 중간에 다리를 놓고 있는 팀장은 따로 먹은 마음이 있었는지 황 대표와 나를 엮으려 들었다.

여자가 아이 둘을 혼자서 키운다는 것은 모든 것을 포기해야 가능한 일이다.

남자도 연애도 재혼도, 아니 그것을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쩌면 허영일 지도 모른다. 그저 그날 사는 것이 급급한 이혼녀의 생활은 늘 허덕임의 연속이다.

직원들은 야근하고 그 자리에 곯아떨어졌지만 나는 별빛이 사라져 가는 새벽을 뚫고 아이들에게 달려가야 했고 회식을 하는 밤에는 부지런히 고기를 집어 드는 뭇사람들의 젓가락질을 보며 계란밥에 국도 없이 꾸역꾸역 밥을 먹고 있을 아이들을 생각하며 넘어가지 않는 고기를 입에 밀어 넣어야 했다.

어쩌다가 야유회를 갈 때도 나는 아이 핑계를 댈 수 없어서 아프다며 빠져야 했다.

수도세를 내고 나면 가스요금이 기다리고 있었고 가스요금을 내고 나면 쌀을 사야 했고 거침없이 먹어대는 아이들의 배를 채우기 위해선 잠자는 시간도 줄여가며 글을 써야 했고 기획안은 기필코 투자자를 잡아야만 살아날 수 있는 아슬아슬한 줄타기와 같은 삶의 연속이었다.

그런 내게 황 대표는 거침없이 다가섰다.

"왜 김 작가는 한 번도 페라리를 태워달라고 말하지 않아요?!"

함께하는 여자 작가들과 경리를 보는 미스 리는 걸핏하면 황 대표에게 페라리를 한 번이라도 더 태워 달라고 때를 쓰기도 하고 커피를 서로 타주며 드라이브를 하려고 눈치싸움을 하곤 하였다.

"그걸 탄다고 뭐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왜 꼭 내가 페라리 태워 달라고 해야 되나요?!"

내 질문에 당황을 했는지 그는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언제든 말만 하면 뭐든지 태워 준다고 하였다.

사실 그는 페라리뿐만 아니라 아우디도 벤츠도 있는 잘 나가는 남자였다.

그런 그가 왜 나 같은 것을... 뭐가 부족해서?!

"장난이 하고 싶다면 하지 말아 주세요!"

단호한 나의 말에 그는 음식을 잘하는 여자가 좋다며 옛날부터 음식 잘하는 여자는 소박을 안 당하는 법이라고 하였다.

피식, 나는 그의 진담인지 아니면 실수인지 모를 그 말에 실소를 터뜨렸고 이미 소박을 받다 못해 이혼까지 했다고 말하였다. 일순간 얼어붙은 분위기, 팀장이 얼른 끼어들어 화제를 바꿔 농담을 주고받았지만 그 우스갯소리에도 나는 웃을 수가 없었다.

- 어묵볶음이 맛있어요. 더 없어요?!

-고추장찌개도 예술이네.

- 오올~

탄성과 함께 야릇한 눈길을 보내는 직원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내 굳은 얼굴을 바라보며 눈치를 살피면서도 굳이 내 옆에 앉아 있는 직원과 자리를 바꾸면서 대놓고 다가오는 그였다.

그 후에도 내가 가끔 식사 당번이 되어 직원들 밥을 하는 날이면 그는 어떻게 알았는지 어김없이 나타났었고 두세 그릇을 거뜬히 비웠으며 공짜 밥은 안 먹겠다며 설거지를 돕기도 하였고 아니면 그날 저녁을 거하게 직원 모두에게 쏘고는 하였다.

그 덕분에 나는 동료들에게 심심찮은 치사를 듣기도 하였다. 그렇게 가깝지도 않고 멀다고도 할 수 없는 애매한 시간들이 바람처럼 한 여름을 지났고 가을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동안 의도하지 않았던 몇 번의 우연한 만남으로 둘이서 차를 마시기도 하였고 돌담을 걷는 시간도 있었다. 그 사간을 통해 알게 된 그는 딸아이가 하나 있었고 술과 춤에 혼을 판 아내 때문에 이혼을 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그가 내게 말했다.

" 아이를 위해 새벽 세시까지 일을 하고도 집으로 달려가는 여자라면 평생 믿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얼마 후 그 일이 일어났다.


황 대표와 다른 투자자를 만나게 되어 그동안 기획사 직원들이 애쓰던 결심을 맺었던 날이었다.

한꺼번에 여섯 작품을 투자를 받게 되어 선수금을 받던 날 팀장과 소속사 직원 모두와 회식을 하였다.

일차는 고깃집에서 배가 터지도록 소고기를 먹었고 이차는 당연히 압구정동의 의리 번쩍한 클럽이었다.

홀에서는 선남선녀가 춤을 추었고 룸에서는 밴드에 맞춰 노래 부르고 음식도 먹을 수 있는 태어나 처음 가보는 곳이었다.

다들 들떠서 폭탄주를 마셔 대었지만 나는 술을 먹지 못해 몰래몰래 버리며 노래를 불러야 했다.

"잠이 들 땐 그대는 무슨 꿈 꾸시나요?"
"김 작가 꿈!"

".... 바쁠 때 전화해도 내 목소리 반갑나요?"

"언제든 콜!"

이선희의 '알고 싶어요'라는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후렴처럼 가사마다 대구를 하는 황 대표였다.

그런 황 대표의 반응에 직원들이 갑자기 그의 편을 들며 이제는 그 마음을 받아주라며 아우성이었다.

못 들은 척 취하지도 않았는데 취한 척하며 그 상황을 모면하려고 못 추는 춤까지 추어가며 분위기를 바꾸려고 애를 쓴 덕분에 더 커지지 않고 다행히 잘 넘어갔었다.

밝은 내일에 대한 희망으로 부풀어 오르고 기분에 흠뻑 젖은 직원들은 빠르게 술에 취해갔다.

새벽 4시가 돼서야 겨우 끝난 술자리.

직원들은 오랜만에 집으로 간다고 다들 난리였고 팀장은 할증료까지 챙겨서 직원들의 차비를 챙겨 주었다.

나도 당연히 차비를 주겠지 했었는데 차비 대신 황 대표가 집에 데려다주겠다고 나섰다.

음주운전은 안된다며 구실을 찾는 나의 등을 떠미는 팀장님과 직원들.

어느새 나를 에워싸고 그의 아우디로 가고 있었다.

그 차에는 운전사가 대기하고 있었고 나의 집을 알고 있었는지 동네 이름을 말하며 그곳에 가면 되냐고 확인까지 하였다.

차문을 열어주며 등 떠미는 직원들 사이에 있는 그를 불안한 눈으로 쳐다보자 그는 명쾌하게 자기는 앞에 탈 거라고 하였다.

혹시나 몰라 나는 자리를 양보하여 안쪽으로 비키지 않았고 그는 말대로 앞자리에 탔다.

함께 차를 타고 가는 우리들에게 팀장과 직원들은 좋은 시간을 보내라며 응원을 보냈다.

긴장한 채 그의 뒷모습을 보며 차를 타고 가던 중이었다.

갑자기 차가 다른 길로 들어섰고 가는 방향이 바뀐 것을 알고 나는 어디로 가냐로 물었다.

"잠깐, 한강 바람이나 쐬고 가죠... 술도 깰 겸."

차가 미끄러지듯 한강에 멈추어 섰다.

앞자리에 탔던 그가 서둘러 내려서 문을 열어 주었다.

뿌연 물안개가 피어 있는 강가에 불빛은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고 안개에 젖듯이 내 마음이 묘하게 일렁거렸다.

"아~"

탄식처럼 나오는 나의 한숨, 그 한숨 속에는 그동안 사느라 느껴보지 못했던 삶의 아름다움이 보였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새로 보이는 별빛과 늦은 밤에도 데이트를 하고 있는 쌍쌍의 연인들, 그리고 잔잔히 흐르는 강물로 비치는 불빛. 이런 것을 느끼며 살았던 적이 언제인지 모른다.

물안개가 지친 내 몸을 감싸 안아 주었고 불빛에 반짝이는 강물은 가슴을 짓누르고 있던 삶의 무거움을 잠시나마 대신 받아 주는 듯하였다.

옆에 그가 있다는 사실조차 망각했었는데...

"나 한번 믿어 볼래요?!"

언제 다가왔었는지 황 대표가 옆에 서 있었다.

난, 남자를 믿지 않아요...라고 말을 했던가?...

그는 일하느라 돌보지 못했던 자신의 행복과 딸아이의 행복을 위해 재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이혼을 하고도 정신 차리지 않고 여전히 술 마시고 춤추느라 아이를 돌보지 않는 여자에게 더 이상 자신의 딸을 내버려 두고 싶지 않다고.

아, 이 남자.... 이 남자는 내 아버지와 전 남편과 달리 아이를 생각하는구나!

순간 느낀 작은 감동이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김 작가... 나만 선택해 주면 안 되겠어요?!"

그의 손이 나의 어깨를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나는 그의 품에 안겨 있었다.

쿵쾅거리는 심장 박동 소리에 귀가 먹먹해질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그의 눈동자가 나를 바라본다.

'그냥 모든 것을 버리고 이 남자품에 안길까?!'

그 순간, 내 몸속에선 작은 파도가 일렁이더니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입은 마르고, 목에선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른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입술도 달아오른다.

그가 흔들리는 내 마음을 눈치챘는지 과감하게 다가왔다.

신음처럼 그가 내 이름을 처음으로 불렀다.

누군가에게 내 이름을 이처럼 다정하게 불려진 지가 얼마만인지... 감미로웠고 그 때문이었는지 주전자에서 끓는 물처럼 어느 순간 내 육신에 들끓는 욕망이 보여 눈을 감았다.

그의 입김이 내 얼굴에 입술에 닿을 듯 가깝게 느껴진다.

이대로 그를.... 받아들이면... 된다!


"엄마, 나 좀 만나줘!"

왜 그 순간 내 울부짖음이 들린 것일까...

그의 입술이 너무 뜨겁게 느껴지는 짧은 순간, 나도 모르게 그를 밀쳐내었다.

"나는.... 안.. 되겠어요..."

뒤돌아 선 나는 새벽에 이슬을 맞고 바람을 피우고 돌아오는 여자처럼 흩어진 마음과 몸을 추스르며 차에 올라타고 말았다.

깊은 침묵이 무겁게 나를 누르고 그 무거움에 벗어나고 싶은 조급함에 시달렸다.


우리 동네 입구에 다 다르자 마침 신호등에 걸려 차가 멈춰 섰다.

나는 그 무거운 침묵을 벗어던지고 서둘러 차에서 도망치듯 내렸다.

놀라서 내 이름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걸었다.

집으로 가는 오르막길에 접어들면서 잠깐 안겨 있었던 그의 품에서 들리던 심장소리가, 그의 굵은 팔의 압박이 느껴졌고 나는 그제야 뒤를 돌아보며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빵!"

클락션 소리가 크게 울리고 그의 차가 미끄러지듯 다가왔다.

차문을 열고 그가 뛰어내렸다.

"어디 가요?!"

"...."

"지금, 어디 가요?!"

"...."

멍하니,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그의 물음이 무엇인지 나는 아는데...

가지 말라는 소린 걸 아는데 나는 그가 원하는 답을 해 줄 수가 없다.

나는, 엄마처럼 아버지처럼 아이들을 버릴 수가 없다.


"지금, 어디로... 가나고요?!"

"아이들... 한 테.. 가요! 내 아이들한테요."

발악하듯 소리를 질렀다.


이번엔 그가 말이 없다.

그런 그를 뒤로 하고 집으로 걸어갔다.

그는 자꾸만 내 뒤를 따라온다.

집이 코 앞이었다.

"대표님의 마음... 알겠지만... 저는 제 아이... 만으로도 지금.. 너무 벅차요... 죄송합니다."

그의 다른 어떤 말이 내 발목을 또 잡아챌까 봐 서둘러 집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현관문에 귀를 바짝 대었다.

제발 이대로 가주길... 아니, 그가 와서 우리 집 현관문을 두드려 주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한참이 지난 후, 길게 클락션을 울리더니 부르릉 거친 엔진 소리를 내며 차가 멀어져 가는 것 같다.

이제, 끝났구나.

갑자기 맥이 탁 풀려 주저앉는데 속울음이 울컥울컥 치받쳐 오른다.

아이들이 내 울음소리에 깰까 봐 욕실에 들어간 나는 옷을 입을 채로 더워진 몸을, 끓어오르는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안감힘을 쓰며 찬물을 뒤집어썼다. 눈물인지 눈에 들어간 물이 흐르는 것인지 한동안을 그렇게 버티듯 서 있었고 차가운 물에 몸이 굳어지고 나서야 겨우 마음이 진정되었다.

잠옷을 갈아입고 안방에 들어가니 아이 둘이 가운데 내 자리를 비워놓고 곤히 잠들어 있었다.

나를 많이 닮은 큰 아이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엄마, 제발 나 좀 만나 줘!"

나를 닮은 큰 아이의 얼굴에서 비 오는 날 외삼촌 집 앞에서 오들오들 떨며 엄마가 나오길 기다렸던 내 아픈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너희를 지켰어!"

핑, 눈물이 돌고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으며 나는 아이들이 마련해 놓은 자리로 들어가 아이들을 품에 안았다.

작은 아이가 잠결에도 가슴을 더듬어 조물거리고 큰 아이의 편안한 얼굴이 내 턱 밑에 있다.

'잘한 거야!... 너, 참 잘했다.'

창밖에 돋아 오르는 햇살 속에 아직도 제 빛을 잃지 않은 달을 보며 나는 잠이 들었다.


그리고 일년 반이 지난 후 엄마는 나를 찾아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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