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어디, 나는 누구?

설레는 게 뮤지컬이라

by 조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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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눌러봐. 어제부터 저렇게 가만히 있었어. 무슨 일 생긴 거 아니야?”


아스라이 귓가에 들리는 말! 나를 향한 말인 거 같은데, 이거 꿈인 걸까?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눈은 찢어질 것만 같고, 머리는 깨질 것만 같다. 난 누구고, 여긴 어디인 걸까? 영국에 와서 숙소로 찾아온 것까지는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나 짐도 풀지 않고 그대로 이층 침대에 쓰러져 잠이 들었던 거다. 이불속에서 꼼지락 했다.


“아, 움직인다. 움직여.”

나의 움직임을 생중계하는 사람은 누굴까. 이불속에서 빼꼼히 얼굴을 드러내고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어휴! 다행이네. 밥도 안 먹고 하루 종일 누워 있어서 얼마나 걱정했다고.”

“지금 몇 시예요?”

“오전 10시예요.”

아. 전날 오전에 난 영국 히스로 공항에 도착해서 민박집을 찾아왔고, 그리고 꼬박 하루가 지나 있었다. 같은 방을 쓰는 사람들이 걱정할 만도 했다.


이틀 전까지만 해도 난 독일 뮌헨에 있었다. 뮌헨에서 세계 맥주 축제인 ‘옥토퍼 페스트’에 갔다가 밤 기차를 타고 뷔르츠부르크에 갔어야 했다. 뷔르츠부르크에서 영국 런던으로 오는 비행기를 예매해 놓았기 때문이다.

밤늦게 뮌헨에서 뷔르츠부르크로 가는 기차를 탔는데 중간에 독일어로 뭐라 하더니 기차가 움직이지 않았다. 영어 안내 방송도 없어서 영문을 모르고 앉아 있었는데 잠시 뒤 사람들이 다 내리는 것이다. 주변에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도 없어 나도 따라 내렸다. 아무래도 다음에 오는 기차를 타라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그 시간은 자정을 향하는 시간이었고, 계획대로라면 밤에 뷔르츠부르크에 안전하게 도착해 있어야 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독일 현지인뿐, 여행자도 없어 불안했다. 다음 날 새벽에 영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그마저도 탈 수 있을지 몰랐다. 기차는 계속 연착되다가 드디어 왔고,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난 기차를 타고 뷔르츠부르크에 올 수 있었다. 다행히 역에서 숙소까지는 멀지 않았다. 숙소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불은 다 꺼져 있었고, 눈에 넣은 렌즈도 빼지 못한 채 쪽잠을 자다가 난 새벽에 나와 비행기를 탔다.


그리고 런던 민박집에 도착해서 렌즈를 빼고 기절하듯 자다 일어났는데, 눈이 정말 아팠다. 이대로 눈을 못 뜨게 되는 거 아닐까 할 정도의 아픔이었다. 유리가 박혀있는 듯한! 렌즈를 빼다 찢어져 남은 조각이 눈 안에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파서도 눈물이 나고, 갑자기 나도 모를 서러움이 복받쳐 올라 그 틈을 타 핑계로 눈물을 흘렸다.

‘뭐 하자고 이런 고생을 한다니!’

좋을 땐 행복하다가도, 작은 위기와 힘듦에 서러움이 복받친다. 감정이란 참 얄궂다. 0.5cm도 안 되는 찢어진 렌즈 조각으로 온 신경이 곤두서고, 아프고, 감정을 뒤흔들어 놓는다. 어쩌면 우리를 날 서게 만드는 건 큰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것일 수 있다. 그리고 그 작은 게 나를 헤집고 다닐 때는 그 때문에 또 화가 난다는 사실이다.

난 겨우 일어나서 민박집에 있는 다른 여행자들에게 인사를 했다. 저마다 한 마디씩 건넨다. 그리고 살아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한다. 다들 많이 걱정했다고 말하는데 좀 울컥했다. 누가 나를 위해 걱정해 준 게 얼마 만인지! 물리적인 시간으로는 얼마 지나지 않은 거 같은데, 내 마음은 밑바닥까지 찍은 상태였기 때문에 감동이 더했다.


영국 런던에 오기 전 난 한 달을 독일에 있었다. 베를린에서 일주일 동안 일을 했고, 곳곳을 돌아다니며 여행했다. 혼자 여행하면서 베드버그가 걸렸고, 길을 가다가 돈도 잃었다. 이래저래 많이 지친 상태여서 그렇게 기다렸던 영국 땅을 밟았을 때도 별로 감흥이 없었다. 지친 몸을 뉘어야겠다는 생각 밖에는. ‘독일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들을 따라 한국으로 갔어야 했나?’라는 생각도 했지만, 여기서 물릴 순 없었다. 얼마나 기다려 왔던 날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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