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 발인재판: 삶의 증거들
입관재판이 끝나고 소나무 관이 정해지자, 곧바로 두 번째 재판이 시작되었다. 운구차는 여전히 장례식장 밖에서 대기 중이었고, 조문객들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아니, 앉은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았다. 대부분은 여전히 복도에서 담소를 나누거나 식사를 하고 있었다.
"지금부터 장례절차 제5부 2025-1호 발인재판에 대한 심리를 시작하겠습니다."
판사의 목소리가 재판정에 울렸다.
"본 재판은 피고의 생전 행적을 증거자료로 제출받아 심리합니다. 제출된 모든 증거를 검토하는 데 1일 하고도 반나절이 소요될 것이며, 검토가 완료되면 피고의 죄질을 판단하여 발인 기간을 결정합니다."
스크린에 '발인 기간'이라는 글자가 떴다. 그 아래 작은 글씨로 설명이 이어졌다.
'발인 기간: 고인이 운구차에 실린 채로 화장터로 향하기까지 운구차 안에서 보내야 하는 기간. 죄질이 무거울수록 길어진다.'
윤 변호사는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운구차 안에서. 좁고 어두운 그곳에서 며칠을 보낸다는 것.
"증거 제출을 시작하겠습니다."
검사가 일어서며 첫 번째 서류 뭉치를 들어 올렸다.
"첫째 날 오전 심리를 시작합니다."
첫째 날 오전
"증거 제1호, 피고의 성과 보고서를 제시합니다."
공중에 여러 장의 문서가 떠올랐다. 엑셀 표, 그래프, 알 수 없는 검은 화면의 여러 코드들. 제빈의 3년간 회사 생활이 숫자로 정리되어 있었다.
'2023년 목표 달성률: 127%' '2024년 프로젝트 성공률: 95%' '만족도 점수: 4.8/5.0'
뒤편에서 누군가 감탄하는 소리가 들렸다.
"오, 제빈이 일 잘했네."
하지만 검사는 그래프 옆의 작은 글씨들을 확대했다.
'평균 퇴근 시간: 오후 9시 32분' '주말 근무 일수: 연간 50일' '잔여 연차 일수: 10일'
"피고는 성과를 위해 자신을 혹사했습니다."
검사가 말했다.
"그리고 그 기준을 타인에게도 강요했습니다."
"증거 제2호, 후배 직원의 이메일입니다."
새로운 화면이 떠올랐다.
제목: '감사 인사'
'제빈 매니저님, 그동안 많이 배웠습니다. 매니저님 덕분에 제가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힘들 때도 있었지만, 돌아보니 모두 저를 위한 거였다는 걸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메일은 따뜻했다. 하지만 검사는 이어서 다른 증거를 제시했다.
"증거 제3호, 상사의 인사 평가서입니다."
'윤제빈 - 업무 능력: 우수 / 성과: 탁월 종합 의견: 예민하고 까다로운 면이 있으나, 결과는 확실하게 냄. 다만 동료들과의 관계에서 유연성이 부족함.'
"피고는 일은 잘했지만, 사람은 힘들게 했습니다."
검사가 서류를 내려놓았다.
조문객 한 명이 고개를 끄덕이며 옆 사람에게 속삭였다.
"그래도 능력은 있었네."
"증거 제4호, 피고의 SNS 계정입니다."
이번엔 밝은 사진들이 떠올랐다. 친구들과 손을 들고 웃는 모습. 제주도 바다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 고깃집에서 소주잔을 든 제빈. 등산복을 입고 정상에서 엄지를 치켜든 모습. 사진 속 제빈은 항상 웃고 있었다.
"피고는 대외적으로 밝고 활발한 사람이었습니다."
검사가 말했다.
"증거 제5호, 단체 채팅방 대화 내용입니다."
채팅 로그가 스크린에 펼쳐졌다.
'민수: 야 제빈아 이번 주 언제 놀아'
'제빈: ㅋㅋ 몰라 이번 주 마감주라 시간 없어'
'민수: 얜 항상 마감이래'
'제빈: ㅋㅋㅋ 미안 곧 연락할게'
'지훈: 제빈아 오늘 번개 할래?'
'제빈: 형 미안 이번 주 공고 마감주라 다른데 시간 못써'
'지훈: 알았어 담에 보자'
대화들은 가벼웠다. 농담도 섞여 있었고, 이모티콘도 많았다. 뒤편에서 한 조문객이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증인 나오십시오."
한 청년이 증인석으로 걸어 나왔다. 서른 초반쯤 되어 보이는 남성이었다.
"증인은 피고와 어떤 관계입니까?"
"대학교 때 같이 여행 다니던 메이트였습니다."
"피고에 대해 한마디 해주십시오."
청년은 잠시 제빈의 영정사진을 바라보았다.
"걔는... 인생 2회 차 산 거 같았어요."
"무슨 뜻입니까?"
"뭐랄까, 또래보다 훨씬 성숙했달까요. 저보다 동생이었는데, 처음 간 해외여행지에서도 동선도 제빈이가 다 짜고, 맛집도 찾아두고, 문제 생기면 바로바로 해결하고. 우리가 그냥 따라가기만 하면 됐어요. 되게 의지됐죠."
청년이 작게 웃었다.
"근데 가끔은 좀... 피곤하기도 했어요. 항상 계획대로 가야 하니까. 그래도 좋은 친구였어요."
"감사합니다. 들어가셔도 됩니다."
청년이 증인석을 내려왔다. 지나가며 영정사진에 잠깐 눈길을 주었다. 윤 변호사는 조용히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인생 2회 차. 그 말이 묘하게 마음에 걸렸다. 판사가 말했다.
"첫째 날 오전 심리를 마칩니다. 1시간 후 오후 심리를 시작하겠습니다."
첫째 날 오후
재판정이 다시 열렸을 때, 조문객의 수는 더 줄어 있었다. 점심시간이 지나자 몇몇은 아예 돌아간 듯했다. 남은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거나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첫째 날 오후 심리를 시작합니다."
검사가 새로운 증거를 꺼냈다.
"증거 제6호, 피고의 전 연인이 남긴 편지입니다."
편지가 공중에 펼쳐졌다. 손글씨였다.
'제빈아,
너는 좋은 사람이었어. 정말로.
하지만... 내가 원한 연애는 이런 게 아니었어.
난 그냥 편하게, 느리게, 때론 게으르게도 사랑하고 싶었는데, 너는 연애에서도 성장을 원했잖아. 우리가 함께 더 나은 사람이 되자고 했지.
처음엔 좋았어. 너랑 있으면 내가 발전하는 것 같았으니까.
근데 어느 순간부터 숨이 막혔어. 쉬고 싶은데 쉴 수가 없었어. 너의 기대가 무거웠어.
미안해. 그리고 고마웠어.
잘 지내.'
편지가 사라졌다. 장례식장은 여전히 웅성거렸지만, 윤 변호사는 그 편지를 눈으로 쫓고 있었다.
"증거 제7호, 피고의 후배 직원이 동료에게 보낸 메시지입니다."
카카오톡 대화창이 떠올랐다.
'후배: 제빈님 요즘 왜 저래? 좀 심한 거 아냐''동료: 무슨 일 있어?'
'후배: 아까 회의 때 나한테 또 쏘아붙이더라 ㅠㅠ 진짜 스트레스'
'동료: ㅋㅋㅋ 제빈님 가끔 시니컬해질 때 있잖아'
'후배: 에휴... 오늘 스크럼도 가기 싫다'
메시지는 짧았지만, 날짜가 찍혀 있었다.
2024년 11월. 얼마 전이었다.
"증거 제8호, 피고 가족의 통화 기록입니다."
이번엔 통화 목록이 떠올랐다.
'엄마 → 제빈: 부재중 (11월 3일)'
'엄마 → 제빈: 통화 1분 40초 (11월 10일)'
'아빠 → 제빈: 부재중 (11월 15일)'
'엄마 → 제빈: 부재중 (11월 22일)'
그리고 문자 메시지 하나.
'엄마: 제빈아 요즘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돼? 바쁜 거 알지만 엄마 아빠 걱정된다. 밥은 잘 먹고 다니는 거지? 주말에 집에 한번 와'
답장은 없었다. 뒤편에서 누군가 한숨을 쉬었다. 어머니로 보이는 여성이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고 있었다.
"피고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주고, 또 스스로 고립되었습니다."
검사가 말했다.
"완벽을 추구했지만, 그 과정에서 사람들을 잃었습니다."
윤 변호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반박할 수 없었다. 증거들은 사실이었으니까. 조문객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어린아이가 보채는 소리가 복도에서 들렸다.
"첫째 날 오후 심리를 마칩니다. 내일 오전 9시에 재개하겠습니다."
판사의 망치 소리가 울렸다. 장례식장은 서서히 비어갔다. 밤이 되었고, 몇몇 가족들만 빈소를 지켰다. 편백나무 관은 조용히 그 자리에 놓여 있었다. 윤 변호사는 재판정을 떠나지 않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오늘 본 증거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성과 보고서. 밝은 SNS 사진들. 연인의 편지. 부재중 전화들. 그는 자신의 핸드폰을 꺼냈다. 통화 목록을 열었다.
'엄마 → 나: 부재중 (어제)'
문자함을 열었다.
'엄마: 요즘 왜 이렇게 바빠? 건강 챙겨'
답장은 하지 않았다.
변호사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제빈의 영정사진을 바라보았다.
"나도..."
말을 끝맺지 못했다.
둘째 날 오전
다음 날 아침, 장례식장은 다시 사람들로 채워졌다. 어젯밤 집에 갔던 조문객들이 돌아왔고, 새로운 얼굴들도 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재판에 집중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둘째 날 오전 심리를 시작하겠습니다."
판사의 목소리가 울렸다.
"오늘은 피고가 혼자였던 순간들에 대한 증거를 검토합니다."
검사가 일어섰다. 그의 손에는 새로운 서류가 들려 있었다.
"증거 제9호, 피고의 교보문고 구매 기록을 제시합니다."
스크린에 구매 내역이 떠올랐다.
'2024.10.15 02:34 - 『관계의 기술』 구매 완료'
'2024.10.23 01:47 - 『완벽주의를 버리는 법』 구매 완료'
'2024.11.08 03:12 - 『혼자여도 괜찮아』 구매 완료'
'2024.11.19 02:15 - 『감정 조절의 심리학』 구매 완료'
구매 시간이 모두 새벽이었다.
조문객 몇몇이 스크린을 올려다보았다. 한 명이 작게 중얼거렸다.
"저 시간에 책을 사?"
검색 기록도 함께 떠올랐다.
'리더십', '소통 방법', '외로움 극복', '대인관계 개선', '성장 멈춤'
"피고는 잠 못 이루는 밤마다 답을 찾으려 했습니다."
검사가 말했다.
"하지만..."
화면이 바뀌었다. 배송 완료 목록. '배송 완료: 12권' '리뷰 작성: 0건' 그리고 제빈의 서재 사진 한 장.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검사의 목소리가 차가웠다. 장바구니 항목도 보였다.
'느리게 살기』 - 장바구니 담김'
'멈춰도 괜찮아』 - 장바구니 담김'
사고 싶었지만 사지 않은 책들. 아니, 살 수 없었던 책들. 윤 변호사는 스크린을 바라보며 미간을 찔렀다. 새벽 2시, 3시. 그 시간에 책을 검색한다는 것은...
'잠을 못 잤다는 거잖아.'
뒤편에서 육개장 그릇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증거 제10호, 피고의 인터넷 검색 기록입니다."
이번에도 시간대가 표시되어 있었다.
'2024.11.03 02:17 - 좋은 리더가 되는 법'
'2024.11.03 02:34 - 관계 개선 방법'
'2024.11.10 03:05 - 왜 나는 사람들과 멀어질까'
'2024.11.15 02:48 - 외로움'
마지막 검색어가 화면에 크게 떠올랐다.
'외로움'
검색 결과도 함께 보였다. 블로그, 심리학 기사, 상담 센터 링크. 하지만 클릭한 흔적은 없었다. 검색만 하고 아무것도 누르지 않았다. 조문객 중 한 명이 하품을 했다.
"증거 제11호, 피고가 SNS에 올리지 않은 사진들입니다."
새로운 사진들이 떠올랐다. 이번엔 밝지 않았다. 빈 사무실. 환한 형광등 아래 혼자 앉아 있는 제빈의 뒷모습. 시계는 밤 11시 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편의점 도시락.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김치찌개와 밥. 테이블 위엔 노트북과 서류들. 혼자 먹는 저녁이었다. 새벽 귀갓길. 인적 없는 거리를 걷는 제빈. 가로등 불빛만이 그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렸다. 창밖 풍경. 새벽 4시쯤 되어 보이는 어두운 하늘. 창문에 비친 제빈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였다. 사진 속 제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이 사진들은 단 한 번도 업로드되지 않았습니다."
검사가 말했다.
"피고는 밝은 모습만 세상에 보여주고, 어두운 순간은 혼자 간직했습니다."
장례식장 한쪽에서 어린아이가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의 웃음소리가 재판정까지 울려왔다.
윤 변호사는 사진들을 하나하나 바라보았다. 빈 사무실, 편의점 도시락, 새벽 거리.
'나도 이런 사진 있는데.'
그는 자신의 핸드폰 갤러리를 떠올렸다. SNS에 올리지 않은 사진들. 혼자 먹은 저녁들. 야근하던 밤들.
"증거 제12호."
검사의 목소리에 변호사가 고개를 들었다.
임시보관함에는 총 7개의 메시지가 있었다. 모두 작성만 하고 지워버린 것들. 후배에게, 친구에게, 선배에게. 하고 싶었던 말들.
'미안해' '보고 싶어' '힘들다' '외롭다'
하지만 전송 버튼은 한 번도 눌리지 않았다.
윤 변호사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가슴이 답답했다.
그는 자신의 핸드폰을 꺼냈다. 메시지 앱을 열었다. 임시보관함을 눌렀다.
5개의 메시지가 있었다.
'엄마: 미안해 요즘 바빠서... (미발송)'
'후배: 오늘 내가 좀 심했지... (미발송)'
'친구에게: 오랜만에 만나자... (미발송)'
변호사는 핸드폰 화면을 끄려다 말고 다시 스크린을 올려다보았다.
제빈의 임시보관함이 여전히 떠 있었다. 보내지 못한 말들이 화면에 가득했다.
"나도..."
그는 중얼거렸다.
"나도 그랬는데."
뒤편에서 조문객들이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누군가는 커피를 마시고, 누군가는 명함을 주고받았다. 한 사람의 고독한 순간들이 공개되고 있는데,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검사가 서류를 덮었다.
"피고는 혼자였습니다. 많은 사람에 둘러싸여 있었지만, 결국 혼자였습니다."
재판정에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아니, 재판정만 조용했다. 장례식장은 여전히 시끄러웠다. 윤 변호사는 피고인석에 선 채 제빈의 영정사진을 바라보았다. 환하게 웃고 있는 스물여덟 살 청년. 하지만 이제 그 웃음 뒤에 무엇이 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 새벽 2시에 검색한 '외로움'이라는 단어. 한번 읽어만 보고 다시는 읽지 않은 책 12권. 보내지 못한 메시지 7개. SNS에 올리지 않은 사진들. 변호사는 자신의 핸드폰을 다시 내려다보았다. 임시보관함에 있는 5개의 메시지.
'나도 보내지 못했지.'
"둘째 날 오전 심리를 마칩니다."
판사의 목소리가 울렸다.
"오후 2시에 최종 판결을 선고하겠습니다."
판결
오후 2시. 재판정은 다시 열렸다. 조문객의 수는 아침보다 더 줄어 있었다. 점심을 먹고 돌아오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다. 판사 세 명이 심판대에 앉았다. 가운데 판사가 서류를 펼쳤다.
"지금부터 장례절차 제5부 2025-1호 발인재판 판결을 선고합니다."
스크린에 판결문이 떠올랐다.
"본 재판부는 1일 하고도 반나절에 걸쳐 피고의 생전 행적을 심리했습니다. 제출된 증거를 종합하여 피고의 죄질을 판단하겠습니다."
판사가 잠시 멈췄다.
"원고 측, 의견 진술하십시오."
검사가 일어섰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피고는 이기적으로 살았습니다. 자신의 기준을 타인에게 강요했고, 관계에서 상처를 주었으며, 결국 스스로를 고립시켰습니다. 원고는 피고에게 14일간의 긴 발인 기간을 요청합니다."
검사가 앉았다.
"피고 측, 의견 진술하십시오."
윤 변호사가 천천히 일어섰다. 그는 잠시 영정사진을 바라보았다.
"재판장님."
그의 목소리는 어제보다 조금 떨렸다.
"피고는 고독했습니다. 완벽을 추구했고, 성장을 갈망했으며, 타인에게도 그것을 원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실수했고, 상처를 주었습니다."
변호사가 잠시 말을 멈췄다.
"하지만 피고는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새벽마다 답을 찾으려 했고, 보내지 못한 사과들을 작성했으며, 스스로를 돌아보려 애썼습니다."
그는 자신의 핸드폰을 떠올렸다. 임시보관함에 있는 메시지들.
"피고의 의도는 선했습니다. 비록 방법이 서툴렀을지라도. 피고 측은 1일간의 짧은 발인 기간을 요청합니다."
변호사가 앉았다.
재판정이 조용해졌다. 판사들이 서로 고개를 맞대고 속삭였다. 뒤편에서는 여전히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판결합니다."
판사의 목소리가 울렸다.
"피고 윤제빈에게 3일간의 발인 기간을 명합니다."
3일.
짧지 않은 기간이었다. 뒤편에서 누군가 속삭였다.
"3일이나 운구차 안에..."
"그래도 일주일보다는 낫지."
"피고는 완벽을 추구했으나 완벽하지 못했고, 관계를 소중히 여겼으나 관계에서 서툴렀으며, 혼자가 아니길 바랐으나 결국 혼자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의도는 악하지 않았음을 인정합니다."
판사가 서류를 덮었다.
"3일간 운구차에 안치된 후 화장터로 향할 것을 명합니다."
작은 망치 소리가 울렸다. 재판정 밖에서 운구차 문이 열렸다. 직원들이 들어와 편백나무 관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관은 천천히 운구차에 실렸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둔탁했다. 운구차는 떠나지 않았다. 3일 동안 저 안에 그대로 있을 것이었다. 조문객 몇몇이 일어나 밖으로 나가 운구차를 바라보았다.
"저기서 3일을..."
"쉿, 조용히 해."
대부분은 여전히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윤 변호사는 혼자 재판정에 남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운구차를 바라보았다. 좁고 어두운 차 안. 3일 동안.
여운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재판정은 텅 비었다. 윤 변호사는 의자에 앉아 빈 공간을 바라보았다. 증거자료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성과 보고서가 먼저 재가 되어 흩어졌다. SNS 사진들도, 밝게 웃던 제빈의 모습도 모두 타들어갔다. 교보문고 구매 기록이 사라졌다. 새벽 2시에 산 책들, 읽지 못한 12권의 책들. 검색 기록도 지워졌다. '외로움'이라는 단어가 마지막으로 흐릿해지며 사라졌다. 보내지 못한 메시지들도 하나씩 타올랐다. '미안해', '외롭다', '보고 싶어'. 전송되지 못한 말들이 재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SNS에 올리지 않았던 사진들이 사라졌다. 빈 사무실, 편의점 도시락, 새벽 거리. 혼자였던 순간들이 모두 사라졌다. 그리고 남은 것은.
제빈의 영정사진뿐이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스물여덟 살 청년. 변호사는 생각했다.
'살면서 남는 건 이런 것들뿐인가.'
그 많던 고민들도, 보내지 못한 말들도, 읽지 못한 책들도, 새벽의 외로움도 모두 사라지고. 남는 건 결국 웃고 있는 사진 한 장.
'결국 아무도 몰랐던 거네.'
변호사는 자신의 핸드폰을 다시 꺼냈다. 임시보관함을 열었다.
5개의 메시지가 여전히 거기 있었다.
그는 첫 번째 메시지를 눌렀다.
'엄마에게: 미안해 요즘 바빠서...'
전송 버튼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하지만 누르지 못했다.
창밖으로 운구차가 천천히 멀어지는 게 보였다. 3일 후 화장터로 향할 관을 실은 차.
변호사는 운구차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나도 죽으면..."
말을 끝맺지 못했다.
그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재판정을 떠났다. 복도는 조용했다. 조문객들은 모두 돌아갔고, 장례식장엔 가족들만 남아 있었다.
변호사는 출구를 향해 걸었다.
밖은 여전히 평범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