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굴레

이상과 현실의 차이

by 김윤정

아무것도 모르던 소녀가 여자가 되었던 밤이 지났다.

남자의 다정함에 여자는 아버지의 부제로 느껴보지 못했던 푸근함을 느꼈고 정확하게 말할 수 없는 생경한 그 느낌은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 같기도 하였고 몽실몽실한 구름을 밟는 것 같았다.

이모와 하숙생들의 눈을 피해 만나는 것 또한 그 은밀함이 주는 흥분과 짜릿함이 있었다. 남자가 여자를 이끄는 힘은 마치 개미가 설탕의 달콤함을 맛본 후에는 떠날 수 없는 갈망 같은 것이었다.

남자의 부름에 방을 찾아들고 그의 입맞춤에 하나가 되어 가는 날이 계속될수록 여자는 마치 헤어 나올 수 없는 늪으로 빠져들어가는 기분이었고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해도 좋을 만큼 여자는 남자를 의지하였다.

남남이었던 때에 그를 위해 차리는 밥상은 하숙생의 뒤치다꺼리에 지나지 않았으나 지금은 콩나물을 담더라도 참기름 한 방울이라도 더 넣어 주고 싶을 만큼의 애틋한 관계가 되었다.

눈이 오면 그가 추울까 봐 나무토막 하나라도 아궁이에 던져 넣었고 방 아랫목에 이불을 깔고 여자의 옷으로 감싼 밥그릇을 묻어 두고 늦게 오는 남자에게 따신 밥을 주려고 애썼으며 무더운 여름날에는 시원한 물이라도 먹이고 싶어 우물가를 동동 거렸다.

'사랑을 하면은 예뻐져요 '

누군가를 마음에 둔 사람들의 얼굴에는 복사꽃이 피나 보았다.

이모는 요 근래 들어 피어나는 여자를 보고 시집갈 때가 되었나 보다고 놀리기 시작하였고 그즈음 여자는 몸에 이상을 느꼈다. 그렇게도 맛있었던 밥이 보기도 싫었고 냄새조차 역겨워 욕지기가 올라왔다.

처음에는 체했다고 손을 따주던 이모는 계속되는 헛구역질에 여자를 은밀히 불러 추궁하였다.

그리고 여자는 자신이 남자의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은밀했던 그와의 관계가 드러나고 21살의 여자의 몸에 깃든 생명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려는 듯 몹시도 여자를 괴롭게 하였다.

24살의 대학생 남자와 21살의 여자 사이에 생긴 아이.

그 아이로 인해 둘은 하숙방에서 살림을 차렸다.

여자의 배가 빵빵하다 못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고 눈 내리는 겨울 12월 24일 몹시도 춥던 날에 난산 끝에 계집아이가 태어났다.

난생처음 아기를 보는 남자도, 자기 뱃속에서 나와 꼬물거리는 아기를 안을 수도 젖을 물릴 수 없을 정도로 죽을 고비를 넘긴 여자도 그 상황이 기쁜 것인지 아니면 슬픈 것인지 잘 알지 못했다.

그저 아기가 생겼으니 입이 하나 더 늘었다는 생각이 앞섰다고 아기는 자라서 아버지한테 듣게 되었다.

가난하지만 그래도 함께 눈 뜨고 한 곳에서 잠을 자고 남자가 돌아오길 바라며 아기를 키우고 살림하던 여자에게 남자가 말했다.

"시골에 가자, 가서 어머니한테 인사드리자!"

아이를 낳고 여태까지 살면서 시댁에 누가 있는지 조차도 몰랐던 여자는 드디어 진짜로 남자의 여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었다.

백일이 안 된 아기를 안고 서울에서 강원도 양양으로 가는 길은 험난 했다.

1960년대의 도시가 아닌 곳은 도로는 도로라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울퉁불퉁하였고 굽이굽이 돌아가는 산길과 그 산길 옆 까마득한 벼랑 사이로 보이는 바다는 너무도 푸르렀다. 덜컹거리는 길을 버스를 타고 가며 여자도 아기도 멀미로 초주검이 다 되어 갈 즈음 버스를 네 번이나 갈아타고서야 당도한 양양은 아직 봄이 오지 않았는지 매서운 칼바람이 불었다.

아이를 안은 여자의 손끝은 그 추위로 이미 감각이 없었고 오랜만에 어머니를 본다며 준비해 간 선물과 짐으로 여유가 없었던 남자의 손 또한 얼어붙은 지 오래였다. 아기는 오래전부터 울었다. 오는 동안 젖 한번 제대로 먹지 못했고 멀미로 토하였고 기저귀도 갈아준지 한참이라 말도 하지 못하는 아이는 그 괴로움을 울음으로 표현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가, 할머니 집에 가면 따듯할 거야! 거기 가서 젖도 주고 기저귀도 갈아줄게. 조금만 참아!"

아기를 달래며 돌밭길을 걸었고 돌부리에 발이 걸려 넘어질 것 같은 불안함에 여자는 온몸에 힘이 들어갔다.

그 와중에 눈이 내렸다.

아직이냐고 물을 때마다 곧 도착한다는 시댁, 초행길이라 낯설기도 하였지만 처음 뵙게 될 시어머니에 대한 걱정과 우는 아이로 인해 여자의 걸음은 자꾸만 허둥대었다.

숨이 턱에 차게 언덕길을 오르고 또 한참을 걸어간 뒤에야 어렵게 도착한 시댁은 싸리문에 너와지붕을 한 작은 집이었다.

분명히 아이와 간다는 전보를 보냈다고 하였다.

한데 '어머니'를 부르며 들어간 집에서는 냉기가 돌았다.

걱정은 했지만 기대도 있었던 시어머니와의 만남은 여자가 생각했던 그 이상이었다.

"뭐 하러 왔냐?!"

오랜만에 본 아들에게 던진 한 첫마디였고 남자는 '전보 보냈잖아요. 이 사람과 아이와 함께 간다고' 투명스럽게 대답한 것이 인사를 대신하였다.

여자를 보는 곱지 않은 시어머니의 시선은 아까부터 울고 있는 아기에게 꽂혔다.

"아무짝에도 쓸데없이 계집애 울음소리가 어찌 저리 앙칼지누!"

그 말에 남자는 발끈하였다. 처음 본 손녀한테 그게 무슨 할 말이냐고..

그런 남자의 말에 '나는 근본도 모르는 여자와 아이를 낳으라고 한 적이 없다'는 시어머니의 말은 비수가 되어 여자의 가슴을 찔렀다.

남자는 그런 시어머니에게 언성을 높였고 그에 못지않게 칼과 창 같은 시어머니의 말은 남자를 갈구었다.

이에 남자는 모르겠다며 여자와 아기를 남겨두고 집을 나가버렸다.

싸리문 앞에 선 여자는 오도 가도 못한 신세가 되어 어찌해야 하는지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 내 아들 앞길을 막은 요사스러운 년!"

우는 아이를 안고 거의 울상인 여자에게 시어머니가 던진 말이었다.

그래도 인사를 드려야겠다는 생각에 인사를 올린다는 말 한마디에 시어머니는 그 더러운 발로 내 집을 망치지 말라 하였고 아비 앞길을 막는 불길한 계집애는 마루에도 내려놓지 말라는 말에 여자는 온몸을 떨었다.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못하고 여자는 그 길로 집을 나섰다.

정신없이 아이를 안고 나선 길, 어디로 가야 남자를 찾을 수 있는지 알 수 없기에 여자는 드문드문 떨어져 있는 집들을 바라보며 망연자실하였다. 그때 아이가 볼에 댄 듯 울었다. 더 이상 아기에게 시어머니의 얼토당토않은 악담을 듣게 할 수 없어서 여자는 무조건 터미널을 향해 뛰는 걸음으로 달렸다.

얼마를 달렸을까... 아이는 울다 지쳤는지 앓는 소리로 가르랑거렸고 돌부리에 걸린 발은 여기저기 터졌는지 버선에 피가 배어 나왔고 얼은 몸과 손은 빨갛다 못해 이젠 거의 감각이 없는 것 같았다. 그것보다 더한 깊은 상처를 입은 가슴을 안고 여자는 겨우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였다.

전화도 없고 연락할 방도도 없고 버려진 아기와 여자는 밤이 늦도록 바람이 쌩쌩부는 터미널에서 오래도록 남자를 기다렸다. 호가 나서 나갔지만 아이와 자신이 없어진 걸 알면 터미널로 오겠지 하는 바람이었다.

"서울 가는 막차요!"

그 소리는 마치 더 기다려봐야 소용없다는 알림 같은 것이었기에 추운 밤 아기와 밤을 새울 수 없어 할 수 없이 여자는 아기를 안고 버스에 올랐다.

새벽부터 음식도 물도 제대로 먹지 못했던 여자는 그제야 속이 허허로웠다.

'이러려고 내가 여길 왔던가?!'

집에 가서 인사를 드리자고 남자가 말했을 때 여자는 뭐 하나 내세울 게 없어서 두렵기만 하였다.

학벌도 남자에게 한없이 모자랐고 가난한 집안의 다섯째였기에 시집밑천으로 가져올 전답도 기둥도 없었기에 가는 길이 내내 가시밭길이었다. 그러나 남자는 말했다, 우리 집도 지금은 내세울 게 없다고..

그랬기에 아주 반겨주지는 않아도 식은 밥이라도 한 덩이 먹고 올 줄 알았었다. 처음뵈는 시어머니께 무엇을 해서 밥을 차려드려야 하나 생각하면서 이모가 잘한다고 칭찬했던 동태찌개나 나물이라도 무쳐 드려야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여자는 식은 밥은커녕 대문 앞에서 모욕을 당하고 쫓겨나고 말았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길을 덜컹거리는 버스 속애서 어둠을 틈타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데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아무 쓸데도 없는 계집애' '내 아들 앞길을 막는 요사스러운 년'

배가 고파 울었던 아기는 세상에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렸고 여자는 요사스러운 년이 되어 버렸다. 아이가 남자애가 아니라서 그랬을까?! 내 인상이 그렇게 요사스럽게 생겼나?!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고 결국은 만약 이대로 남자가 안 돌아오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여자를 엄습했다.


혼자 서울에 올라온 여자와 아기는 사나흘을 앓아누웠다.

아기는 열이 나고 토하고 설사를 하였고 여자는 으슬으슬 춥고 온몸이 맞은 것처럼 아팠다.

혼자 올라온 여자를 본 이모는 시댁에 가서 어쨌기에 몰골이 이렇게 되었냐고 야단이었고 같이 오지 않은 남자가 불안했는지 자꾸만 대문 밖을 나가보았다.

앓고 난 여자는 아기를 보면서 남자를 기다렸다.

초조함과 불안감에 그 잘자던 잠이 달아나고 조그만 기척에도 벌떡벌떡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내 다보 기를 한 달 동안이나 한 후에 남자는 초췌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남자는 여자에게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말도 왜 늦었는지에 대해서도 시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도...

남자는 굳게 입을 다물고 여자가 차려주는 밥을 먹고 쌔근쌔근 자는 아이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잠이 들었다.

설거지를 하고 들어와 보니 잠든 남자, 그 남자를 보며 여자는 알 수 없는 헛헛함과 벽을 느꼈다.

마냥 행복할 줄 알았던 남자와 여자의 삶은 그렇게 망망대해로 떠나는 일엽편주가 되었다.

남자 옆에 여자, 여자 옆에 아기를 눕혔던 그전과 다르게 여자는 아이를 가운데 두고 남자를 바라보고 누웠다. 한 달 만에 돌아온 남자는 그녀에게 팔베개를 해주지도 않았고 더듬더듬 가슴을 만지지도 않고 세상모르게 곯아떨어졌다.

여자도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잠이 들었다.

그리고 그 밤, 여자는 내용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혼잡하고 어두운 꿈속을 헤매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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