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해방촌
“내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 줄 알아?”
“무슨 능력?”
“남자들이 나를 여자로 보지 못하도록 하는 능력. 다 친구로 만들어 버리는 거지.”
남사친을 만나고 있다고 하면 조심하라고 항상 주의를 주는 친구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난 내가 가진 능력에 대해 친구에게 어필한다. 이런 게 뭐 능력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능력은 이성 간에도 신뢰를 바탕으로 한 우정을 가능하게 만들어 준다.
남자와 여자의 관계에서 친구를 지속할 수 있느냐의 문제에 어렸을 때는 지속할 수 없다는 주장을 하곤 했다. 그건 분명히 한쪽에서 좋아하고 있는 마음이 있고, 다른 한쪽은 아닐 경우일 거야 하며 어느 정도의 가능성을 기반으로 해야 남자와 여자 사이에 친구라는 관계의 명목이 유지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남녀 간에 우정은 가능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서로가 남녀로 보지 않을 때. 하지만 서로가 좋은 사람이라고 느낄 때. 나이가 들면서 사람을 보는 안목은 넓게 생기지만, 가까이 품는 사람은 좁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넓고 얕은 인간관계보다는 좁고 깊은 인간관계를 지향한다. 하지만 이것도 사람 성향마다 달라서 정답은 없다.
하지만 나도 20대 때는 얇고 넓은 인간관계를 위해 에너지를 많이 쓰고 다녔다. 나의 20년 지기 친구는 지금도 그때의 나는 항상 약속이 3~4개 있어서 안정감이 없었다고 했다. 난 낯을 가리는 성격이기도 하지만, 또 어느 때는 스스럼없이 친구가 되는 사람이다. 상황과 분위기에 따라 아주 다른 성격을 보인다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과 대화하는 것을 즐기기도 한다.
해방촌에서 볼 수 있는 특이한 문화는 날이 좋으면 외국인들이 맥주를 들고 나와 길거리에서 마신다는 것이다. 그들은 맥주 한 잔을 들고 삼삼오오 모여 서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한다. 보통 여자들이 수다스럽다고 생각하지만 외국인 친구들을 보면서 남자들도 참 수다스럽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안주와 함께 술을 먹는 우리의 문화와는 달리 이들은 술만 마신다. 나도 언제부터인지 이 문화에 적응이 돼서 안주 없이 술만 먹는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가끔 여기를 잘 모르는 친구들이 오면 의아해하기도 한다.
그날도 날이 좋아 외국인들이 길거리 스탠딩 펍으로 대거 출동하였다. 나는 일을 마치고 집으로 오면서 그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이다. 난 이 동네에 살고 있고, 매일같이 걷는 길이지만 또 매일 새롭다. 또 오늘은 어떤 희한한 복장을 한 사람이 내 눈을 즐겁게 해 줄까 생각하면 자연히 두리번거릴 수밖에 없다.
그때 나에게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또렷또렷한 한국어로 말이다. 그런데 내 앞에는 키가 큰 외국인이 서 있다. 지금은 한류 영향이라고 할까, 한국어를 잘하는 외국인들이 TV에도 나오고 많이 있지만 그 당시만 해도 한국어를 하는 외국인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또렷이 들려오는 발음에 호기심을 잃어 난 가던 길을 멈추고 그와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나도 모르게 그의 질문에 대답을 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이름이 뭐냐고 묻는데 그 친구의 이름은 기린이라고 했다. “목이 길어 슬픈 짐승인가.”하고 농담 삼아 말을 했는데 그는 맞다고 했다. 자기가 기린을 닮아서 이름이 기린이라고. 가만 보니 어딘가 모르게 기린과 닮은 것도 같았다.
기린은 해방촌 ‘빈집’이란 곳에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기린은 날 빈집에 초대를 했다. 빈집에는 다양한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었다. 주거 공동체 공간이라 했다.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분담금을 나눠 내면서 함께 생활하는 지금의 셰어하우스와도 같은 개념이었다. 이곳에 모여 사는 사람들은 이주 노동자들도 있었고, 예술가들이 함께 살고 있었다. 기린과 함께 살고 있는 제프란 친구는 환경 보호에 앞장서는 환경 운동가였고, 모두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빈집이 활성화되면서 마을 공동체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카페와 모임 공간이 문을 열었다.
빈집에서 많은 친구들을 만났다. 빈집에 모인 친구들의 대부분은 나눠주는 삶과 공동체적인 삶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빈티지 같은 느낌. 보헤미안 같은 느낌의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는 개성이 강했다. 그곳에서 친구들과 함께 스페인어도 배웠었다. 모든 것은 재능기부 형태로 이루어졌다. 서로가 마음이 맞아서, 그게 좋아서 만나는 것이었다. 그렇게 뜻이 맞는 사람들이 다양한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여서 청춘에 대해 고민하고 삶에 대해 고민하고 더 나은 세상은 못 만들지라도 지금 있는 곳에서의 더 나은 삶을 만들어 보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보였다. 겉으로는 개성이 강한 사람들이 마음이 약한 경우가 많다. 내 인상이 그렇다. 처음에 사람들이 무섭다고 하는데 전혀 난 마음이 약한 여자다. 빈집이란 경우도 첫 이미지는 보헤미안의 성지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할수록 건강한 청춘 공동체였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좀 더 세련된 셰어하우스의 개념이 서울에도 많이 있긴 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새롭게 느껴지는 공동체였다.
기린과 제프는 어느 날 해방촌을 떠났고, 빈집에서 만났던 언니도 이 지역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갔다. 한동안 빈집 식구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던 나는 내가 떠나온 마포구 공덕동에 셰어하우스에 들어간 언니네 집에 가서 파티를 하기도 했다.
기린은 자신의 집인 시애틀에 가 있다가 다시 한국에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빈집 카페는 해방촌 오거리 올라가는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가 해방촌 오거리에 자리를 잡았다. 그들이 떠난 후에 갈 일이 없다가 오다가다 보긴 했는데 어느 순간 그 공간에 임대라는 간판이 붙은 걸 발견했다. 빈집도 역시 젠트리피케이션의 피해자가 되었구나.
그리고 난 해방촌의 소식에 대해 인터넷 기사로 접했다. 뿌리내렸던 마을 공동체는 와해되었다고 하는 기사. 해방촌에 살던 사람들이 떠나고 있다는 기사. 해방촌 주민들이 흩어지는 이유는 ‘돈’ 때문이란 기사였다.
발전이 되는 건 좋지만 정겨운 추억은 없어지는 것 같아 씁쓸하긴 하다. 해방촌에는 더 이상 이런 공동체적인 분위기는 보이지 않는다. 누구는 ‘온갖 것들’이 모여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고도 했다. 온갖 것들이 모여 있기에 만남과 이별도 쉬운, 그런 해방촌이 예전의 매력이 점점 없어지는 것 같아 아쉬워하는 건 나만이 아닐 거다. 이 때다 싶어 마음속으로 욕심을 부리는 건물주들은 마음에 환희로 넘쳐 나겠지만, 오랫동안 한 곳에 있었던 사람들에게 이 낯선 변화는 불편하기만 하다. 하지만 어느새 이 변화도 익숙해지는 것을 느낀다. 만나고 헤어짐이 익숙한 이 동네 해방촌처럼.