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 화장재판: 타인의 평가
3일이 지났다.
운구차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좁고 어두운 차 안에서 3일을 보낸 소나무 관이 화장터로 향했다. 납골당 건물 뒤편, 굴뚝이 보이는 곳. 운구차는 그곳에 멈춰 섰다. 조문객들이 하나둘 도착했다. 3일 전보다 훨씬 적은 수였다. 입관재판 때 백여 명이 넘었던 인원은 이제 스무 명 남짓. 발인재판 때 돌아갔던 사람들은 다시 오지 않았다.
하지만 분위기는 달랐다.
처음으로 장례식장이 조용했다. 웃으며 악수를 나누는 사람도, 육개장을 먹는 소리도, 명함을 주고받는 소리도 없었다. 사람들은 그저 묵묵히 화장터 앞에 섰다. 운구차에서 관이 내려졌다. 직원들이 조심스럽게 관을 화장로 앞으로 옮겼다. 그 옆에는 제빈의 물건들이 담긴 상자 여러 개가 놓여 있었다. 판사 세 명이 들어왔다. 여전히 회색 법복을 입고 있었지만, 표정은 이전보다 무거웠다.
"지금부터 장례절차 제5부 2025-1호 화장재판에 대한 심리를 시작하겠습니다."
판사의 목소리가 화장터에 울렸다.
"본 재판은 조문객들의 평가로 피고의 최종 안치 장소를 결정합니다."
스크린에 설명이 떠올랐다.
'화장재판: 조문객들이 고인의 물건을 하나씩 불에 태우며 그 물건에 얽힌 기억을 말합니다. 그 말들이 불꽃의 색을 결정하며, 최종 불꽃 색으로 납골당 안치 위치가 정해집니다.'
아래 작은 글씨로 색의 의미가 적혀 있었다.
'빨강: 분노, 원망 / 파랑: 슬픔, 그리움 / 노랑: 감사, 기쁨 / 검정: 후회, 미안함 / 흰색: 축복, 평안'
사람들은 스크린을 올려다보았다.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첫 번째 물건을 가져오십시오."
판사의 말에 한 청년이 앞으로 나왔다. 스물다섯쯤 되어 보이는 남성이었다. 그의 손에는 사진 한 장이 들려 있었다.
MT 사진이었다.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산속 펜션 앞에서 손을 들고 웃고 있었다. 가운데 제빈이 보였다. 환하게 웃는 얼굴.
"이게 뭡니까?"
판사가 물었다.
"동아리 MT 갔을 때 찍은 사진이에요. 제빈 선배가 본부장이었거든요."
청년이 사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선배가 계획 다 짜고, 예산 관리하고, 운전도 하고... 우리는 그냥 따라가기만 하면 됐어요."
청년이 작게 웃었다.
"MT 게임할 때는 지면 진짜 재밌어했어요. 벌칙 술도 제일 맛있게 마시고. 그때도 바쁘게 살았는데, 그래도 행복해 보였어요."
청년이 사진을 화장로에 넣었다. 사진이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불꽃이 일어났다.
노란색.
따뜻하고 밝은 불꽃이 공중으로 올라갔다. 조문객들이 그 불꽃을 바라보았다.
"다음 물건."
두 번째로 나온 사람은 서른 초반의 남성이었다. 그의 손에는 낡은 팔찌가 들려 있었다. 천으로 만든, 색이 바
랜 팔찌.
"이건 뭡니까?"
"유럽여행 갔을 때 다 같이 맞췄던 팔찌예요. 지금은 다들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남성이 팔찌를 만지작거렸다.
"낮에는 각자 놀고 밤에는 항상 제빈이 방에서 모였어요. 그러면서 다음 계획은 없이 가고 싶은 곳으로 가고."
그가 잠시 멈췄다.
"그때가 제일 행복해 보였어요. 제빈이."
팔찌가 불에 들어갔다. 이번엔 두 가지 색이 올라왔다.
노란색과 파란색.
기쁨과 그리움이 섞인 불꽃. 노란 불꽃 옆으로 파란 불꽃이 피어올랐다.
윤 변호사는 불꽃을 바라보았다. 3일 전 이 사람이 증언석에 섰을 때가 떠올랐다. "인생 2회 차 산 거 같았어요"라고 했던 그 말.
"다음."
세 번째로 이십 대 후반의 남학생이었다. 대학생처럼 보였다. 그의 손에는 책 한 권이 들려 있었다.
『혼자여도 괜찮아』자기계발서였다. 책등이 한 번도 펴지지 않은 듯 깨끗했다.
"제빈 선배 휴학했을 때 이 책들 엄청 샀대요."
남학생이 말했다.
"근데 다 안 읽었대요. 방황했다고 하더라고요."
그가 책을 펼쳤다. 페이지는 새것처럼 하얬다.
"그 얘기 들었을 때 선배도 헤매는구나 싶었어요. 항상 확신에 차 보였는데."
책이 불에 들어갔다. 페이지가 한 장씩 타들어가며 재가 되었다.
검은색 불꽃.
후회와 공감의 색. 어둡지만 차갑지 않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윤 변호사는 그 불꽃을 보며 생각했다. 발인재판 때 봤던 교보문고 구매 기록. 새벽 2시, 3시에 산 책들. 읽지 못한 12권의 책들.
'결국 답을 찾지 못했구나.'
"다음."
다섯 번째로 나온 사람은 이십 대 후반의 여성이었다. 회사원처럼 보였다. 그의 손에는 노트북이 들려 있었다.
회사 노트북. 스티커가 몇 개 붙어 있었다.
"이 노트북으로 제게 일 가르쳐주셨어요."
그가 노트북을 쓰다듬었다.
"매뉴얼 만들어주시고, 실수하면 혼내시고."
그녀가 작게 웃었다.
노트북이 불에 들어갔다. 플라스틱이 녹는 냄새가 났다.
노란색과 검은색.
감사와 미안함. 두 색이 나란히 타올랐다.
뒤편에서 누군가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다음."
여섯 번째는 삼십 대 남성이었다. 정장을 입고 있었다. 제빈의 상사로 보였다. 그의 손에는 사원증이 들려 있었다. 제빈의 얼굴이 박힌 회사 출입증.
"3년 동안 달고 다닌 거죠."
상사가 사원증을 바라보았다.
"능력 있는 친구였어요. 근데 너무 자기한테 엄격했죠."
그가 한숨을 쉬었다.
"다른 사람한테도 그랬고. 좀만 여유 있게 살았으면..."
말을 끝맺지 못하고 사원증을 불에 넣었다.
빨간색과 흰색.
아쉬움과 축복. 상반된 두 색이 함께 타올랐다.
윤 변호사는 가만히 불꽃을 바라보았다. 지난 3일간 본 제빈의 모습들이 스쳐 지나갔다.
입관재판에서 본 본질. 완벽을 추구했지만 완벽하지 못했던 사람.
발인재판에서 본 고독. 많은 사람에 둘러싸여 있었지만 결국 혼자였던 사람.
그리고 지금, 화장재판에서 보는 평가들. 감사와 미안함, 그리움과 후회가 뒤섞인.
"다음."
일곱 번째로 나온 사람은 오십 대 여성이었다.
제빈의 어머니.
그녀의 손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손에 든 것은 편의점 도시락 용기였다. 플라스틱 용기. 김치찌개 도시락이었던 것으로 보였다.
"애가..."
어머니의 목소리가 떨렸다.
"혼자 먹었던 거예요."
그녀가 도시락 용기를 가슴에 안았다.
"집에 오면 밥 해줄 텐데. 전화하면 항상 바쁘다고."
눈물이 떨어졌다.
"마지막으로 같이 밥 먹은 게 언제였는지..."
어머니가 울음을 참지 못했다. 옆에 있던 아버지가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
"미안해. 제빈아. 엄마가... 엄마가..."
도시락 용기가 불에 들어갔다.
그 순간.
모든 색의 불꽃이 동시에 타올랐다.
빨강, 파랑, 노랑, 검정, 흰색. 다섯 가지 색이 한꺼번에 솟아올랐다. 불꽃은 다른 때보다 훨씬 크고 높았다.
조문객 모두가 불꽃을 올려다보았다. 누군가는 눈물을 닦고, 누군가는 고개를 숙였다. 윤 변호사는 그 불꽃을 보며 가슴이 먹먹해졌다.
'나도...'
그는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렸다. 부재중 전화. 답하지 않은 문자.
'엄마: 요즘 왜 이렇게 바빠? 건강 챙겨'
"마지막 물건입니다."
판사의 목소리에 변호사가 고개를 들었다.
"윤 변호사, 나오십시오."
변호사가 멈칫했다. 판사가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피고의 마지막 물건을 태워주십시오."
직원이 변호사에게 무언가를 건넸다.
핸드폰이었다.
제빈의 핸드폰.
변호사는 핸드폰을 받아 들었다. 화면이 켜져 있었다. 임시보관함이 열려 있었다.
7개의 메시지.
'후배에게: 미안해, 내가 너무 심했어...'
'친구에게: 요즘 외롭다. 술 한잔할래?...'
'엄마에게: 미안해 요즘 바빠서...'
모두 보내지 못한 것들.
변호사는 핸드폰을 꽉 쥐었다.
"보내지 못한 말들이 여기 있네요."
그가 중얼거렸다. 변호사는 천천히 화장로 앞으로 걸어갔다. 불꽃이 여전히 타오르고 있었다. 모든 색이 뒤섞여 있었다. 그는 핸드폰을 불 위에 올렸다.
"당신은..."
변호사의 목소리가 떨렸다.
"완벽하려 했지만, 완벽하지 못했고."
핸드폰이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사람들과 함께하려 했지만, 결국 혼자였습니다."
화면이 꺼졌다. 임시보관함의 메시지들이 사라졌다.
"하지만..."
변호사의 눈가가 뜨거워졌다.
"당신은 노력했습니다."
핸드폰이 완전히 불에 휩싸였다. 그리고 새로운 불꽃이 올라왔다.
흰색.
순백의 불꽃. 다른 어떤 색보다 밝고 고요한 불꽃이 피어올랐다. 변호사는 그 불꽃을 바라보며 눈물을 참지 못했다. 조문객들도 고개를 들어 불꽃을 바라보았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다만 그 불꽃을 지켜볼 뿐이었다.
판결
모든 물건이 타들어갔다. MT 사진, 여행 팔찌, 카드지갑, 자기계발서, 노트북, 사원증, 도시락 용기, 핸드폰.
제빈의 스물여덟 해가 재가 되었다. 불꽃들이 하나로 합쳐졌다. 빨강, 파랑, 노랑, 검정, 흰색. 다섯 가지 색이 뒤엉켜 타올랐다. 불꽃은 시시각각 색을 바꿨다.
빨강에서 파랑으로.
파랑에서 노랑으로.
노랑에서 검정으로.
검정에서 흰색으로.
그리고 다시 모든 색이 섞였다.
판사들이 불꽃을 바라보았다. 오랜 시간이 흘렀다. 불꽃은 점점 약해졌고, 색도 옅어졌다.
마침내 불꽃이 하나의 색으로 정착했다.
회색빛 흰색.
완전히 하얗지도, 완전히 어둡지도 않은 색. 평범한 색.
판사가 입을 열었다.
"판결합니다."
스크린에 판결문이 떠올랐다.
"피고 윤제빈의 최종 불꽃 색은 회색빛 흰색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판사가 잠시 멈췄다.
"중층 북쪽에 안치를 명합니다."
중층 북쪽.
특별히 좋은 위치도, 나쁜 위치도 아니었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햇빛이 잘 들지도 그늘지지도 않은, 평범한 위치. 조문객 몇몇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나쁘진 않네."
"중층이면 괜찮은 거지."
작은 망치 소리가 울렸다. 화장이 시작되었다. 소나무 관이 화장로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혔다.
조문객들은 하나둘 자리를 떠났다. 할 일을 다 마친 듯.
화장이 끝났다.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지 알 수 없었다. 윤 변호사는 화장터 밖 벤치에 앉아 있었다. 조문객들은 모두 떠났고, 납골당은 고요했다. 아니, 조문객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들은 프로그램 참가자들이었다. 자신처럼 3일간 '나의 장례식'을 체험하러 온 사람들. 직원이 나왔다.
"다 끝났습니다."
그의 손에는 작은 유리틀이 들려 있었다. 그 안에 하얀 항아리가 담겨 있었다. 변호사는 천천히 일어섰다. 직원이 유리틀을 건넸다.
"중층 북쪽입니다. 직접 안치하시겠어요?"
"네."
변호사는 유리틀을 받아 들었다. 생각보다 가벼웠다.
'3일간 태운 내 물건들이 이 안에 있구나.'
그는 납골당 안으로 들어갔다.
1층, 2층, 3층. 층마다 수백 개의 작은 칸들이 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비어 있었다. 이곳은 실제 납골당이 아니라 프로그램을 위한 공간이었으니까. 중층. 3층이었다. 남쪽으로 걸어갔다. 창문 너머로 오후 햇살이 비쳤다.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빛. 빈 칸 하나가 보였다. 변호사는 그 앞에 섰다.
유리틀을 조심스럽게 칸 안에 넣었다. 항아리가 제자리에 안착했다. 직원이 다가와 영정사진을 꺼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스물여덟 살 청년. 프로그램 시작 전에 제출했던 사진. 언제 찍었는지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 사진. 그저 SNS에 올렸던 수많은 사진 중 하나. 사진이 유리틀 앞에 붙여졌다. 그리고 쪽지들이 하나씩 붙여지기 시작했다.
프로그램 신청 시 실제 지인들에게 요청했던 익명의 쪽지들. 봉인된 채로 전달받았던 것들. 아직 읽지 못한 쪽지들. 직원이 쪽지 봉투들을 유리틀 옆에 놓았다.
"나중에 읽으실 수 있게 여기 두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름표가 붙여졌다.
검은 바탕에 흰 글씨.
'윤제빈 1998.04.24 - 2026.01.25'
변호사는 이름표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자신의 이름.
자신의 생년월일.
그리고 2026년 1월 25일.
오늘 날짜.
만약 정말 죽는다면, 이렇게 기억될 것이다. 중층 남쪽. 특별히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곳. 회색빛 흰색 불꽃. 평범한 평가. 변호사는 쪽지 봉투들을 집어 들었다. 7개의 봉투. 떨리는 손으로 첫 번째 봉투를 뜯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