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돌아왔다.
거짓말처럼, 중풍으로 쓰러진 후 외삼촌 집에서 치료를 받던 엄마는 찾아갔을 때에도 만나주지 않더니
일 년 반이 지난 후 나를 찾아왔다.
딸을 찾아간다는 이유로 물심양면으로 엄마를 도왔던 외삼촌은 일절 모든 것을 끊어내고 땡전 한 푼 없이 쫓아내듯 했다고...
이제 갓 고등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취업을 한 새내기인 나와 중풍의 후유증으로 걸음이 어눌하고 왼손이 부자유스러운 엄마, 그렇게 모녀는 몸뚱이 하나 뉘일 곳이 없어 정처 없이 떠도는 신세가 되었다.
처음 우리는 목욕탕 탈의실에서 음료수를 팔며 청소 등 잡다한 일을 해주고 잠자리를 얻었다.
엄마는 목욕탕 탈의실에서 나는 목욕탕에 딸린 여인숙에서 생활하며 그토록 원하는 그림을 그리는 대신 오퍼상에 취직하였고 돈을 벌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홍제동에서 명동까지 출퇴근을 하였다.
엄마와 나의 수입, 그중에서 방세를 지불하고 밥을 사 먹다 보면 남는 것은 별로 없었다.
지금의 우리 형편에 먹고사는 것만도 다행이지만 퇴근해서 돌아오면 내가 할 게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책을 좋아했지만 책 한 권 마음대로 읽을 형편이 못되었고 취미생활로 뭔가를 배운다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는 빠듯한 생활이었기 때문이었다.
여관방에는 아버지한테 쫓겨날 때 겨우 챙긴 옷가지와 사회 초년생이 되어 바르기 시작한 루주와 기초 화장품 몇 개가 빈 상자에 놓여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었고 누렇게 색이 바랜 벽에 걸린 달력에는 수영복을 입고 있는 여배우가 여름에도 겨울에도 비키니 수영복만 걸친 헐벗은 모습으로 사시사철 웃고 있었고 그 달력 옆에는 후줄근한 엄마 옷과 내 출근복이 못에 걸려 있었다. 그리고 구석에 놓인 베개 하나와 요와 이불이 내 살림의 다였다.
무료한 시간을 보내려고 나는 가끔 이상한 상상을 하곤 하였다.
벽에 있는 얼룩으로 동물이나 가끔은 악마 같은 것을 연상하기도 하였고 어느 날은 눈물을 흘리고 있는 여자의 형상을 가지고 슬픈 사랑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었는데 그 비련의 여인은 내가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런 공상을 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책이라도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만화방에 가서 만화를 보려고 해도 돈이 들었고 여관에 나뒹구는 '선데이 서울' 잡지책에 들어 있는 내용은 이미 외우다 못해 머릿속에 활자처럼 박힌 지 오래라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취미생활은 꿈도 꿀 수 없는 형편이었기에 무료한 시간을 달래려면 유일하게 TV를 볼 수 있는 여탕에 가야만 했다.
운이 좋으면 엄마만 있는 탈의실에서 내가 보고 싶은 쇼프로를 볼 수 있었지만 그것도 잠시, 목욕을 하다가 TV를 보려고 벌거벗은 몸에 수건 한 장 두르고 나온 아줌마들은 연속극을 보며 동화되어 잘생긴 남자 배우를 보며 대리 만족을 하고 때론 악독한 시어머니를 보며 울분을 토하기도 하였기에 나의 시청권은 박탈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진득하니 앉아서 드라마라도 편히 볼 수 있는 시간은 별로 없었다.
음료수를 달라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걸음이 느린 엄마보다 내가 먼저 줘야 했고 때로는 자신의 몸에서 떨어진 물이 미끄럽다며 닦아 달라는 성화에 바닥을 닦아야 했다. 그러다 보면 다들 벌거벗고 왔다 갔다 하는 곳에서 옷을 입고 있는 내 모습에 왠지 모르는 이질감이 들었고 갑자기 뻘쭘한 기분에 나는 슬쩍 여관방으로 쫓기듯 올라갔었다.
이불을 쿠션 삼아 기대어 깊은 한숨을 쉬면 어눌한 발걸음으로 손님들의 비위를 맞추며 음료수를 하나라도 더 팔려고 왔다 갔다 하는 엄마 모습이 눈에 선하였고, 그 생각 끝에 보이는 벽에 걸린 엄마의 축 늘어진 옷은 나의 암울한 미래를 연상시키기 곤 하였다.
'나는 뭘까! 왜 이렇게 밖에 못 사는 걸까?'
원초적으로 부모를 잘못 만났고 엄마와 아빠의 서툰 삶 때문에 자식에게 오는 결과치는 항상 가난이었고 버림받음이었기에 내 자존감은 한없이 낮아졌지만 자존심은 강해지고 있었다.
쥐뿔도 없으면서 여인숙에서 일하는 미스리 언니를 보며 말이 어눌하고 생각이 모자란다고 또 고아라고 무시하며 언니라고 부르지도 않던 나를 돌아보니 지금은 부끄럽기 그지없다.
공평하게 따지면 위도 아래도 없는데 나보다 높은 사람에게 무시를 당하는 자신을 망각한 채 어느새 나보다 못한 다른 사람을 똑같이 무시한다. 그래서 사람은 망각의 동물인가 보다.
하루에도 여러 번 우울함과 자괴감에 빠져 들었던 나의 스무 살, 평일보다 주말이 더 힘든 나날들은 그렇게 덧 없이 흘러갔다.
그런 시간을 보낸 지 얼마 후, 엄마의 사교성 덕분에 손님으로 오던 이불집 아줌마 집에서 살림을 해주는 조건으로 엄마와 함께 남의 집살이를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럭저럭 여관보다는 낫다고 생각했었다
문고리가 고장 나서 언제나 불안하고 쪼그려 앉아 볼 일을 봐야 하는 여관의 화장실보다는 집안에 있는 욕실이 쓰기 편하였고 언제든 샤워를 할 수 있어서 좋다고ᆢ
그러나 남의 집 살이는 아무리 편하여도 눈칫밥이라는 것을 곧 깨닫고 말았다.
처음에 아줌마는 뻘쭘해서 방에서 잘 나오지 않는 나를 찾아와 내 집처럼 편하게 지내라며 뭐든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였다.
그러나 생전 동생 없이 혼자 자랐던 나는 천방지축 날뛰는 초등학교 3학년 사내아이와 유치원에 다니는 사내아이의 번잡스러움에 당황하였고 스무 살이나 되는 내가 어린 두 아이의 눈치를 보며 살게 될 거라는 것을 알지 못했었다.
서로 때리고 도망치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도 내가 책을 보면 그 책을 빼앗아야 직성이 풀렸고 TV도 보지 않으면서 내가 보면 이곳저곳으로 채널을 돌리며 약을 올리기 일수였다.
더욱이 식사 때는 그 정도가 심하였다.
아이들도 내가 집이 없어 얹혀사는 것을 알았을까? 사내아이들이 있는 집이라서 고기는 떨어지지 않고 나왔지만 느끼한 고기보다 소시지나 햄은 좋아했기에 내 젓가락은 당연히 소시지로 햄으로 향하였다.
그러면 아이들보다 엄마가 먼저 눈치를 주었고 그것을 지켜보기라도 한 것처럼 아이들은 제 밥그릇에 두 개 세 개를 넣어 놓고도 다시 몇 개씩을 더 집어먹으면서 혀를 날름거렸고 의기양양하였다.
그것을 본 아줌마는 누나 좀 먹게 놓아두라고 말은 했지만 입을 삐쭉이는 작은 아들의 밥그릇에 소시지를 옮겨놓은 손길은 늘 분주했었다.
그것도 그거지만 그 집에 남자 주인이 문제였다
여름날 집에서 반바지를 입고 다니는 나를 그 남자의 눈길이 따라붙었고 그것을 느낀 아줌마는 내게 푹푹 찌는 여름날에도 긴 바지나 긴치마를 입을 것을 강요하였다.
자다가 일어나서 화장실에 가려고 해도 번거로웠다. 언제 어느 때 주인 남자를 대면하게 될지 몰라서 소변을 보러 가려고 하여도 잠옷을 벗고 긴바지에 티를 갈아입어야 했고 어쩌다가 거실에서 주인 남자라도 만나면 가던 화장실을 뒤로하고 방으로 숨듯이 뛰어 들어와야 했지만 마려운 소변을 참고 다른 사람이 그 뒤를 이어 가길 기다리는 시간은 지루하기도 하려니와 생리적 형상을 참는 것 또한 고통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주인아줌마나 아이들이 갔다가 화장실을 가면 괜찮았지만 주인 남자가 볼일을 본 변기에 내가 바로 앉는 것은 늘 께름칙하였다. 변기에 소변이 튀어 있는 것을 보고 그대로 앉아서 볼 일을 볼 수는 없기에 아닌 밤중에 변기를 닦아야 했고 그러다 보면 잠은 달아나 버렸다. 그것이 아니어도 다른 남자의 맨살이 닿은 곳을 내가 바로 앉는다는 별로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늘 눈치만 살피는 사람이 되었다.
아이들과 함께 티브이를 보다가도 주인 남자가 들어올 시간이 되면 아무리 재미있는 드라마라도 그 끝을 보지 못하고 방으로 들어가야 했다.
엄마는 주인 남자의 밥을 차려주느라 거실에 있었고 아줌마와 아이들은 거실에서 호호 하하 거렸지만 나만 홀로 방에서 외딴섬처럼 떠 있어야 했다.
목이 말라도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최태한 버틸 수 있을 만큼 버티다가 용기를 내어 방을 나서면 여덟이나 되는 눈동자가 내 뒤통수를 따라다니는 편치 않은 생활의 연속이었다.
엄마도 나의 불편한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기에 늘 나와 단둘이 있을 때면 조금만 더 참자라는 말과 함께 주인집 식구들이 잘 먹지 않게 된 딸기 잼에 빵을 구워 주기도 하였고, 내가 좋아하는 계란말이와 김과 오징어젓갈을 주며 나를 달래려고 하였다.
엄마가 여름날 땀을 뻘뻘 흘리며 만든 딸기 잼은 아이들이 학교 갔다 와서 빵을 먹을 때마다 비워져 갔지만 이제는 먹다 남은 윤기 없는 쨈이 된 지 오래였고, 그것도 다 먹었다면 눈치가 보일까 봐 다 먹지도 못하고 남겨 두어야만 했기에 딸기 잼을 바른 빵은 먹음직스럽지 않았고 오히려 서글픈 생각마저 일어나 오히려 속이 더 막히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눈칫밥을 먹으며 2년을 보낸 후 우리는 드디어 그 집 생활을 청산하고 신림동에 작은 집을 마련하였다
전세로 세 들어 사는 집의 방한칸을 월세로 얻었기에 부엌을 함께 쓰는 조건이었지만 우리들의 방이 생겼다.
욕실이 따로 없어 마당에서 씻어야 했기에 겨울에는 이가 닥닥 부딪치도록 추웠지만 여름날에는 바가지로 물을 받아 씻으며 나름 물장난도 칠 수 있어서 좋았다.
한지를 바른 미닫이 방문을 열면 바로 바깥이라 그래도 여름은 견딜만했지만 겨울에는 방에 둔 물이 얼 정도로 추웠기에 방문 앞에 비닐로 천막을 치자 그 나름대로 아늑함을 느낄 수 있었다.
전세를 사는 집에는 두 내외와 아들 딸이 있었다.
그 집 아줌마와 아이들은 수시로 우리 방에 드나들었고 밥도 함께 먹었다.
뼈와 가죽만 남은 아줌마와 뭐든 잘 먹는 두 아이. 그들과 함께 하는 삶은 나름대로 좋았었는데 ᆢ
평소에는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전셋집 남자는 밖에만 나갔다 오면 그날 밤은 야수로 변하였다.
술을 먹고 와서 아이들을 때리고 이를 말리는 아내를 밤새도록 패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비명소리 하나 나지 않고 뭐가 깨지는 소리만 요란했기에 맞는 줄은 몰랐지만 다음날 아이들이 밥도 못 먹고 도망치듯 학교를 가고 난 후 부엌으로 연탄을 갈러 나오는 아줌마의 얼굴을 보고 지난밤의 사태를 알게 되었다.
자그마한 키에 짙은 갈색의 살갗을 지닌 전셋집의 아저씨는 볼 때마다 안개에 파묻힌 것처럼 모호한 사람이었다. 구부정한 허리에 손은 항상 주머니에 찔러 넣고 화장실에 갈 때에만 볼 수 있었던 그는 눈앞에 사람이 있어도 시선을 마주 치 가는커녕 늘 먼 곳을 보는 멍한 눈빛으로 사람을 피하는 인상을 주었고 어쩌다 듣는 어눌한 목소리는 발음도 부정확하여 알아들을 수도 없었지만 워낙 말수도 적어서 그의 목소리를 들은 것은 다섯 손가락도 접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 사람이 의료품을 납품하고 손에 돈을 쥐면 태도가 돌변하였다.
밖에서 술을 먹고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소주 열병을 사 와서 홀짝홀짝 마시던 술에 취하고 나면 짐승으로 돌변하는 것이었다.
아이들의 머리를 쥐어박는 것이 그의 폭력의 신호탄이었고 보다 못해 아이들을 때리지 말라고 말리는 아줌마를 마치 표범이 영양의 목 털미를 물어뜯는 것처럼 달려들어 제압하고는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홀딱 벗겨놓고 허리띠로 때리기 시작한다고 했다. 그 매를 피하려고 구석이나 장롱 뒤에 몸을 숨기면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던진다고 하였다. 때로는 가위가 날아오고 주사기와 접시와 유리잔이 눈앞에서 깨어지면 그 순간마다 아줌마는 지옥을 본다고 하였다.
눈이 뒤집힌 아버지가 무서워 우리 방으로 도망쳐 오는 아이들.
그 아이들을 붙잡으러 올까 봐 나는 가슴을 옥죄며 두려움에 떨어야 했었다.
내 기억 속에도 어린 날 엄마를 때리던 아버지의 모습과 그다음 날 어기 없이 엄마에게 화풀이 대상이 되어 맞아야 일이 떠올라 더욱 힘든 날이 되었다.
그 일은 서너 달에 한 번씩 연중행사처럼 치러졌었고 이제 그 집 아이들은 아예 아버지가 술을 먹기 시작하면 우리 방으로 건너와 숨어 있었고 아줌마는 밤새 매타작을 견뎌내었다.
내가 맞는 것은 아니어도 그 상황이 눈에 선한지라 질식할 것 같은 두려움과 안타까움에 엄마와 나는 아줌마에게 세상을 향해 도망을 가라고 그래서 아이들을 위해 다시 시작하라고 종용하기도 하고 용기를 주었지만 아줌마는 쉽게 용기를 내지 못했는데ᆢ
어느 비 오는 여름날이었다.
전셋집 식구들과 엄마와 내가 연탄가스 중독으로 죽을 뻔한 사건이 벌어졌다.
그 집 남자와 아줌마는 병원에 실려가고 나와 엄마와 아이들은 겨우 방에서 기어 나와 주인집의 도움으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ㆍ
병원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돌아온 아줌마는 오래도록 구슬피 울었다.
정신이 아득해질 때 이대로 죽는구나 싶었는데 이제 다시 깨어나니 이렇게 살다가 죽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그러니 이제 이곳에서 벗어나 새 삶을 살고 싶다고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하였고 석 달동 안 만 아이들을 돌봐달라는 부탁을 하며 진짜로 세상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렇게 나간 후 전셋집 남자는 그래도 아이들이 있어서 아내가 돌아올 줄 알았는지 별 반응은 없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몰래 아이들 학교까지 찾아가 혹시 아줌마가 아이들을 만나러 올까 봐 염탐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도 엄마는 아줌마 부탁대로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재워주며 보살펴 주었고 요행히 호텔 청소부로 취직한 아줌마는 석 달이 지난 후 아이들을 데려가게 되었기에 우리들의 월세방 살이는 그것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드디어 부엌이 딸린 방한칸 전세를 얻었다.
비록 연탄광을 개조해서 만든 방이라 부엌 벽은 연탄재의 흔적으로 거뭇거뭇하였고 욕실이 따로 있지는 않았지만 문을 닫으면 아무 눈치 보지 않고 내 마음대로 씻을 수 있는 부엌이 있었고 먹고 싶은 반찬 엄마한테 해달라며 눈치 보지 않고 먹을 수 있고 연탄보일러 덕분에 방은 따습고 뜨거운 물도 마음대로 쓸 수 있었다.
방에는 창문이 있어서 비 오는 날에는 비가 오는 걸 보며 손을 내밀고 빗물을 받아 볼 수 있어 좋고, 꽃에 날아드는 나비를 보며 동화 속 엄지공주의 이야기를 연상할 수도 있어 행복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것은 싸구려 장롱이라도 생겨서 옷은 물론이고 매일 방 한편에 널브러져 있던 이불을 장롱 안에 넣을 수 있게 되어 어느 때보다 방을 넓게 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작은 소반에 반찬이 서너 가지라도 아니 김치밖에 없어도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행복이며,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자유가 좋다.
그리고 우리 TV를 사게 되었다.
작지만 남부럽지 않은, 내가 보고 싶은 쇼프로도 마음에 드는 드라마도 실컷 볼 수 있다는 것이 보장된
나와 엄마의 쉴만한 곳인 스위트 홈이 드디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