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런던에 온 이유

설레는 게 뮤지컬이라

by 조헌주

마음속에 항상 로망(roman)처럼 있는 것이 있었다. 로망이라고 하면, 원래는 낭만을 뜻하지만, 우리에겐 꿈이나 소망을 말할 때 쓰이는 말이기도 하다. 아무리 억제하려고 해도 억제되지 않고, 잊히지 않는 그런 소원!

나에게 로망은 해외에서 오래 살아보는 것이었다. 바쁘게 다니는 여행 말고, 원하는 곳에서 오래 머물면서 현지인처럼 살아보는 것! 그곳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있으면 더욱 좋고! 그리고 그건 바로 ‘뮤지컬’이었다.


보다 현실적으로 되고, 안정적인 직업을 갖기 위해 노력해야 할 시기라고도 할 수 있는 때, 난 오히려 불완전한 삶을 선택했다. 뮤지컬 창작에 관해 전반적으로 배우고, 공연까지 마치면서 학업은 끝났다. 그런데 또 남모를 갈증이 있었다.


뮤지컬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두 곳 영국 런던과 미국 뉴욕은 어린 시절부터 내 맘속에 자리 잡고, 언젠가 가게 될 거라고 되뇌었다. 그리고 그 첫 발걸음을 영국으로 내디뎠다.


어쩌다 ‘예술’이라는 학문을 배우게 되고, 그 길로 들어서면서도 온전한 예술가의 삶을 부정했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언제나 내 작품의 ‘창작’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공연되고 있는 작품들을 섭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앞뒤 따지지 않고 이때다 싶어 ‘런던 뮤지컬 관람 원정기’라는 나만의 프로젝트를 세웠다. 런던 생활자로 살면서 최대한 공연되고 있는 많은 공연을 관람하는 것! 그 하나면 목적은 충분했다.


하지만 정작 런던에 오면서 많은 것을 알아보고 오지는 않았다. 시간을 여유 있게 가지고 그때그때 원하는 것을 할 예정이었다. 물가 비싼 영국 그것도 런던에서 목표를 빡빡하게 세우지 않고 온다는 시간도, 돈도 낭비할 경향이 다분히 컸다. 하지만 인생에서 이런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지 않나 한다. 애초부터 뮤지컬을 좋아한다는 거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돈과 시간을 낭비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으니.


평소 생활 속에서 필요하지 않은 것을 사는 것과 선물로 받는 것을 싫어한다. 예를 들면 금방 시드는 꽃과 인형 같은 거 말이다. 선물도 생활에서 꼭 필요한 걸 받는 걸 좋아하는 나인데 그런 나도 남들이 봤을 때 정말 쓸데없는 것에 큰돈을 쓸 때가 있다. 소유에 대한 것보다는 잠깐 보고 없어질 것이라도 내가 경험하고 오감으로 간직할 수 있는 것에 소비하는 편이다.


친구는 꽃을 받는 거를 좋아한다고 하면서 꼭 그게 생활 속에서 쓸모를 가져다주는 물건은 아니어도 두고 보면서 예쁜 것들을 소유하는 권리를 누리자고 말한다. 얼마나 아름답냐고 하면서. 미적 감각이 참 있는 사람이지만, 난 그런 미적 감각을 소유하지도 않고 또 딱히 아름다운 걸 소유하고자 하는 욕심도 감흥도 없다.


다만 내가 생활 속에서 꼭 필요하지 않은 사치를 누리면서 눈을 감고 두고두고 떠올리며 마음을 풍성하게 가져가는 것이 나에게 있어서는 ‘뮤지컬’이다. 명품처럼 눈에 보이는 소유가 아니어도 그 시간에 나와 배우가 호흡하며 그 당시를 추억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에겐 그 어떤 명품보다 값진 시간이고 소비라고 생각한다. 사실 같은 돈을 쓸 때도 물건을 살 때 쓰는 돈은 어쩐지 나랑은 안 어울릴 거 같은 죄책감이 드는 반면, 뮤지컬 표는 비싼 자리라도 값을 치를 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소비만큼은 죄책감이 들지 않는 것이다.

런던에 올 때도 어디에서 묵어야겠다는 자료조사 없이 인맥에 기댄 선택으로 민박집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 민박집 또한 어느 지역에 있는지도 몰랐다. 민박집에서 일어났을 때 나를 제일 먼저 걱정해 준 어머님이 계셨다. 내 또래 정도 되는 딸과 같이 민박집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하루 꼬박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자다가 잠에서 깨어난 나에게 식사를 챙겨 주셨다. 그리고 함께 식사했다.


그 딸은 대학원에 다니기 위해 런던에 왔는데 집 구하기 전에 잠깐 민박집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엄마와 어딜 함께 다녀 본 적이 없는 그런 딸이었다. 친구처럼 티격태격하며 서로를 위하는 모녀가 너무 좋아 보였다. 식사하면서 갑자기 나도 모르게 질문이 나갔다.


“그런데 전공이 뭐예요?”

“공연 연출이요!”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네?”

“그럼, 공연 연출과로 대학원에 가는 거예요?”

“네. 이 민박집 바로 앞에 있는 학교요.”

“거기가 어딘데요?”

“Central speech of Drama!”


아, 내 귀를 다시 한번 의심했다. 그 학교는 내가 만약 영국에서 대학원에 간다면 가야지 생각했던 학교였고, 또 그 학교가 바로 코 앞에 있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그 친구는 아버지가 선교사여서, 어렸을 때부터 아프리카 짐바브웨에서 자랐다고 했다. 대학교는 한국에서 공연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과를 나왔는데 무용이 너무 좋아서 계속하다가 영국 대학원에 공연 연출을 공부하기 위해 지원을 했고, 합격해서 입학한다는 것이다. 정말 신기했다. 이 모든 것이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면 어떤 끌어당김이 있는 것일까? 이 모든 만남과 상황은 앞으로의 영국 생활에 기대하기에 충분했다.


로망을 로망으로 남겨두면 이루지 못한 꿈이 되지만, 용기 내서 한 발짝 내디디면 어떤 길이 펼쳐질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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